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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Feb 16. 2020

61 - 그랜마, coming soon


주말 오후 홈쇼핑 채널에서 가방을 팔고 있었다. 소가죽으로 탄탄해 보이는 작은 크로스백을 소개하며 쇼호스트가 이렇게 말한다.

“엄마와 딸 아니, 할머니와 손녀까지 같이 멜 수 있는 디자인이죠.”


소파에 누워 멍하게 있던 나는 갑자기 울컥했다.

...  손녀가 없겠구나.’

그러니 할머니도 되지 못한다.


내가 낳은 자식이 당연히 최고겠지만, 그런 자식이 낳은 손주는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우리 부모님만 봐도, 조카 둘을 지켜볼 때의 표정은 동심으로 가득 찬다. 흰머리가 금세 변하여 소년소녀로 되돌아간 해맑음이랄까. 20대에 딸 아들 낳아 이미 새로운 인생을 사셨겠지만, 환갑 전에 맞이한  손자는 당신들의 황혼을 다시금 돌아보게 했을 거다.

 

내 인생에 자식이 없게 된다면, 당연히 손자 손녀도 없다. 그동안은 출산과 육아 경험이 없을 것만 골똘히 생각했는데,  나아가 후손이 없다는  이런 쓸쓸함일까. 이미 세상엔 없지만 내 맘속에 살아있는 나의 할머니들을 떠올리니 한없이 가라앉는다. 온 우주에 나만 혼자 덩그러니 있는 기분에 휩싸여 시끄러운 TV 껐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지지고 볶아도  참고 살며,  자식의 자식을 보고, 인생을 서서히 정리하는  당연한 세상이었다. 지금은 글쎄, 다양한 가족이 존재하고 서로 다른  모양새를 함부로 손가락질할  없는 사회가 되긴   같다. 그래도 익숙했던 기준을 벗어난 누군가에게는 그에 맞는 지역 시스템과 배려, 정서적으로도 따뜻한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더더 나이 들어 허리도 굽고 흰머리만 빼곡할 때, 나는 무엇으로 불려야 할까. 그냥 할머니가 되기는 싫은데.  세배의 내리사랑을 주변에 퍼주고도 넉넉하게 나를 보살필 수 있는 멋진 ‘그랜마’가 되었으면.



(사진 출처 : 플레이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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