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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Apr 16. 2020

93 - 여성이 여성에게 외주 주는 세상


규모가 점점 커진 회사에서 근무한 오래전 경험을 떠올려 본다. 매출은 증가하고 일의 양이 늘어나니 일손이 부족했다. 온라인 이벤트 작업이 긴급하게 필요했는데 디자인팀에 기획안 넘기고 일정 협의하고 할 시간이 없었다. 단독 행사여서 최대한 빨리 오픈해야 했던 것.


당시 소일거리로 웹디자인 하던 친동생을 구워삶아 겨우  페이지와 배너를 받은 기억이 난다. (디자인 통일성을 빌미로;;) 다시 동생 손을 거친 현수막까지 행사장에 걸린  순간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하긴 그도 신기해하긴 했다. '장기하와 얼굴들'  팬미팅이었으니. 용돈을 줬는지 맛난 걸 사줬는지는 까먹었지만, 나중에야 그게 ‘외주 개념인  알았다.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를 쓴 김진아 작가의 이야기다. 직접 운영 중인 카페의 납품 원두를 바꾸게 되었는데 그 계기가 남성 천지인 로스팅 시장에서 여성 로스터를 찾아 여성에게 일감을 주고 싶었다 한다. 어디 로스팅뿐이랴. 이미 충분히 남성에게 남자 사장들에게 몰리는 일, 굳이 의식을 가지고 이제라도 여성에게 몰아주자는 내용이었다.


스타트업과 1인 기업 등 비즈니스는 점점 다양하게 세분화되어 간다. 특히 1인 창업의 경우라면 혼자서 모든 과정을 책임져야 할 터. 분야별 완벽한 전문가가 아니라면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의 업무를 품앗이하듯 맡기는 건 어떨까. 김진아 님의 책에서도 여성들의 이런 ‘네트워킹’이 중요함을 다루고 있다. 실제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연결된 사례와 함께.




나에게도 최근 ‘로컬 호스트’ 양성 과정을 함께 수료한 ‘only 여성’ 그룹이 있다. 온/오프라인에서 각자의 삶과 비즈니스 고민을 나누면서 생각한다. 이렇게 여성이 함께 그룹핑되고 그 안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공부도 하면, 조금이라도 나아갈 수 있겠구나. 서로 힘이 돼줄 수 있겠구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시국이지만, 화상으로라도 소통을 이어가는 그룹이 몇 개 더 있다. 어쩌면 이 소중한 여인들 덕분에 답답하고 외로운 시간을 버텨내고 있는지 모른다.


여자의 적은 결코 여자가 아니기를 바란다. 여성이 여성에게 당연하게 정당하게, 외주를 주고받으며 회사 대 회사로, 같이 일하는 세상을 꿈꾼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고, 그 증거가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여성을 고용하고, 먹이고, 선한 영향력을 전하는 여성 보스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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