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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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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Dec 09. 2022

세계적인 작가의 집이 우리 동네에 있다고?!

드넓은 땅에 점 하나 콕 찍어 닿은 인연

최근 '문학동네'라는 출판사에서는 '작가들의 작가, 더 알고 싶은 작가'라는 컨셉 하에 올어바웃북(All About Book)이라는 시리즈를 기획하여 선정된 작가가 쓴 기존의 책들 혹은 새롭게 출판되는 책을 홍보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전자책으로도 무료 배포되는데 작가의 생애를 자세히 다루고, 그간 출판된 책들이 잘 정리되어있다. 게다가 그 작가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후배 작가들의 생각(작가 지망생인 나에게는 대선배님들이지만)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게 읽고 있다. 거장의 작품이 아니라 그의 삶, 인생에 숨은 소소한 뒷 이야기를 듣려주는 전략이 어찌나 잘 들어먹는지 나는 문학동네에서 이 시리즈 책자가 나오는 족족 훌렁훌렁 넘어가는 중이다.


크으, 복슬복슬 아프로 머리 스타일하고 씨익 웃으며 쳐다보시니 책을 열지 않고는 못 베긴다.

첫번째 작가는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커트 보니것 (Kurt Vonnegut)'이었다. 일단 표지만으로도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이 위대한 작가가 얼마나 괴짜같을런지, 그의 머릿 속에는 대체 어떤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들지 않는가? 아는 언니가 강추하며 빌려주었지만 영어책이라서 100% 몰입을 못해서 안타까웠던 '타임퀘이크'의 작가이자 내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존경하는 작가라니까 더 눈이 갔다. 마침 이 책을 읽었던 날이 11월 12일이었는데, 책자에 실린 타임퀘이크 서문에도 1996년 11월 12일이 나와서 운명과 같은 전율을 느끼며 책을 빌려줬던 언니에게 카톡을 보내기도 했다. 그랬더니 커트 보니것에 대한 다큐멘터리 Kurt Vonnegut: Unstuck in Time를 추천받아 작가의 생애를 영상으로 볼 수 있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그였지만 작가의 목소리를 듣고 담배를 피우며 고민하는 모습, 타자기를 치며 작품을 써내려가는 모습까지 지켜볼 수 있으니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올어바웃북의 주인공으로 선정된 작가들의 작가는
바로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 


바로 이 글을 쓰게 된 장본인이기도 한데, 커트 보니것은 한권이래도 읽었는데, 브런치 대문에 작가 지망생이라는 타이틀을 걸어 놓은 것이 민망하게시리 나는 단편 소설의 거장이라는 이 분의 작품을 여태 읽어보지를 못했다! 근데 홍보 문구를 보자마자 눈이 띠용 튀어나왔는데 커트 보니것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존경하는 작가 정도로 나왔는데, 레이먼드 카버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뷰가 아예 인용되어 있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레이먼드 카버는 나의 가장 소중한 문학적 스승이었으며, 가장 위대한 문학적 동반자였다." 이쯤되니 무라카미 하루키를 팬인 나로서는 이 책을 안 열어보고 견딜 수 있겠는가?

이렇게 뚫어져라 쳐다보시는데 책을 살 수 밖에 없지요. 표지 사진 선정하시는 문학동네 디자인팀(?) 칭찬합니다.


책을 열자마자 그의 생애쭉 펼쳐진다. 미국 단편 소설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는 이 세계적인 작가의 을 따라가다보니 눈에 익숙한 단어가 마구 튀어 나온다. 책자에는 우리 동네 이름! 그것도 서울특별시나 강동구도 아니고, 성내 2동 정도 느낌으로 가까운 지역명이 책자 이곳 저곳에서 튀어 나온다. 


