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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Jan 01. 2023

큭, 펀치 한방 제대로 맞았다!

이유리 작가님의 단편소설집 '브로콜리 펀치'

나의 브런치에는 '해외 특파원이 발견한 제3의 공간'이라는 협업 매거진이 있다. 벤처 기부 펀드 씨프로그램에서 See Saw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을 위한 흥미로운 공간, 사람, 콘텐츠에 대해 알카이브 해왔는데 그 노력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기록 공간이다. 감사하게도 나는 여기를 통해 좋은 사람, 멋진 분들을 잔뜩 만날 수 있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선한 마음이 장착된 것은 물론이려니와 세상을 보는 눈이 한없이 다정한, 하지만 결코 무디지는 않은, 명민한 여자들과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인스타그램도 놀러 오세요~ 링크도 걸어둡니다~

씨프로그램이 작년부터 도서문화재단 씨앗에 편재되면서 해외특파원으로 운영되는 공식적인 프로젝트는 종료되었지만, 우리들의 인연은 '다'같이 모여 '글'을 쓰고 '다'같이 모여 '글'을 읽기도 하는 '다글다글' 독서모임으로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인스타 아이디 bookclub_dgdg 다글다글 스펠링 때문에 약간 멍멍이 같은 느낌이 나지만 그래서 더 좋다 ㅋ) 마음의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은 - 게다가 세계 곳곳에 퍼져있기 때문에 24시간 꺼지지 않는 - 단톡창이 있어서 외로운 해외 생활을 견뎌야 하는 나에게 더더욱 보물 같은 모임이기도 하다.    


마다 진행되는 독서 모임에서는 자신이 읽었던 좋은 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질 때도 있다. 12월 모임에서 나는 비교적 최근에 읽은 이유리 작가님의 '브로콜리 펀치'라는 단편 소설집을 나누었다.


사실 이 책은 내가 발견한 게 아니라, 다글다글 독서모임에서 일명 '국장님'으로 불리우며 특파원들에게 필요한 정보(.......위에서 내려오는 지령?)를 적재적소에 나눠주시는 새벽두시님에게 추천을 받은 책이었다. 새벽 두시님께서는 내가 (창작) 글 쓴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는 좋은 정보가 있으면 꼭 알려주시곤 하는데 어딘가에서 나를 생각하고, 더 나아가 시간을 따로 내어 연락까지 넣어주시는 고운 마음씨가 너무나 소중하다.




이 책을 추천하실 때 엉뚱 발랄한 느낌의 글들이 왠지 나와 어울릴 것 같다는 말을 함께 해주셨는데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이 말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멘트였는지 절절히 실감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책을 읽기 전부터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따끈따끈한 신예 작가님에게 강력 펀치 한방을 제대로 맞게 된다. 일단 제목 한번 봐주시라. 브로콜리 펀치라니! 가만 생각해보는데 브로콜리의 형태가 정말 권투 장갑 같은 느낌이다. 한 대 맞아도 하나도 안 아플 듯 하지만. 여기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직접 소설을 읽어보시기를! 소설을 쓴다면 재밌고 유쾌한 이야기로 독자들을 깔깔 웃게 만들고 픈 나로서는 단 6글자 짜리 제목에서부터 묻어나는 작가님의 유머에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다.


작가님의 기발한 상상력들은 이렇듯 무심결에 흘려보내기 쉬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일상에서 환상 세계로 넘어가는 문에 꼭 맞아떨어지는 열쇠와도 같다. 말도 안 되게 황당무계한, 일상을 벗어난 환상적인 일이 바로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 안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뭔가 어긋난 현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여기에 바로 내가 좋아하는 [블랙코미디스러운?] 재미가 끼어있는 것 같다. 


