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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Feb 27. 2020

72 - 수동 미혼 vs. 능동 비혼


만난 지 오래지 않은 페이스 사람들이 여전히 해오는 질문.

“왜 아직 결혼 안 했어?”


멋들어진 정답을 준비해 두었다가 그럴싸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매번 실패했던 것 같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내 안에 어떤 분명한 감정, 확고한 결정 같은 게 없어서일까. 두루뭉술하게 스리슬쩍 넘어간 그 지점을 선명히 해야겠다.


문득 떠오른 ‘수동’, ‘능동’이란 단어 때문에 몇십 년 만에 영문법까지 뒤져 보았다.

목적어를 뒤에 두어 주어와 동사 간 관계가 능동인 능동태는 행위의 주체인 주어가 강조된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비혼’은 바로 나 자신의 결정이다.

그에 반해 주어가 명확하지 않을 때, 목적어를 강조할 때 수동태가 쓰인다. 어떤 의지 없이 무언가에 휩쓸려 결혼하지 않은 (혹은 못한) ‘미혼’은 왠지 흐리멍덩하고, 결혼의 반대말로 여전히 대다수의 지목을 받는다.


현재의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오늘까지는, 이러저러해서 미혼. 그래, 그랬던 것 같다. 제대로 둘러댈 수도 없는 떠밀림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달라지고 싶어졌다.


그 누구의 간섭이나 의견도 아닌, 오직 나 스스로의 행동으로 나는 결혼을 거부하겠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그려 온 결혼식 신부의 환상은 사라진 지 오래다. 결혼이 아니어도 사랑을 나눌 넓은 관계와 깊은 가치를 꿈꾸겠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비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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