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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Dec 07. 2022

암탉도 암치료가 가능한가요?

암치료는 불가능하지만 품위있는 죽음은 가능합니다.

둘째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는 암탉 2마리가 살고 있다. 닭장에 가둬놓고 모이랑 물을 주며 키우는 게 아니라, 그냥 반려 동물 마냥 유치원 곳곳을 느긋하게 걸어다니며 지낸다 ㅋㅋㅋ 너무 당연한 일상이라 아이들도 닭이 걸어온다고 놀라는 기색도 없고 만져보겠다고 달려드는 일도 없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바닥에 앉아 인형 놀이도 하고 의자에 앉아 색칠 공부도 하고 놀이터 나가서 뛰어놀고, 닭은 닭대로 여기저기 구경하며 돌아다니다가 아이들 간식 시간이 되면 테이블 사이를 걸으며 떨어지는 부스러기들을 콕콕 주워먹는 삶을 살고 있다.


병이 들어 아픈 캐시와 그 옆을 지켜주려는 든든한 친구 비티

검은털을 가진 캐시는 이렇게 살아온 지 6년이 되었고, 황토색 털을 가진 비티는 무려 8년째 아이들 곁을 지키고 있다. 원장 선생님 말로는 이 전에 한마리 더 있었는데, 그 아이는 무려 14년을 살았다고 한다.


이렇게 온전하게 자기 몫의 생을 다할 수 있다면 닭은 8-10살까지 살 수 있다고 한다. 월드컵 경기가 있던 지난주였나, 탈육식을 지향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 동물해방물결 - 을 통해서 한국인이 즐겨먹는 치킨은 고작 한달 남짓 살다가 도살되는 아주 어린 병아리, '육계'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한테 말을 해준 건 아니지만 풍기는 분위기에서 자신이 생명체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우아함을 물씬 풍기는 캐시와 비티.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한달만에 죽어야만 하는 어린 생명. 그 간극을 떠올리니 머리가 아찔해졌다. 나도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데, 내 새끼 몸 키우려고 남의 새끼 죽이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이기적으로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며칠 전 한달에 한번 있는 학부모 봉사를 하러 유치원에 가게 되었다. 몇 주전까지만 해도 아무일 없어보이는 캐시가 잘 걷지를 못하고 앉아만 있었다. 크리스타 선생님 말로는 캐시가 뒤뚱뒤뚱 걷는 모양새가 이상하길래 동물 병원에 데려가 보았더니 캐시가 암에 걸렸다고 한다. 요즘에야 치료 방법이 많이 나왔지만, 몇 십년 전만 해도 사망 선고처럼 들렸던 무시무시한 병, 암. 그렇기에 암에 걸린 닭을 앞에 두고 분위기를 무겁게 잡아줘야 하나 싶은데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병원에 다녀왔다던 크리스타에게 이런 질문을 해버렸다.


"근데 암탉도 암치료가 가능한가요?"

내가 질문 해놓고도 좀 황당해서 입가로 웃음이 살짝 비어져 나왔다. 유쾌한 성격인 크리스타도 내 질문을 듣더니 같이 웃음이 터졌다. 이렇게 동물병원으로 와서 닭한테 암을 발견하는 경우도 드물거니와, 닭한테 해 줄 치료는 따로 없다고. 그냥 이렇게 평소처럼 지내다가 때가 되면 삶을 마감하겠지라는 대답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캐시를 안아올리고 깃털을 듬어 준다. 생명 대 생명으로 존중과 위로의 마음을 담아. 그 마음이 전달되는지 캐시가 부드럽게 구구구구 소리를 낸다.


치료는 불가능하지만 캐시의 죽음은 인간의 이기심으로 더렵혀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감사했다. 목이 따이지 않고 털이 뽑히지 않고 몸과 날개가 분리되지 않은 채 숨을 거둘테고, 그 뒤에는 온전한 몸으로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품위있는 죽음은 가능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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