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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Aug 17. 2020

낯설어도 괜찮아


사십여 년을 살면서도 ‘처음’ 해보는 일들이 있다. 최근에도 몇 가지가 있었다. 누군가는 이게 별일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의미가 있다.


화분 킬러인 나는 집에 식물이 없다. 아, 엄마가 준 대나무 몇 줄기가 유일하다. 몇 년 동거한 결과, 대나무는 쉽게 죽지 않으며 물만 채워주면 되고 흙이 없기 때문인지 벌레도 생기지 않는다. 집 한 구석에서 ‘초록’을 너끈히 담당해 주고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지난달에 베란다 정리를 하다 오래 방치해 둔 종이 화분과 씨앗을 발견했다. 조금은 두려웠지만, 비닐을 뜯어 배양토를 담고 마침표보다 작은 씨앗을 흙 속에 심어 주었다. 큰 수고로움 없이 마무리된 화분에서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연둣빛 줄기가 솟아 나왔다. 그리고 어느새 레스토랑 접시에서나 보던 온전한 바질 잎이 세네 장 달려 있었다. 그 잎사귀를 손으로 만진 느낌이 묘했다. 살짝 까슬까슬하기도 하고, 손에 닿은 향기는 진동했다. 마침내 잎을 똑똑 따서 에그인헬과 카프레제에 넣어 먹었을 때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키우고 수확(? 이라 하긴 거창하지만)한 재료로 요리를 하는 기쁨.


아토피로 밀가루를 못 먹는 조카의 세 살 생일을 위해 떡 케이크를 알아보다가 집에서 떡을 찌는 신기한 기계를 사버렸다. 손바닥 만한 동그란 백설기를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만들 수 있다니. 그렇게 처음으로 떡을 쪄내어 여러 개를 케이크 상자에 쌓고 조카가 좋아하는 공룡 장난감을 얹어 장식했다. 몇 만 원짜리 떡 케이크를 손쉽게 산 적도 있지만 그것과는 비교 불가하다. 더 이상 냉동실에서 자고 있던 것이 아닌, 바로 만든 뜨끈뜨끈한 떡은 1인분의 식탁에 온기를 더해준다.


방금 전 아침 6시에 일어난 나에게 주는 선물로, 크루아상 생지를 처음으로 오븐에 구워보았다. 집안에 가득 퍼지는 빵 굽는 냄새, 그것만으로도 황홀했다. 시나몬과 설탕 뿌린 카푸치노에 갓 구운 크루아상 한입은 나를 오래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버스 터미널의 그날로 데려갔다. 그 아침에도 같은 메뉴가 놓인 바에 앉아 여자 사장님의 기분 좋아지는 미소를 대하며 무척 행복했었기 때문이다. 베어 무는 수가 늘어 크루아상이 사라지는 게 슬플 지경이었다. 마지막 한입으로 남은 우유 거품까지 싹 발라내서 마무리.


그러고 보니 지난주엔 처음으로 생닭을 가지고 찜닭을 만들어 봤다. 백종원 쌤의 레시피를 따라 해 봤는데, 준비하면서 메뉴별 닭의 적당한 사이즈 정보라던가 식당 찜닭의 색깔이 진한 이유도 알았다. 직접 먹어보면서 잡내를 줄일 방법과 부재료의 크기, 더 추가해 볼 재료도 생각하게 됐다.

어쩌다 보니 전부 먹는 얘기뿐이네;; 아! 몇 달 전에 비즈 공예 원데이 클래스에서 처음으로 반지와 팔찌를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요즘도 반짝거리는 팔찌를 자주 하고 외출하는데,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뿌듯함이 즐겁더라.  


처음 해보는 것. 경험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배움이 된다. 어차피 인생은 여정’ 아니던가. 결과가 아닌, 과정의 순간순간에 낯선 일들을 만들어 보자. 그게 무엇이든 안 해본 것을 시도하는 일은 그 순간을 온전히 살게 할 것이다.     






*매거진 [ 쑥떡을 씹으며 ]

쑤욱 떠오른 기억 -> 쑤-욱 떠—억 -> 쑥떡

쫄깃 오묘한 ‘쑥떡’의 식감과 향내 같은 일상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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