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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Jul 21. 2020

버림의 쓸모


아파트 생활 청산하고 전원주택으로 향하는 부모님의 ‘시의적절한’ 결정. 지금 집에서 27년(!)만의 이사가 다음주다. 그 세월을 따져보니 꼭 내 나이만큼인 두 분 결혼 생활에서도 절반이 넘는다. 이 집에서 독립한 지난 10년을 제외하면, 여고시절부터 서울로 대학을 다니고 회사를 다니던 30대 초반까지 생의 중요한 시기를 보낸 내 방이 있던 곳. 결혼은 하지 않아도 종종 찾아가 쉬고 먹던 마음의 친정 같은 집.


추억은 방울방울 가슴속에 풀어놓는다 해도, 기나긴 시간 구석마다 쌓인 생활의 짐은 그 양을 다 헤아리기도 벅차다. 처음 해보는 포장 이사 업체가 쓰윽 둘러본 뒤 받아 든 견적은 몇 백 단위 금액에 13톤 정도라 한다. 수많은 물건을 다 헤처 모았다 풀어놓는 과정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이삿날에야 실감이 될까.


집안이 어수선한 가운데 이 집에서 마지막으로 삼계탕 한 번 먹자 해서 동생네 식구까지 모였다. 아이 둘 어른 다섯, 우리는 교자상 네 군데에 둘러앉아  엄마의(할머니의) 푹 고아진 찐한 사랑을 퍼먹었다. 작은 정원과 멀리 산자락이 내다보이는 새 집에서 함께할 식탁은 이것과는 또 다를 것이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의 한끼가  소중하고 감사했다.


독립을 하고도 남겨둔 서랍장 몇 칸은 지난번에 비워냈고,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책장. 김치 냉장고와 주방용품으로 꽉 채워진 내 방 책장 앞 물건을 요리조리 밀면서 길을 내어 마치 고대 벽화처럼 먼지 가득 펼쳐진 책들을 정리해갔다. 제목이 조잡한 시집부터 대학교 전공 교재, 절대 펼쳐볼 일 없을 각종 사전과 낡은 성경, 햄릿 같은 영어 원서, 내 기사가 실린 재즈 월간지 수십 권, 과외 시절 푹 빠졌던 어린이 영어 교수법, 커피에 미쳤던 때 사들인 각종 자료, 어디에나 있고 정리해도 또 나오는 음반들...




엄마의 이사가 확정되면서부터 엄청 잔소리를 해댔다. 제발 버리라고. 꼼꼼깔끔하게 살림을 해온 엄마의 물건은 오래됐어도 깨끗한 게 많다. 포장 뜯지 않은 진짜 새것도 많다. 대부분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딸 결혼할 때 주려고 사모은 냄비류는 기본에 몇십 피스씩 되는 식기 세트까지. 이제야 식구 둘이 되었지만, 나와 동생을 키우며 잔뜩 늘려놓은 살림살이를 단칼에 정리하기엔 힘드신 게 당연하다.


책장 하나를 필사적으로 비워야 하는 나 역시 한 권마다 버리느냐, 남기느냐 고민은 괴로웠다. ‘다시 펼쳐 읽을 것인가?’에 기준을 맞추어도 버리는 박스로 확확 던져진 것이 있는 반면 애매모호한 채 다시 보류 선반에 살아남는 애들이 있다. ISBN을 하나씩 읽히며 중고서점에서 그나마 받아줄 것은 따로 걸러내고도 내 집에 가져갈 한 무더기 책을 바라보며 엄마한테 했던 그 말을 외친다.

제발 버려!


나도 못하는 걸 누구한테 난리를 치나 부끄러워 엄마한테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여전히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버리라는 말을 멈추지 못한다. 최근 ‘미니멀리스트’에 관한 동영상을 여럿 찾아보고 깨달은 게 많아 더 그런 걸 수도. 어느 유투버의 내용에서 유품 처리 비용이 ‘1kg당 6천 원’이란 문구를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결국 엄마는 대형 트럭에 여전한 엄마의 짐들을 이고 지고 떠나게 될 것이다. 오죽하면 일단은 가져가 보고 가서 버리겠다는 말도 나온다. 해묵은 그녀의 물건을 어쩌면 훗날 내 손으로 정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 집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도 않다. 우리의 죽음 이후, 누군가는 누군가의 소유였던 물건을 정리해 주게 된다. 가급적이면 그게 각자의 선에서 가능한 만큼 노력하여 미리 정돈된 삶이기를 바란다.


낡은 박스 가득 채우고도 넘치는 버려질 책 무더기를 보면서도 생각한다. 이것들이 또 지구를 아프게 할 것이 먼저 마음에 걸린다. 내 곁을 떠나보내며 그 시절의 나에게 조용히 작별을 고한다. 그래서 더욱 다짐한다. 새로 장만할 물건에 조금 더 신중해지자고. 많이 무겁기도 또 한편으론 홀가분하기도 한, 버려지지 않음에도 기어이 버리고야 마는, 버림의 쓸모를 배운다.







*매거진 [ 쑥떡을 씹으며 ]

쑤욱 떠오른 기억 -> 쑤-욱 떠—억 -> 쑥떡

쫄깃 오묘한 ‘쑥떡’의 식감과 향내 같은 일상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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