알다시피 미국의 땅 크기는 남한 규모가 아니다. 서울에 살다보면 대문호가 태어난 곳, 질풍노도 유년기를 보냈던 곳, 그가 거쳐왔던 교육 기관, 그가 가족, 친구, 동료들과 걸었던 장소들과 겹치는 일이 부지기수겠지만 미국은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 하나만 해도 이미 남한 땅의 3배이고,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3번째로 커다란 주이며 이런 주가 50개나 있는 곳이 미국이다. 머리로 쉽게 가늠이 안되는 땅 덩어리에서 점을 하나 콕! 찍어서 이 사람과 내가 같은 길을 걸었고, 그 길을 따라 장을 보러 가기도 하고, 어딘가에서 술을 한잔 기울이며 그의 커리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운명적 파트너와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었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나 신기했다.

흐이이익!!! 고든 리시가 수정한 카버 원고 교정지

1967년 레이먼드 카버가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와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카버는 교과서 편집자로 취직하게 되었는데, 맞은편 건물에서 일하고 있는 고든 리시(Gordon Lish)를 만나게 된다. 작가이자 편집자인 고든 리시는 레이먼드 카버의 커리어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인데 이 둘의 만남은 문학사적으로도 주목할만 하다. 리시를 통해 카버의 작품들이 주목을 받게 된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1988년 카버가 죽은 지 3년이 지난 1991년에 밝혀지기를 '대성당(1983)' 이전의 카버의 소설들을 편집자 리시가 거의 재창작에 가까울 정도로 수정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문학계에 엄청난 논란이 일기도 한 이 사건을 통해 카버의 소설집 중 하나인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1981)'은 수록 작품들의 초고를 복원한 또 다른 판본이 존재하게 된다. 카버의 두번째 부인이자, 작가 사망 후 작품 관리 권한을 물려받게 된 테스 갤러거가 고인이 된 남편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온 힘을 써서, 20년이 지난 2009년에 '풋내기들(2009)'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출판된 책을 다른 출판사와 계약하여 재간행을 하게 된 것이다. 두 판본의 내용이 대체 얼마나 다르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궁금해진다.

레이먼드 카버가 살았던 주소지

올어바웃북을 다 읽고, 레이먼드 카버의 삶의 궤적을 면밀하게 훑어간 책 '아르테 클래식 클라우드 013 - 레이먼드 카버' 읽기까지 이르렀다. 마침 레이먼드 카버 평전의 번역자이기도 한 고영범 작가님은 카버가 살았던 집주소까지 언급을 해주셨는데, 주소에 나온 길 이름이 너무나 익숙했다. 그 길의 이름은 아이들의 학교에서 정말 너무나 가까운 곳이었다.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와 둘째 아이의 유치원의 교차점에 있는 곳이다.


본인을 작가 지망생이라 소개하는 나는 이미 작가된 사람들이 존경한다는 작가, 이먼드 카버가 살았던 공간으로 갔다. 그는 이 곳, 아니 이 세상을 이미 떠나있지만 그가 언젠가 살았었던 집 앞에서 사진을 찍어본다. 카버는 작가로서 주목을 받긴 했지만, 고영범 작가님이 '무일푼'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가 쓴 소설들로 안정적인 부를 이루지 못해 삶의 전반에 크고 작은 굴곡이 많았다고 한다. 주옥같은 작품을 만들어 나가면서 카버는 창작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술에 의지하고 내리막길을 내달릴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아마 이 곳에서도 그런 순간을 지나갔겠지 (1983년 그의 대표작 '대성당'을 써낸 것을 보면 그의 삶이 계속 바닥으로만 내달린 건 아니리라.)


주소지의 집 앞에 놓인 하얀 팻말을 보니 작년에 집주인이 시티에 재건축 허가를 제출한 상황이었고, 앞으로 이 자리에는 깨끗한 2층짜리 집이 들어서게 될 예정이란다. 허물어질 듯한 지붕과 벽을 보는데, 이 건물은 높은 확률도 카버가 살았던 그 시절에도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문학계에 한 획을 그은 세계적인 작가이기도 하지만, 비루한 일상 속에서도 어떻게든 작품을 써보려고 고군분투했던 이웃을 향해 반세기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존경과 위로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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