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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Apr 21. 2020

94 - 나는 모른다, 부부의 세계


결혼하니까 좋아...?”

30대까지만 해도 주변에 결혼하는 지인들이 있었다. 신혼을 잘 보내는 그들에게 매번 비슷하게 던진 질문에는, 또 대부분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모두 비슷한 패턴의 대답을 토해낸다.


결혼하길 잘한 거 같아.

->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 (일단 한숨) 말해 뭐해.


가장 길게 봐온 부부, 나의 부모님 이하 여러 부부의 사례를 ‘간접’ 체험한 결과,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은 나에게 우선 다행이다 싶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나는 모르는,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는, 그러나 궁금한, 부부의 세계-




김희애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착실히 챙겨보고 있다. 처음부터 관심 있진 않았는데 어느새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기승전결 아닌, 오직 ‘강강강강’인 전개와, 장면마다 품격 있게 휘어잡는 음악, 조연 배우들의 캐릭터도 좋다. 마치 연극 무대 같은 선우(김희애)의 집과 병원 세트마저 마음에 든다.


성인 둘, 여자와 남자가 만나 부부가 된다. 각자 그간 살아온 인생을 그대로 쥔 채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된다는 말은 신비롭지만, 그래서 그만큼 어려운가 보다. 우리가 하나, 였다고 생각한 것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스토리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드라마 속 남편의 불륜과 다르게, 와이프의 그것을 이야기한 영화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우리도 사랑일까>라는 제목인데, 나는 원제인 <Take This Waltz>더 좋다.

남편에게 사랑받는 여주인공이 이웃집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당연한 수순으로 남편을 떠나는 그녀.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지금의  남자에게도 무뎌진다는, 이런 상황이 몇 번이 반복된대도 너 어떻게 살래. 나에겐 그런 질문을 던졌던 걸로 기억한다.




‘왈츠’ 춤과 ‘관계’를 묘사한 듯한 ‘Take This Waltz’는 레너드 코헨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가사를 읽어보다 왈츠가 더 궁금해져 동영상을 찾아봤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에, 영상을 자세히 살피며 느낀 것. 춤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우아함’이 넘쳐흐른다!  


남녀 댄서가 서로의 등과 손을 마주 잡았으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기품 있어 보인다. 3박자에 맞춰 움직이는 네 개의 다리 역시 밀착되진 않지만 정교하고 반듯하게 발을 놀린다. 빙그르르 부드럽게 원을 그리는 드레스 자락마저 이 환상을 빛나게 해 준다. 그들은 탱고처럼 끈적하지 않고, 자이브 같이 발랄하지 않다. 부드러운 도도함? 설명이 어려운데 나는 그런 매력을 느꼈다 왈츠에서.


부부가 되어본 적 없으니 나는 모른다, 부부의 세계를. 하지만 부부 관계를 왈츠에 빗대어 본다면 플로어 위 춤추는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붙잡아 주고, 지탱해 주며, 함께 배려해야 하는지를 짐작케 한다. 댄서 사이가 그러하듯 약간의 틈을 유지한 채, 그러나 엇나가지 않게 맞잡은 두 손. 한몸으로 회전할 때의 바람(그 ‘바람’은 아닙니다만)처럼 각자의 자유와 여유를 안정되게 공유할 수 있는 한 쌍.


알지도 못하면서, 헛소리 그만하라고 삿대질하셔도 괜찮다. 부부 여러분 앞에서 이런 글이 무슨 소용일까 싶지만, 나는 무지하니까,  세계 모르기에 당당히 외쳐본다. 

 ‘왈츠 기꺼이 추기로 선택한 당신, 무사히  춤을 아름답게 끝내기를.  중도에 무대를 내려온 그대, 아무것도 잘못한 것은 없다고. 그리고  춤을 추지 않기로 결정한 벗에게, 화려한 독무대를 보여주자고, 나도 함께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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