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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Mar 18. 2020

79 - 우리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4년 전, 신축인 이 집에 이사 와서 첫 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빌라들이 맞붙어 있는 서울 한복판에서 새소리에 눈이 떠졌다. 신기하고 상쾌하고 포근함까지, 삭막한 새집에 온기를 더해주는 느낌이었다.

‘산이 있어서 그런가...?’


집을 결정할 때 뒷산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장점 중 하나였다. 이미 검색을 통해 걷기에 꽤 괜찮다 알고 있었고, 구청에선 새해 일출 행사도 산 정상에서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산을 한 번도 올라가지 않았다. 퇴사 후 평일에 시간이 많을 때도 한적한 곳에 여자 혼자 가기 좀 그렇다는 핑계로 이 산에 무심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3주 넘게 제대로 된 외출을 하지 못했다. 계속 집에 갇혀있는 것에 길들여지니, 정말 무서운 건 갑갑한데도 현관문 열고 한 발짝 떼는 것조차 두렵더라. 매일 출근하듯 정해진 외출을 감내할 상황은 아니기에 내 의지만으로 바깥을 활보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실내에서 하는 필라테스도 쉬고, 사람들도 못 만나고, 도서관이나 영화관도 갈 수 없다. 교회는 영상 예배를 드린 지 몇 주 째다. 다리가, 이러다 하체 마비가 오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울 지경에 이르자 집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드디어, 그 산을 향해 올라갔다.


십여 분 걸으니 널찍한 운동장이 나왔다. 일요일 오후 조금은 옅어진 햇살 아래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공을 차고, 트랙을 걷거나 뛰고, 운동 기구에 몸을 맡겨 각자의 체력을 키우고 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는 그들의 온몸이 ‘코로나 꺼져버려!’를 외치는 듯했다. 다들 비슷한 마음으로 이곳까지 왔겠구나 싶자 살짝 뭉클해졌다. 덩달아 나도 산 정상의 정자까지 올라 뿌듯하고 시원하게 한강을 내다봤다.


“우리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라도 이렇게 안부를 전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덧붙여 보았다.

“코로나는 코리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코로나 덕분(?)에 이 산을 산책하는 게 좋아졌다. 4년 만에야 깨달은 보물 같은 곳이다. 방금도 5 천보 정도 걷다 내려왔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돌고 땀이 살짝 나는 게 아주 기분 좋다. 지금은 앙상한 가지들과 소나무뿐인 이 산의 다음 계절들이, 마스크 벗고 마음껏 걷게 될 그날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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