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공항 가는 길>에서 스튜어디스였던 최수아(김하늘 배우)가 퇴사를 한 후 뱉은 말이다.
“일과 헤어질 땐, 어디에 대고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하죠?”
일을 좋아하고 잘 해온 엄마였지만, 무심한 남편 대신 초등학생 딸아이의 양육 문제로 고심 끝에 결정한 퇴사였다. 한 번은 짚고 넘어가거나 앓고 지나갈, 일과 사랑 그리고 가족 등 어른의 오춘기 열병 같은 느낌의 작품으로 기억한다. 무엇이든 한결같이 계속 잘하면 좋겠지만, 일에도 인생에도 쉬어가는 포인트가 필요하다. 어쩌면 지금 나도 내 삶의 ‘인터미션’에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14년이 넘는 시간을 한 회사에서 일했다. 공식적인 첫 직장이었고 현재까지는 마지막 직장이다. 지나고 보니 나의 회사 생활은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오랜 기간 늘 반복되는 일을 하면서도 즐거웠던 이유는 언제나 음악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음악이 공개되는 소식을 가장 빠르게 접하고, 근무시간 중 헤드폰을 끼고 살아도 전혀 문제없는 일터. 나의 일은 인터넷 서점에서 음반을 판매하는 쇼핑몰 MD였다. 책을 온라인으로 파는 초창기 벤처 회사에서 방대한 음반 상품을 관리하고 웹상에 소개하는 업무를 시작했다. 너무 옛날 사람 같을까 두렵지만, 당시 합격 소식을 듣던 울 엄마의 동공 지진을 기억한다.
“그럼 딸이 집집마다 책 들고 방문판매 다니는 거야?”
“엄마, 그런 게 아니구...”
입사 직후에는 재즈 잡지에 기사를 쓴 이력으로 재즈/월드뮤직 장르를 맡았다. 조직 개편으로 국내 음악을 담당하면서, 이제는 ‘K-POP’이란 단어가 더 익숙한 가요 음반을 팔고, 또 팔았다. 아무도 살 것 같지 않지만 그리고 점점 시장의 내리막이 예견되었으나,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듯 CD도 살아있다. 죽어가던 LP까지 부활시키며 음악을 만지고 소장하려는 이들을 위해 내 일은 존재했다. 창조적인 아티스트와 그를 사랑하는 팬. 그 사이에서 일했으니 소중한 추억도 많다. (당시에는 대세) 장기하와 얼굴들 1집 첫 팬미팅, (여전한 희열님) 토이 6집 뮤직 비디오 전편 상영회, (‘덕계못’을 깨버린) 이승열 팬미팅, (‘덕업일치’를 체험한)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음반 부스 운영까지... 인디와 아이돌을 넘나드는 행사를 진행하며, 나는 분명 행복했다.
우리 팀은 장사해서 돈 벌어다 주는 사업부서 소속이었고, 당연히 매출과 손익의 압박이 컸다. 회사가 크고 성장할수록 작년의 성과를, 이전 분기의, 지난달의, 어제의 나를 누르고 상승 그래프를 그려내야만 했다. 할 만큼 했다. 해보고 싶던 것을 다 해봤기에 회사를 나오면서 후회도 없었다. 회사 외부적으로는 갑과 을 모두의 입장이 되어봤고, 내부적으로 조직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체득했다. 즉,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려면 어떻게 서로 배려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음반시장의 한 토막을 담당하며 ‘대중문화’의 신기한 파급력도 생생하게 경험했다. 히트하는 TV 예능, 드라마, 영화 등으로 반응이 바로 오는 판매 현장. 특히 인상 깊었던 프로그램은 JTBC <히든싱어> 였다. 팬 개인 개인에게 흘러갔던 음악의 영향력이 세월 지나 가수에게 충만한 에너지로 되돌아가는 명장면들에선 나도 뜨거운 눈물을 훔쳤다. 당시 임재범 앨범은 방송 다음 날부터 품절 사태와 재생산이 이어졌던 흐뭇한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A를, 다른 누군가는 B를 응원하기에 매일 발매되는 Z까지의 수많은 뮤지션이 각자의 사랑을 받으며, 여전히 음반은 그 누군가들의 손으로 마음으로 찾아간다.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는 그래서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음악은 추천하거나 강요해서 들리는 게 아니다. 내가 재즈를 좋아하는 이유도, 국악과 사랑에 빠진 까닭도 행복한 운명이라고 생각하듯이. 그리고 그 외 다양한 장르의 보석 같은 음악인과 명반을 알게 된 것이 큰 선물이다. 업계 내에서 생생하게 만나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음악들. 청춘을 바쳐 일한 시간에 감사할 수 있는 이유다.
개인 사정으로 나이 들어 뒤늦게 취업을 한 친구와 얼마 전 길게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일을 막 배우고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는데 ‘워커홀릭’ 기질이 보이는 것을 본인도 걱정하고 있었다. 심지어 일에 몰두하다 보면 화장실 가는 것도 참고 앉아 있는, 주말에도 일거리를 싸들고 집에 오는 자신이 두렵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런 적이 많았고, 아마 세상 모든 직장인들이 쏟아지는 업무에 빠져 ‘나’를 잊고 살아갈 것이다. 친구에게 진심으로 충고해 주었다.
너는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다고.
‘직장인 OOO’은 퇴근할 때 거기 두고 나오라고.
집에 가서는 ‘자연인 OOO’으로만 존재하라고.
한창때 야근이 며칠씩 이어질 때면 동료들과 장난처럼 인사했었다.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아무리 즐기며 하더라도, 일은 일이다. 살갑게 가족 같은 복지를 챙겨준대도 ‘우리’ 회사 아니다. 들어갔다, 돌아 나와야 하는 곳이 회사다. 어쩌면 당신은 매일 퇴근 아니고, 매일 퇴사해야 하는지 모른다.
일과 헤어질 때 어디에 인사해야 하느냐 하면, 내 직업(음반 MD)에 굿바이 하면 된다.
2년 전, 한낱 유통 바닥의 장사꾼으로 버텨온 나에게 작별을 고했고, ‘자연인’ 나는 빠져나왔다. 감사하게도 회사에 있던 나의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나를 울리고 웃게 한 내 일의 모든 보람은 데리고 나왔다. 퇴사가 남긴 그녀들이야말로, 그리고 내가 일하면서 느낀 창작자와 소비자 사이의 에너지야말로 14년 회사 생활 끝에 거둬들인, 나만의 ‘인생 후르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