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무 Feb 15. 2020

60 - 그저 아름답다

정재일 단독 콘서트가 끝난 뒤


16인조 현악 오케스트라가 무대 오른편을 채운다. 꽹과리, 장구, 북, 징의 사물과 피리, 대금, 아쟁의 국악기 편성은 왼편이다. 중앙에서 약간 우측에 치우친 블랙 그랜드 피아노에 한 사람이 앉는다. 검은 반팔 티셔츠의 그가 피아노를 치다 팔을 들어 올려 춤을 추듯 부드럽게, 주먹을 꽉 쥐기도 하며 카리스마 있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국악 연주자들과 한 곡을 합주할 때는 처음엔 일렉 기타를 둘러멨다가, 어느새 일렉 베이스로 갈아타고, 급기야 무대 뒤쪽의 타악기 세트로 가서 격렬한 마무리를 해낸다.


클래식, 국악 등 장르를 넘나들고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자기 이름을 내건 단독 공연을 할 수 있는 사람. 우리나라에선  '정재일'이 유일하다.


다음 곡이 시작되면 무대 위쪽으로 곡명이 띄워졌다. 바이올린 솔리스트가 나와 협연이 시작되고 '짜파구리'라는 제목이 나타나자 반가워서인지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아카데미 4관왕의 영화 <기생충> OST 중 2곡이 세계 초연되었다며, 그는 특유의 부끄러움을 담아 그러나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대중가요, 연극과 뮤지컬의 음악, 봉준호 감독 외 여러 영화의 오리지널 스코어, 다큐멘터리와 전시회의 연주곡까지. 그리고 유일한, 최고의 아티스트가 될 수밖에 없는 한국 전통음악과의 협업... 나는 정재일의 음악 속에서 웃고 운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기승전결의 서사를 느낀다. 가장 순수한 그의 예술을 통해 영감을 받고, 동시에 그를 한없이 질투한다.


언젠가 그는 우리의 전통음악이 '그저 아름답기에'  좋아한다고 했다. 오늘 100분 동안 그의 세계에 흠뻑 취해 있으면서 생각했다. 나도, 그의 음악이 그저 아름답기에 정재일이 좋다고. 이 놀라운 세상을 계속 더 들려달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59 - 나의 페르소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