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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Apr 24. 2020

96 - 나 유튜브 진짜 많이 봤거든


저녁 늦게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 올라가는 길이었다. 앞에 걸어오는 커플과 스치면서 내 귀에 꽂힌 한마디.

“나 유튜브 진짜 많이 봤거든...”

이후로 멀어져 그 말 뒤의 말은 들은 게 없다. 무슨 얘길 하고 있던 걸까, 많이 봐서 어떻게 됐다는 걸까.


요즘 나도 소소하게 유튜브를 찾고 활용하면서 이 거대한 바다가 고맙기도, 무섭기도 하다. 몰랐던 걸 알게 되어 신나다가도 어마어마한 재생수를 보며 내가 뒤쳐진 것인가 씁쓸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고 결국 낚였다는 생각이 든 영상도 많다. 자신감 넘치는 바디 라인, 원어민 수준의 영어 발음, 부자가 되고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너무너무 쉬워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같은 말이 가끔은 소화 불량처럼 얹힌다.


조금 다르면서 비슷하게, 최근 인스타그램 개인 계정을 좀 멀리하고 있다. ‘SNS 거리두기’랄까. 정보를 얻기 위해 시작했고 위로도 많이 받았다 생각한다. 하지만 그쪽 세상에도 역시 스타는 존재하며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박탈감 같은  스멀스멀 올라왔다. 순기능이 소통이라 지만 마음 문이 조금씩 닫히고 있다. 아무렇지 않다 되뇌어도 어느새 가난하게 초라해져 갔다.  


유튜브든 SNS든 한 번 붙잡으면, 마술처럼 시간은 순삭이다. 그저 타인의 말과 풍경에 취한 듯 빨려 들어간다. 그나마 남는 거라도 생기면 다행인데, 가끔은 ‘그래서 내가 뭘 하려고 했더라...’ 되돌아가는 길이 또 한참이다. 그 속에서 ‘나’를 자꾸 놓쳐버린다. 내 마음, 생각, 가치, 의지, 개성 같은 것을 계속 잃어버린다. 출구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어지러워진다.




그럴수록 악착같이, 나를 챙기자고 다짐한다. 휩쓸려 가지 말고 내 중심을 단단히 붙잡으라고. 쓸데없이 오랫동안 휘젓지 말고, 취할 것만 착실히 구해 탈출하기로 약속한다.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할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나를 보호하고 쓰다듬을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렇게 다독이며 기운 나게 할 내 두 손이, 나의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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