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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Jan 16. 2023

'요즘 뜨는 브런치북'   내 마음은 가라앉는다

작년 하반기부터 글을 열심히 써야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브런치를 매일같이 드나들고 있다. 컴퓨터로 핸드폰으로 시도 때도 없이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근데, 지난 12월 브런치에서 앱을 개편하면서 소문자 b가 그려진 아이콘을 누르고 만년필이 술술술 글을 쓰는 듯한 로딩 단계를 지나 엄지 손가락으로 한 두어 번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Today's Pick 요즘 뜨는 브런치북 마주보게 된다. 이건 더 하단에 있는 완독률 높은 브런치북, 에디터픽 신작 브런치북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요즘 뜨는 브런치북'은 독자 유입이 많은 브런치북을 1-10위까지 순위별로 보여주는 것으로, 완독을 하지 않더라도 인터넷의 파도를 타며 이리저리 부유하는 온라인 독자들의 특성상 같은 작가님의 브런치북이 여기에 2-3개씩 올라와 있기도 하다. 물론 그 정도 순위에 올라가 있는 작가님이라면 (나도 몇 번 들어가 봤는데) 글맛깔나게 잘 쓰시는 걸 인정한다.  


근데 '요즘 뜨는 브런치북'을 보면 내 마음가라앉는다. 차분한 게 아니라, 한 없이 우울하게. 인기 가요가 @주간 차트 1위를 기록하듯 요즘 뜨는 브런치북도 몇 주씩 부동의 순위를 지켜내는데 작가 지망생으로서 승승장구하는 작가님들을 지켜보는 게 우울한 게 아니다. 조금 다른 면에서 껄끄러움을 느끼는데, 한 달이 넘도록 지켜보건데 1-10위 중 많은 주제들이 힘든 결혼 생활에 대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냥 10개 중 서너 개만 되어도 넘어갈 텐데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은 책들 10권 중 8-9권이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웹소설 시장에서도 남성향 소설 플랫폼과 여성향 소설 플랫폼이 나눠져 있듯, 이것도 브런치에 유입되는 독자 특성 - 아마도 30-40대 주부?- 이 반영된 인기 주제일 테다. 


나도 항상 평탄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시월드도 없고 하지만 친정이라는 비빌 구석도 없이 버텨온 해외살이 결혼 11년 차. 그 긴 시간을 30년 넘게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 둘이 한 공간에서 지지고 볶았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로 묶어 한 배에 태워놓고는 생전 처음 해보는 미션들(옛다~ 첫째 받아라~둘째 받아라~)의 바다로 툭툭 던져지니 얼마나 말 많고 탈 많았겠는가. 형제만 있는 집의 꼼꼼쟁이 첫째로 자란 신랑과 자매만 있는 집의 덜렁이 (+고집쟁이) 막내인 내가 얼마나 부딪혔을런지는 당신의 상상에 맡기겠다. 10년이 넘어가니 당장 폭발할 듯한 (멍멍!) 싸움은 줄어들었지만 일상 곳곳에서 소소한 티격태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주제들만 보려고 작가님들 이름은 지웠어요. 결혼결혼결혼~ 그것이 문제로다!!


그래서일까, 글쓰기 공간인 브런치는 일탈의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내가 풀타임으로 뛰는 엄마와 아내라는 역할을 던져버리고 여기에서만큼은 작가를 꿈꾸는 나 자신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했다. 근데 여기에도 현실 이야기가 바글바글하다. 결혼과 이혼, 이혼, 이혼.......후아........좀 전에 나한테 잔소리했던 신랑 얼굴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고 글을 써야겠다는 의지한꺼풀 꺾여버리고 만다. 마치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일에 관련된 무언가를 마주쳐 숨통이 턱 막히는 느낌이랄까. 이래서 내가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도 안 보는데 ㅋ


브런치 내부 관계자한테 작업 환경 개선 차원에서 피드백이라도 드려야 하는지, 오늘도 글을 쓰려면 저 앱을 열어야 할 텐데 벌써부터 저길 어떻게 지나갈지 걱정이다. 내가 피드백을 드린다 한들, 우주 속 먼지같은 일개 사용자의 의견보다 대중들이 환호하는 게 중요하니까 그냥 흘려들으시려나. 요즘 위로 뜬다면서 나를 아래로 짓누르는 주제들을 언제까지 마주해야할지 겁이 난다.


오랜 시간 정성들여 글을 쓰시고 브런치북으로 완성하신 작가님들의 노고는 너무나 존중합니다. 이 글은 개별의 브런치북에 대한 제 마음이 아니라, 단지 인기있다는 이유로 장기간 유사 주제로만 구성된 '요즘 뜨는 브런치북'이라는 목록에 대한 우울한 마음임을 알아주세요.


조만간 결혼/이혼이 아닌 다른 주제의 다양한 브런치북이 순위를 점령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묵묵히 내 글이나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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