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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Apr 14. 2020

92 - 내 나이가 어때서


독립 책방(서점.. 보다, 독립에는 왠지 책방이 붙어야 제맛!) 한 구석 자유롭게 읽어볼 수 있는 주인장 코너에서 만난 책. 조금 읽고 있는데 친구가 왔다. 마침 친구네 집 근처였는데 이 책이 있다며 빌려주었다. 그렇게 우연의 연속으로 내게 들어온 인연. 음악도 그렇고 책도, 아무리 마케팅 어쩌고 하지만 나는 다 인연이 있다고 본다. 그 책과, 내가 만나게 되는 이유.


‘나이’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지만, 1935년생이라는 저자의 나이는 꽤 묵직하다. 와카미야 마사코, ‘마짱’이라 불러달라는 이 할머니의 나이는 2020 우리나라 기준, 86세다.

뭐? 게임 앱을, 할머니가 개발했다고? 당연히 손이 가지 않을 수 없는 대목. 책 제목과 표지 일러스트 또한 발랄 그 자체다.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 정말 그럴까?


‘100세 시대’라고 말들은 많지만, 다가오지 않은 미래는 누구나 막연하게 두렵다. 40대 초입을 걷고 있는 오늘의 나도 앞날에 대한 고민 많은 요즈음, 가볍고 경쾌한 이 책으로 용기를 얻었다. 특히 결혼하지 않은 여성으로 현재에 이르렀다는 마짱 때문에, 나는 더 세밀한 든든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녀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가 궁금했다. 아래 내용을 읽은 그날 오후, 늘 그렇듯 동네 뒷산을 산책하고 있었다.




<나뭇잎 프레디>라고 제가 아주 좋아하는 책이 있습니다. 레오 버스카글리아 교수가 쓴 책인데, 단풍나무 잎사귀 프레디가 봄에 태어나서 겨울에 떨어질 때까지를 그린 이야기지요.
겨울이 되면 죽어야 한다는 걸 알고 무서워하는 프레디에게 절친한 친구 다니엘이 말합니다.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라 무서운 거야. 하지만 생각해보렴. 세계는 계속 변하고 있어.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지.”
거듭해서 다니엘은 나뭇잎과 나무는 언젠가는 죽지만 “생명은 영원히 이어진다”는 걸 프레디에게 가르칩니다. 그렇습니다. 떨어진 프레디는 물과 섞여서 땅에 스며들어 새로운 나뭇잎과 나무가 자라는 데 힘이 되어줍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지요. 세대교체를 하고 ‘생명’의 배턴을 이어가는 것. ‘생명’이 살아 있는 것이라면, 늙어서 죽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합시다.





여기저기 초록빛 새순이 튀어 오르고 있는 나뭇가지 아래에는 마짱의 얘기처럼 생명이 다하여 바싹 마른 낙엽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휴대폰 카메라를 갖다 대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자연의 이치가 그러한 걸 이미 알고 있지만, 그 순간 귓가에 들리는 그녀의 문장 때문에 내가 이 숲의 생명의 일부라는 것이 마음속까지 스며들었다. 죽음이 가끔씩 무섭다가 또 아무렇지 않아 지듯, 그저 내가 이 순환하는 통로 어디쯤 보통의 존재라는 것에 안심하듯이. 




며칠 뒤 산을 다시 찾았을 때, 새 생명은 푸릇푸릇 왕성하게 채워지고 있었다. 봄이 지나가는 길인가 보다. 앞으로 몇 번의 봄을 더 세게 될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풍경 속 일부가 되어 맘껏 바라보고 즐기며 나이를 먹는 게, 나도 재밌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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