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한 첫사랑, 오래된 이상형

캐릭터

by 일무

어려서 유치원 대신 미술학원을 다녔다. 기억나는 게 거의 없지만 그 시절 그림 그리고 만들었던 작품(?)들이 일부 사진으로 남아있긴 하다. 학원 선생님의 손이 보태진 것일 테지만, 예술적인 경험을 일찍 했다는 것에 근거 없는 자부심 같은 걸 가졌던 것 같다. 어쩌다 불쑥 쓸데없는 허세가 나오는 거지. “내가 말이야, 그때부터 그림을 계속 그렸으면 말이야...” 하면서. 결말 없는 첫사랑에 대한 미련 같은 거랄까. 요즘도 미술 전시를 쫓아다니는 나에게, 그 세계는 여전히 근사해 보인다.

직장인을 위한 성인 미술학원을 알아본 적이 있었다. 근속 몇 년차였는지 생각나진 않는데, 아마 어떻게든 그림이라는 첫사랑을 찾게 되면 지친 일상에 한 줄기 빛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퇴사를 하고 나서야 나는 드디어 재회하고 말았다. ‘드로잉 프렌즈’라는 곳에서 첫 번째 수업을 들었을 때 ‘아, 다행이다. 잘 찾아왔구나.’라고 읊조렸다.


퇴사 후 반년 뒤 라이프 코칭 수업의 첫날, 처음 받은 질문은 이랬다.

“지금 있는 이 건물이 몇 분 뒤에 무너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죽음 직전에 ‘이것’을 하지 않아 가장 후회될 일은 무엇인가요?”

바로 떠오른 것은 시나리오였다. 왜 그게 튀어나온 걸까. 막연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 품어둔 꿈, 새까만 화면 엔딩 크레딧에 두둥실 떠오르는 내 이름 세 글자.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오래된 이상형을 내 발로 찾아 나서는 용기를 얻었다. 일단은 만나보자, 해보자.

‘영상작가전문교육원’이란 곳에서 1년 동안 공부했다.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사연을 가진 동기들과 수업을 듣고, 그룹 과제를 하고, 학원 내 공모전을 준비하고, 서로 쓴 것을 읽으며 이야기하고, 술 마시고, MT도 가고... 마치 다시 대학생이 된 것 같았다. 처음엔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위축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린 친구들의 풋풋한 모습에서 좋은 자극을 많이 받았다.


‘컨투어 드로잉’이라는 걸 처음 해보는 날이었다. 연필 잡은 손은 도화지에 대고 있으면서 눈 앞에 있는 정물의 한 꼭짓점에서 시작해 보이는 대로 그린다. 절대 도화지는 보지 않고, 선을 끊지도 말고, 보이는 모든 선을 이어서 그리기만 한다. 끝내고 나서 그린 것을 내려다보면 일단 폭소가 터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가 떡하니 있으니까. 분명 내가 본 건 이것이 아닌데, 근데 또 이게 어떻게 보면 추상화 같고 되게 느낌 있다. 이상한 결과물이어도, 내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초집중하는 그 순간이 좋았다.

좋은 시나리오는 눈에 보이는 것처럼 쓴다. 투자사나 제작진이 읽어 내려가면서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져야 한다. 그것도 가급적 같은 그림이 떠오르도록, 엔딩씬까지 막힘없이 단숨에 읽히도록. 내 머릿속에 그려둔 장면을 대사와 지문으로 섬세하게 다시 써내는 그 작업이 정말 멋지지만 너무 어려웠다. 평소에 그냥 바라보는 길가의 풍경, 지나가는 사람들의 인상 등을 세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글로 표현한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떤 단어를 써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들이었다. 개봉한 영화나 새 드라마를 보면서, 그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인물)가 다시 보였다. 그를 설명한 지문은 어떤 것이었을까, 저 대사를 쓰는 동안 작가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에 다가갈 수 있었다.


드로잉 수업을 만든 선생님은 첫 시간에 본인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십여 년 넘게 회사 생활을 한 결과 마음이 아픈 것을 발견했고, 퇴사 이후 그림을 혼자 그려왔다고 한다. 카페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시간만큼은 아무런 고민 없이 그저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고. 계속 그리면서 그는 치유되었고 그 경험을 이후 많은 수강생에게 전파했다. 수업을 같이 듣던 분들은 대부분 낮 시간이 여유로운 주부였는데, 그들이 그림을 통해 위로받는 모습은 나에게도 감동이었다. 나 또한 드로잉이 화가의 전유물이 아님을, 삶 속에서 무언가에 푹 빠져 그리고 표현하는 모든 것이 더 귀한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배웠다.

시나리오 초급반에서 단편을 쓰는 동안 주인공이었던 ‘여인’(이름이 여인)을 생각하며 춘천의 한 카페에서 혼자 펑펑 운 적이 있다. 그 단편의 마지막 몽타주 씬을 뒤풀이 자리에서 선생님과 동기들이 좋았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생각한 마음이 누군가에게도 동일하게 전해졌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의 자전적인 인물이었을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뜨거운 심장까지 빚고, 그녀의 사소한 취향과 과거사까지 상상해보는 경험은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깨닫게 했다.


용기 있는 자가 사랑을 얻는다고 했던가. 아주 오랜만에 재회한 첫사랑 그림과, 마음속 오래된 이상형 시나리오. 보이는 대로 그리고, 보일 것처럼 써보는 시간이 분명 내 삶을 풍성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현재의 사랑은 어떻게 진행 중이냐고? 그러게. 이제 남은 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거겠지. 무엇이든 열린 결말보다는, 해피 엔딩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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