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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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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Dec 10. 2022

뿌리도 뽑힐 기세로 살아가

조금은 어리석다 할지 모르지만

식물을 좋아해서 플랜트 맘을 자처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한두 개씩 모인 아이들이 이제 다섯이나 되었다. 가장 나이 많은 녀석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오자마자 샀으니 벌써 7살, 아니 곧 해가 바뀔 테니 8살이 되었다. 영어로는 Money Tree라 불리는데 한국어로 검색해보니 '파키라'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이름이 있다. 


우리 집은 해가 잘 들지 않고 살림을 하는 나도 손이 빠르지 못해 식물이 건강하게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처럼 해외살이하는 한국인들은 1-2년에 한 번쯤은 고국을 방문해 한 달 두 달 장기간 집을 비우게 되니 미안하지만 식물에게는 최악의 환경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머니트리는 오래간 잘 버텨주었고 여전히 자기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 싱싱한 초록빛을 내뿜고 있다.


우리 아이가 머니트리의 첫 번째 집을 만들던 날

초반에는 첫째 아이가 여름 행사에서 만들어왔던 자그마한 테라코타 화분(손으로 작업하신 추상화가 그려져 있음 ㅋㅋㅋ)에 심어서 부엌 카운터에 놓았다. 근데 하나, 둘 식물 친구들이 생겨나고, 각종 부엌 기기 - 엄마의 에어프라이어와 아빠의 커피머신 - 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나니 부엌 카운터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후반(이라 쓰지만 아주 최근에서야)에는 선반 하나를 장만해 부엌의 식물들을 모두 창가 쪽으로 이사시키기로 했다. 


창가 가까이로 자리도 옮겨주고, 옮기는 김에 화분도 몇 개 사서 비좁은 집에서 조금 넓은 집으로 분갈이를 해주며 영양제도 쏙쏙 심어주었다. 그간 받아보지 못한 보살핌이 너무나 좋다는 듯이 조그마한 잎만 겨우 피어내던 머니 트리에서 엄청나게 긴 이파리가 생겨났다. 미안하게시리;;



(좌) 줄기 뒤에 붙어있어 축 쳐지지도 못하고 일어나서 자라는 아보카도 잎 (우) 햇볕에 가까이 가려고 점점 더 창가로 기울어져가는 머니트리

소리 내어 말도 할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데 살아있는 생명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식물들, 너무나 미묘해서 알아채기 힘든 그들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게 이럴 때 하는 말인가 보다. 


식물들은 햇볕이 따사롭게 드는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햇볕이 내려오는 방향을 향해 기울어진다. 아보카도  중 줄기의 뒤쪽, 창가 반대쪽에 붙어있는 건 아래로 축 처지지 못하고 혼자 일어서서 살아가는데 그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대견하다. 그리고 가장 나이 많은 머니 트리는 빛을 원하는 마음이 어찌나 갈급한지 창문으로 기울어지며 흙에 내리고 있는 자신의 뿌리가 거의 뽑힐 기세다. 저러다 뿌리가 상하도록 기울어져 버리면 안될텐데......85도에서 75도, 조만간 45도 각도로 예의 바른 인사를 할 최연장자 반려 식물이 오며 가며 눈에 밟혔다. 


자기 몸이 상할지도 모르는데 그것도 무릅쓰고 무언가를 강하게 소망하는 모습을 보니 말 못 하는 녀석을 응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내 삶에도 저렇게 강한 염원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모르는 채 넘겨버리지 않고 먼저 챙겨주실 것도 같아서. 분갈이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화분을 사서 흙을 채우고 머니트리가 깊게 뿌리내릴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뿌리 위쪽으로는 흙을 더 단단하게 덮어주었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머니트리 가장 위쪽에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새 생명이 보였다. 마음이 든든했다. 이 아이는 걱정 없이 빛을 맘껏 사랑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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