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미국 시간 2022년 12월 2일 오전 카타르 월드컵H조 마지막 경기 한국 vs 포르투갈 매치가 있었다. 지난주 목요일 축구 강국 우루과이를 상대로 아무도 골을 못 내고 0:0으로 비기고, 그다음 경기에서는 골이 빵빵빵빵 이리저리 터지더니 이기리라고 예상했던 가나를 상대로 2:3으로 패해버리고, 이제 포르투갈과의 경기만 남았다.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가며 16강 진출 경우의 수를 따지는데 이미 내 머리에서는 희망의 끈이 얇아지다가 끊어질 듯 말 듯 불안 불안했다. 아침에 일어나 첫째 아이 도시락을 싸려다 말고 경기를 보기 시작한 신랑한테 가 보았다. 7시 5분 즈음이었는데 이미 포르투갈에서 선제골이 터졌단다.
게다가 벤투 감독이 퇴장까지 당한 상황이라 필드 바로 옆에서 코칭을 해줄 감독 없이 승리를 이끌어내는 게 가능하려나. 입 밖으로 내진 못했지만 이미 내 마음속에는 패배주의적인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전반에 한국에서 골을 터뜨려내며 1:1의 상황에 다다랐다. 내 눈으로 희망의 떡잎이 틔웠음을 보았어도 여전히 나는 그 여린 싹을 두고서 안개를 더 짙게 짙게 만들어냈다. 포르투갈을 상대로 비기기만 해도 대단하지. 매번 16강 오르는 것도 아니잖아. 지난 월드컵에서도 떨어졌었고. 그나저나 죽음의 조에서 1mm 골로 스페인 격파한 일본도 참 대단하다. 혼잣말이니까 비난을 받을 일은 아니지만 그다지 건강하지 않은 생각들을 뿜어내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부정적 안개로 속을 채워갔다. (그러고도 네가 축구 만화 '빌드업'의 팬이라 자처할 수 있겠냐?! ㅠㅠ)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역전골이 터지고야 만다, 그것도 후반을 이미 넘긴 시간, 90 + 연장전의 1분에!
경기도 뛰지 않는 나는 체력도 떨어지고 정신력도 흐트러질 때라며 포기를 했는데, 어떤 이들은 위기의 순간에도 희망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고 그리고 그것을 180도 탈바꿈해내는 것을 보았다. 얼굴뼈가 으스러졌던 손흥민이 마스크를 낀 채로, 시야도 잘 안 보이고 폐가 터질 듯이 아픈 그 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필드를 가로질러 나간다. 그리고 포르투갈 수비수들이 손흥민에게 우르르 몰려있는 사이 스루패스로 동료에게 넘겨주고 황희찬은 그걸 또 침착하게 골로 연결해내는 역전극을 만들어내고야 만다.
햇빛이 짙은 안개를 뚫고 싹을 틔운 땅에 가닿는다.
겉으로는 신랑이랑 손뼉 치고 점프하고 환호하며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두 손을 싹싹 빌며 우는 중이었다. 열심히 경기를 뛰어준 대한민국 선수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리고 내가 치르는 인생 경기에서도 오늘의 나 같은 관람자, 나 같은 선수는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부를 펼치기도 전에 낙오자처럼 굴어선 안되었다. 우리 앞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는 거니까.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 안될 것 같다며 미리 물러서서도 안되었다. 그때가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순간일 수 있으니까. 어제 마침 브런치에 코로나 격리 마치고 근육 빠진 다리로 후달거리며 걸었던 산책에 대한 글을 썼었는데 몸은 고사하고 마음의 노화를 막는 것, 정신 무장이 더 급한 일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