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 (2022)
짧디 짧은 미국의 겨울 방학 한가운데에 쏙 끼어있는 첫째 아이의 생일. 연초라서 친구를 만나기도 애매하고 캘리포니아의 겨울이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그 날을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온 가족이 함께 영화관에 다녀왔다. 콘텐츠 큐레이팅에 탁월한 재능을 선보이는 신랑이 추천해 준 작품은 최근에 개봉한 드림웍스의 장화신은 고양이였다.
Puss in Boots: The Last Wish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
소원을 들어주는 별이 세상에 떨어진다. 장화신은 고양이 푸스를 포함하여 소원을 마음에 품은 동화 속 주인공들이 쏟아져나와 그 별을 쟁탈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위에 보이다시피 영어 제목의 The Last Wish, 고양이인 푸스가 자신의 9개의 삶 중에서 마지막 생을 두고 마음에 품은 말 그대로 '마지막 소원'이 한글 제목에서 '끝내주는 모험'으로 바뀌어있다. 마지막 소원을 향한 끝내주는 모험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푸스가 슈렉에 나오는 조연이라는 정도만 알았는데, 알고보니 요 귀엽고 카리스마 넘치는 고양이를 필두로 내세운 스핀오프 작품이 이번이 두번째라고 한다. 1탄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11년 전인 2011년에 개봉을 했는데 북미에서는 그다지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진 못하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다시 찾아온, 장화를 신은 특별한 고양이의 2번째 모험은 미국에서 작년 2022년 12월에 개봉을 하였는데 현재까지 영화 리뷰 사이트Rotten Tomato에서 95%의 신선도를 유지하며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참 재밌다고 느껴서 감상문까지 기록하게 되었다. (어릴 때 애니메이션 쾌걸 조로나 삼총사(달타냥~)를 좋아해서 특히 더 그럴지도?!)
이 스토리텔링의 매력은 어디에 있던걸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여러가지 강점이 있는데, 그것을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유행 -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 은 돌고 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매력적인 이야기는 완벽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롭게 느껴지도록 살짝 비틀어내는 작업이고 이 작품은 그것을 훌륭하게 해냈다고 생각한다.
부모 역할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내게 시간적, 물리적 여유가 전혀 없을 때는 옆에서 아이들이 갖은 애교를 부려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도 여유롭고 배도 부르고(!) 공간도 통제 가능하다면? 익숙하고 편안한 상황에서는 아이들의 애교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위험한 돌발 행동까지도 집중할 수 있다. 새로운 인풋에 몰입이 가능하고 침착하게 그에 맞는 대응을 하게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장화신은 고양이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소재들을 재활용하며 청중들이 102분짜리 긴 호흡의 만화를 따라갈 수 있도록 하나하나 빌드업해간다.
일단 캐릭터. 주인공인 푸스를 비롯하여, 골디락스와 세마리 곰 (잭 호너는 영어 문화권의 전래동요라고 함)과 같은 동화 속 주인공들이 나오는데 우리들은 이미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이 캐릭터들이 가진 사정을 알고 있는 편안한 상황이다. 그 안에서 말투나 성격이라던지, 구체적인 외형을 조물조물 주무르며 이전에 없던 면을 덧붙여주면 이야기를 리드할 수 있는 강력한 캐릭터가 만들어지게 된다. 스핀오프 작품이 만드어진 푸스는 말하 것도 없고,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에서는 골디락스와 세마리 곰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동화에서는 말괄량이이지만 누구도 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연약하고 작은 소녀느낌이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까딱 잘못 걸리면 큰 코 다칠듯한 카리스마 마녀 악당 느낌을 질풍노도 사춘기 외형에 잘 풀어낸 듯 하다.
한국 전래 동화에 나오는 인물들이 잔뜩 등장하는 동화를 하나 만들어보거나, 기존의 이야기에서 참하게 등장한 효녀/열녀를 머리가 획까닥 돌아버리게 만든 이야기는 어떨런지 일단 내 머리를 싸매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플롯. 이야기 창작을 배우다보면 한번쯤은 꼭 추천받는 책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20가지 플롯'이다. 인류가 이 세상에 나타난 이후 몇 천년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종이에 쓰여지고 모니터에 보여지는 이야기가 수억, 수조는 될텐데 그것들 중 사람들에게 인기 있었던 것들을 뽑아서 큰 줄기를 가닥가닥 잡아내다보면 고작 20개, 당신이 가진 손가락과 발가락 수로 추려지게 된다. 이 세상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있지만 결혼할 동반자를 고를 때 염두하는 조건이 몇 가지로 추려지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해야하려나. 가장 인기 많은 플롯 중 하나인 모험 플롯은 결혼할 상대방이 예쁨/잘생김이라고 생각해도 될지도. 허허허.
이야기의 짜임새를 뜻하는 플롯은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는 포인트, 즉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장화신은 고양이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구체적인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영화에 나오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당신과 나처럼 모두들 마음에 소원 하나를 품고 그것을 이루고자 모험을 실행한다. 특별히 주인공인 푸스가 가지고 있는 소원은 죽음에의 공포,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원적 두려움에 맞닿아 있어서 나이 어린 청중들뿐만 아니라, 나이가 많은 나같은 청중에게도 공감을 자아낼 수 있던 거 같다. 소원을 이루기 위해 인물들이 길을 떠나고, 이들에게는 여정을 함께 할 동행자가 있다. 어눌해 보이는 동행자를 통해 예상치 못한 배움을 얻어 성장하기도 하고, 어떤 그룹은 너무 철썩같이 믿었던 동행자 덕분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이 부분은 조금 상투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전체 스토리가 워낙 잘 짜여있어서 눈 감아줄 만 했다. )
그리고 유행이 돌고 돈다는 느낌은 현란한 디지털 작업 중간중간 아날로그적인 터치가 강조되었을 때에도 느꼈다. 이건 직접 영화를 보면 느낄 수 있는 부분인데 영상을 따로 따로 떼어오기가 힘드니 굳이 설명을 하자면.......토이스토리 이후 미국의 애니메이션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털을 한올한올 묘사하는 섬세한 3D 연출이 대세인데, 장화신은 고양이 2편을 보면 긴장이 고조되는 장면들마다 거칠게 스케치 및 채색을 마친 듯한 장면들이 교차편집되어 나온다. 거인과의 푸스의 전투, 푸스와 죽음이라 불리는 늑대와의 배틀, 골디락스의 추격 등 속도감이 높은 장면들을 관심있게 봐주기를. 개인적으로는 이런 연출이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여 참 좋았다. 옛날 사람 감성 ㅋ
지난번에 단편소설집 브로콜리 펀치를 읽었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 애니메이션 장화신은 고양이를 보면서도 그렇고, 어떤 것들을 얼마만큼 어떻게 섞어놓을지에 대한 고민에 항상 던져지곤 한다. 그 작업을 해내는 작가의 기량에 따라 작품이 훌륭한 퓨전 음식이 될 수도 있고, 그냥 마구잡이 개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방향은 찾았으니, 쉽진 않겠지만 계속해서 가는 방법을 강구해보자.
여튼 한국은 마침 이번주에 개봉했으니 재밌게 볼 애니메이션을 찾는다면 추천해드립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