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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Jul 06. 2024

테이블 아래를 들여다보는 일

엘레나 페란테 장편소설 <어른들의 거짓된 삶>

2024년 6월 다글다글 독서모임


엘레나 페란테의 장편 소설 <어른들의 거짓된 삶>은 14살의 주인공 조반나가 사춘기의 열병을 앓으며 어른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다.


나는 마흔 살을 껍데기를 쓰고 있지만 진짜 어른이 되지 못한 나는 어른에 대한 거부감, 저항감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조반나가 겪고 있는 사춘기의 열병은 나에게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나란 녀석은 무슨 피터팬이냐 ㅜㅠ ㅋ) 내가 느끼는 어른의 모습은 느릿느릿 걸어가는 나에게 시간이라는 녀석이 내가 걷는 속도보다 더 빨리 어깨 위로 봇짐을 착착 얹어내는데..... 어깨 위의 짐이 버거워 휘청휘청 거리는 중, 녀석은 씨익 웃으며 내 머리 위로 무언가를 올려준다. 머리 위로 올리길래 순간적으로 왕관이라고 착각했는데, "엄마와 아내"라는 똬리였다. 똬리를 올리자 그 위로 엄청나게 무거운 새참 바구니를 올린다. 나의 미간이 좁아지고 눈 옆으로 자글자글 주름이 진해진다. 목뼈가 눌려 죽을 거 같지만 간신히 고개를 돌려 다른 이를 곁눈질해 보니, 머리 위에 물항아리를 이고 양손에 봇짐, 포대기로 등 뒤에 아기를 단단히 고정시키고 경주하듯 힘차게 걸어 나가는 여자들이 수두룩하다. 허허허.


이번 소설을 읽으며 느낀 점은 참 오랜만에 1인칭 시점의 소설을 읽은 거 같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 저렇게 많은 생각이 지나가겠구나, 내 주변을 둘러싼 어떤 사람들도 나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저렇게 분석하고, 어떨 때는 그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조작하려고 특정 말을 던지고 특정 행동을 의도적으로 했겠구나 생각하니 숨이 막혀오기도 했다.


내가 자라올 때는 타인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이 별로 없었다. 마치 콩나물에 물을 주듯이 구멍 뚫린 통 아래로 술술술술 물을 흘리며 자라 갔다. 내 곁을 흐른 물은 사라지고 없어졌고 나는 위로 자라는 일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이제는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꾸려 나와 다른 타인과 부대끼며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텁텁한 흙이 가득한 화분 안에 뿌리를 내려야 하고, 그 안으로 들어오는 물을 최대한 많이 머금는 삶을 살아간다.


30대 이후로는 테이블 아래로 고개를 내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대해 관찰하고 내 나름의 분석하는 일도 하게 되었다. 근데 열길 물속 알아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하지 않는가.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도 알 수도 없고 종종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된다 할지라도 나의 예상을 벗어나도 너무 벗어나서 못된 장난처럼 느껴지는 일도 있었다. 생각이 많아지다가 사람 관계에서 피로함을 느끼는 건 내가 그랬듯이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나 행동에 의해서 타인이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소용돌이 안에서 허우적대기를 멈추지 않는 조반나와 달리, 저질체력인 나는 내 몸을 수그려 내 눈으로 테이블 아래의 현실 마주하기는 멈춘 듯하다. 그렇지만 안전한 집구석에 쭈그려 앉아 소설을 읽으며 내가 사는 세상 어딘가, 아니면 사람들과 내가 둘러앉은 테이블 아래를 힐끔힐끔 들여다본다. 이 소설을 읽고 20살에 처음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도 다시 읽어보고 있다. 예전 내용이 거의 생각이 안 나서 ㅋㅋㅋ 새로운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막장 드라마의 중심을 뚫고 가는 듯한 이탈리아의 소녀 조반나와 달리, 일본의 사춘기 소년 카프카는 15세의 나날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비교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될 거 같다.   


소설 자체가 워낙 흡입력 있어서 재밌게 술술 읽었는데 이민진 작가님의 <파친코>, 혹은 박서련 작가님의 <채공녀 강주룡>처럼 나폴리 지역 사투리 느낌을 내가 알고 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그 점이 부족했던 거 같아 아쉬운 면도 컸던 소설!


