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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Feb 28. 2020

73 - 세상 모든 덕후에게 보내는 찬사


( + 실은 ‘취중’ 글쓰기이다. 25도 증류주를 언더락으로 한 잔만 마셨는데 혼술이라 그랬나, 술이 확 올라온다. 이럴 때 바로 잠들면 꿀잠일 텐데, 정말 잘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날 텐데... 오늘의 글을 써야만 잘 수 있다 쩝. 이 글을 쓰면서 알딸딸한 졸음이 달아날까 겁이 난다. )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 무언가의 ‘덕후’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아이돌 팬클럽에서부터,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덕후들이 있다고 본다. 또 그 덕후의 삶이 발산하는 무수히 많은 콘텐츠가 유익이 되는 시대 아닌가.


별다방 스타벅스의 굿즈를 모으는 사람을 봤다. 그가 매 시즌마다 큰돈을 들이거나 줄을 서서 아이템을 ‘겟’할 때, 그 순간의 기분이 어떤 것일지 나는 조금은 알 것 같다. 수수한 화장과 튀지 않는 패션이어도 늘 네일 케어만은 신경 쓰는 분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날 때면 그 손가락 끝이 어떤 디자인일지 궁금했다. 다른 건 포기해도 네일샵에 가는 것만은 절대 안 된다던 그녀의 소박한 집착이 꽤 귀엽게 느껴졌다.


나는 20대 중반부터 조금씩 커피의 세계에 눈을 뜬 것 같다. 로스팅까지 배우진 못했지만, 핸드 드립 수업을 들으며 커피에 대한 건 무엇이든 흡입하던 시절이다. 오죽했으면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일본말도 모르면서 일본 커피 책을 사 왔을까. 그냥 COFFEE 라는 글자만 보여도 좋았다. 그렇게 이름만 봐도 신났던 건 여고시절부터 JAZZ 를 좋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나는 무엇에 빠져있나. 아무래도 거문고를 빼놓을 수 없겠다. 거문고를 현대적 스타일로 연주하는 몇몇 분의 음반과 공연을 열심히 좇아 다니고 있으니. 사실 방금도 내가 좋아하는 ‘거문고자리’라는 연주자분의 국악방송 라디오 첫방을 보았다. 심지어 보이는 라디오여서 너무 설레며 한 시간을 보냈다. 문자로 축하 메시지도 보냈고 방송에도 소개됐다. 덕계못(덕후는 계를 못 탄다) 따위, 나의 거문고 사랑 앞에서 무기력하다.


열렬히 좋아하고, 더 하고 싶고 갖고 싶고, 그만큼 사들이고, 좀 더 알고 싶어 공부하고, 모든 우선순위에서 1등이며, 내가 아는 만큼 남에게 알려주고 싶고, 더 높은 차원으로 더 디테일하게 탐구하는 사람들. 뷰티, 맛집, 먹방, 운동, 일러스트, 캘리그래피, 외국어, 영화, 인문학, 재테크 등등 결국 구독과 좋아요를 부르는 그 분야의 덕후가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미칠 만큼 좋아하니까, 그만큼 미쳐있기에 그 정도로 정성을 들일 수 있지 않을까.


자기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선한 영향력이라는 전제 하에, 세상 모든 덕후는 순수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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