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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Mar 15. 2020

78 - 마치 나처럼, 너처럼

<더블 캐스팅>을 지켜보며


뮤지컬 넘버를 듣는다는 것만으로 좋아서 본방사수하는 TV 프로가 있다. 경연 대상자를 남성으로만 한정한 것, 뮤지컬에 대한 이해도나 비전이 어떠한지 잘 모르겠는 제작진, 이후로도 심사 기준이 어찌 흘러갈지 사뭇 걱정인 여러 가지를 차치하고라도. 그 작품의 그 장면을, 찰나를 사는 그 배우를 안방 1열에서 보는 것에 일단 만족한다.


tvN <더블 캐스팅>은 뮤지컬 속 ‘앙상블’ 배우를 무대 위로 올리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연극, 뮤지컬 덕후(연뮤덕)인 내게는 보았던 작품을 다시 만나는 추억 여행이며, 몰랐던 노래를 새롭게 접하는 설렘의 시간이다.


‘더블 캐스팅’은 작품 속 주연 캐릭터를 두 명의 배우가 다른 회차로 공연하는 것을 말한다. 3명인 트리플, 4명인 쿼드 캐스팅까지 본 것 같다. 외국에는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방식이라고 들었다. 그만큼 티켓 파워와 입맛(?)에 따라 배우를 골라 볼 수 있다. 분명 하나의 작품인데 배우별로 디테일이 달라지기도 해서, 상대 배우도 여럿이면 그 경우의 수만큼 작품이 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앙상블’은 소극장 이상 급의 중, 대극장 작품에서 꼭 있어야만 하는 배우들을 가리킨다. 몇 천석의 관객이 뜨거운 시선을 보내는 그 너른 무대에 주조연 배우 네댓 명만 있다고 상상해 보라. 춤과 화음으로 ‘함께’ 무대를 채워주는 코러스 배우, 앙상블은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 속 엑스트라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무대에 필요하고 늘 있어왔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앙상블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더블 캐스팅>. 결말에 1등을 거머쥘 배우는 대극장 뮤지컬의 주인공 역으로 더블 캐스팅한다. 상금 1억 원보다 더 유의미한 포상일 수도 있겠다.


연뮤덕으로 행복하게 여러 캐스팅으로 회전문 돌며(한 작품을 여러 번 보며) 살던 때가 있었다. 그즈음 생각했던 것이 있다.

내 인생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기에 더블 아닌 ‘원 캐스팅’!

그러니 매일매일 건강하게 인생 무대를 살려면 무리하지 않으면서 그날의 쇼를 잘 마무리하자는 것.


원 캐스팅인 나의 존재는 어쩌면,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미친 고음 휘날리며 박수갈채를 독차지하는 주연이 아닐 수 있다. 묵묵히 평범한 시간과 공간을 살아내는 앙상블에 오히려 가까울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 장면에서 꼭 필요한 소소한 몸놀림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조화 속 하모니의 전율이 누군가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그렇게 그 순간을 살고 있는 원 캐스팅 배우가 바로 나다.


<더블 캐스팅>에 출연하는 앙상블 배우 한 명 한 명의 무대를 숨죽여 지켜보는 이유가 그 때문인 것 같다. 나 같아서...

아니, 과연 저들처럼 노력하며 나아가고 있는가, 나는.


아직도 못 봐서 궁금하고 또또 보고 싶은 창작/라이선스 연극과 뮤지컬이 넘쳐난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인생, 나처럼 너처럼, 저마다 다른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을 배우들을 만나러, 봄이 오면 공연장에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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