좋았던 문장과 표현들: 묘사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듯 생생하고 재밌는 부분이 많았고, 특히 번역가님의 번역도 아주 매끄러웠다.


제1장>

-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나폴리의 모든 공간도, 얼어붙은 듯 차가운 2월의 창백한 햇살도, 아버지가 내뱉은 문장까지도. 나만 혼자 그곳에서 살며시 빠져나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여전히 문장과 문장 사이에 빠져 헤매고 있다.


- 내 머릿결은 하나도 좋지 않았다. 예전엔 예뻤을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커다란 귀와 축 처진 귓불, 짧은 윗입술 위에 난 거뭇한 솜털이 징그러웠고 아랫입술은 너무 두꺼웠다. 이빨도 젖니처럼 작았고 턱은 뾰족했다. 코는 또 어떤가. 아, 정말이지 내 코너 거울을 향해 볼품없이 튀어나와 있었다. 갈수록 넓적해져서 콧구멍이 시꺼먼 동굴처럼 보였다. (묘사를 너무 찰지게 잘하신다!!!ㅋㅋ)


- "신발 새로 샀어?"

"아니, 원래 있었던 건데."

"못 보던 것 같아서."

"왜? 이상해?"

"아니야."

"원래 있던 신발을 이제야 봤다는 건 뭐가 이상해 보인다는 거잖아."

"그런 뜻이 아니야."

"내 다리가 너무 말라서 그래?"

(너무 호르몬이야 ㅋㅋㅋㅋㅋ40살 아줌마도 여전히 마법 걸리기 전마다 신랑이랑 저렇게 대화한다 ㅠㅠ)


- 내가 그런 행위를 알게 된 건 안젤라와의 즐거웠던 기억이 있어서였다. 언젠가 우리는 텔레비전을 틀어놓은 채 우리 집 소파에서 다리를 교차시키고 마주 누웠었다 누가 먼저 그러자고 한 것도 아닌데 조용히 인형을 서로의 사타구니 부분에 갖다 대고 인형을 꾹 누르고 비비면서 수치심도 없이 몸을 비틀었다. 우리 틈에 낀 인형은 생기 넘치고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그때와의 달리 지금의 쾌락은 즐거운 놀이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키 소설, 1Q84였나, 거기서도 10대 여자애들 둘이서 서로의 몸을 탐색(?)하는 묘사가 나왔었는데 이런 게 생각보다 흔한 경험인가 싶기도 하고....... 10대 시절 나는 밥 먹는 데 집중하느라 테이블 아래에서는 의자 발받침이나 바닥에 발만 딛고 살았는데......-,.- 쩝!)


제2장

- "내 발등 위로 올라와봐."

"아플 텐데요."

"올라오라니까."

내가 발등 위로 올라가자 고모는 정확하고 우아한 동작으로 음악이 멈출 때까지 방 안을 빙빙 돌았다. 음악이 끝나고 춤을 멈춘 다음에도 나를 놓지 않고 꼭 껴안은 채 말했다.

"네 아빠에게 말해. 내가 엔초와 처음 만났을 때 췄던 춤을 함께 췄다고. 꼭 그렇게 전해줘. 한마디도 빠뜨리지 말고."

"그렇게 할게요."

"그럼 그만 내려가렴."

고모가 나를 확 밀어내는 순간 나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고모의 온기가 사라지자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았지 때문이다.

(읽자마자 영상이 머리에 그려지는 장면..... 이래서 넷플릭스에서 영상화했나 싶다.)


제3장

- 자코모 신부는 그를 친근하게 '우리 로베르토'라고 불렀다. 신부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종종 함부로 대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 로베르토였다고 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린아이가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아이들을 함부로 대한 적이 있다. 그때 예수님은 '무엇을 하는 거냐. 아이들을 내쫓지 마라. 그들이 내 가까이 오게 놔두라"라며 그들을 꾸짖었다.

"어른들의 불만이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게 이렇게 연결이 되네!!)


- 고모는 어깨를 흔들면서 입술을 오므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몸을 지나치게 뒤로 홱 젖히자 볼썽사납게 쩍 벌린 다리보다 상체가 더 길어 보였다.

(묘사가 너무 재밌고 리얼하다 ㅋㅋㅋ이건 번역가님도 아주 잘하신 듯!!)


(독서노트 남길 게 너무 많네 ㅜㅠ  다 못 옮겨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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