요즘에는 이야기의 흐름에 순순히 몸을 맡기고 떠내려가는 독자라기보다는 작가 지망생으로서 여기에서 내가 배워야 할 게 무엇인지 생각하며 글을 보게 된다. 손에 잡히는 지푸라기를 부여잡고 쏟아지는 물결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그 와중에 물 바닥에 숨어있는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상황이랄까. 유투버 브랜드 보이님은 팔리는 브랜드를 만드는 차별화의 전략으로 기존의 것들을 합쳐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믹스를 제안하셨는데, 소설이라는 창작 작업에도 같은 전략이 적용될 것 같다. 


여기에 나오는 단편 소설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미신이라던지, 아니면 한 번쯤은 해볼 법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된다.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던지 (빨간 열매_아빠가 돌아가셔서 화장을 했는데 그 흙에서 아빠가 식물로 환생함) 손톱을 먹으면 요괴가 사람 모습으로 똑같이 나타날 수 있으니까 함부로 아무 데나 버리면 안 된다던지 (손톱 그림자_ 몇 년 전 죽은 전남친이 유부녀가 된 전여친(주인공) 앞에 다시 나타나게 됨)하는 이야기들을 내 나이쯤 되는 사람들은 수백 번은 들어봤을 테다. 덕질을 하는 사람들은 보면 그들이 좋아하는 것에 어쩜 저렇게 헌신적일 수 있는지 종종 그들의 머릿속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은 당신도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을런가(둥둥_아이돌 덕질을 하는 주인공을 외계인들이 연구 대상으로 봄)


앞으로 작가 지망생인 나는 이것저것 붙였다가 뗐다가 이것도 했다가 저것도 해봤다 해봐야 할 듯하다. 그리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안에 담긴 능력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잘 수집해두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책을 읽은 후 들었던 또 다른 생각을 덧붙이자면 정세랑 작가님과 이유리 작가님의 유니버스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에게 있어선 좋은 느낌인데, 좋아하는 취향의 옷을 하나의 브랜드에서 독점당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브랜드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기쁨에 가깝다고 할까? 이유리 작가님이 그녀의 짧은 이야기에서 꾸려간 유니버스는, 정세랑 작가님의 긴 이야기들 - 내가 읽었던 건 다글다글에서 추천받아 제일 처음 알게 되었던 '지구에서 한아 뿐', 그 후 '보건교사 안은영', '덧니가 보고 싶어' 등 - 에서 꾸려간 유니버스와 닮아있다. 이유리 작가님이 쓴 8편의 짧은 이야기, 그것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동행에서 오는 따뜻함이라고 느꼈다. 근데 연결이 짱짱하기보다는 좀 느슨하게 닿아있는 느낌에 가깝다. 정세랑 작가님의 이야기들도 그렇지 않은가? 성글성글하게 짠 일상이라는 뜨개 구멍 사이로 환상이라는 따스한 바람이 솔솔 불어드는 이야기들. 유쾌하고 재밌지만, 독자의 마음에 결코 가볍지 않은 강펀치 한방 내다 꽂는 것도 잊지 않고. 언젠가는 나도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브로콜리 펀치 받아라!

단편 소설집이라 책을 읽는 내내 얼마나 행복했는지, 하나 읽고 또 읽어도 재밌는 이야기가 또 기다리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좋아하는 사탕(현실에서 나는 사탕보다는 초콜릿 파이지만ㅋ)을 아끼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꺼내먹는 마음이랄까. 그녀가 써 내려갈 다음 소설이 너무나 기대된다. 그리고 찾아보니까 마침 한겨레 교육에서 온라인으로 글쓰기 강의를 하는 중이셨다. 강의가 너무 인기가 많아서 금방 마감되는데, 언젠가는 꼭 수강신청 성공하고 싶다. ㅜㅠ 해외거주자라서 다음 차수 알람 제 때 못 받아서 매번 놓치고 있는데 너무 서럽다. 


마지막으로 대문에 걸어놓았지만 전체 모습이 나오지 않아 아쉬워서 걸어놓는 진짜 브로콜리 펀치 사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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