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도에서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작은 땅 한반도, 그걸 또 반으로 쪼갠 작디작은 내 고향땅 대한민국. 그 좁은 곳을 벗어나 해외로 나오면 종종 이질감을 넘어서 충격 수준으로 다가오는 문화 차이를 경험하게 된다.
당신에게 있어 기억에 남는 문화 충격은 무엇인지..... 나이 많은 어른도 이름(First Name)으로 부를 수 있고 코찔찔이 초딩이 60대 할머니 쌤에게 반말로 질문을 던져도 문제 되지 않는 언어? 검정 눈에 검정 머리뿐만 아니라, 초록눈, 파란 눈, 갈색 눈, 노란 눈, 회색 눈, 오드 아이부터 빨간 머리, 노란 머리, 갈색 머리, 곱슬머리까지 서로 다른 조합이 만들어내는 외형의 어마어마한 다양성? 연인 사이도 아닌데, 포옹에다 볼에 입까지 맞춰주는 강도 높은 스킨십? 한국에서는 재활용 분리수거, 음식물 쓰레기 분리에 종량제까지 실시하며 열심으로 환경보호 실천하고 있었는데 막상 태평양을 건너보니 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너무 관대한, 아니 무지막지한 쓰레기 처리 방식?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손에 꼽는, 미국에서 산지 10년이 훌쩍 넘고 20년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처음 만난 문화 차이의 간극이 너무 멀어 아찔했던 충격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얼마 전에 썼었다 -> 병원 1회 방문으로 진료비 (핵)폭탄을 맞을지도 모르는 무시무시한 자본주의 원리의 의료 체계. 이번 글에서는 개인적으로 충격받았던 또 다른 문화 차이를 풀어보려고 한다. 그건 바로,
물을 어떻게 경험하는가
나에게 있어 몸에 닿는 물은 부정적인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 (마시는 물과 뜨끈뜨끈한 물과 함께 여유롭게 즐기는 목욕은 제외. 후자에 대해서는 '목욕 중독'이라는 제목의 예찬글까지 올리기도 했다.)
이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는 영감을 얻은 날도 몸이 찌뿌둥하고 회색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괜스레 무거워지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였다. 온 세상으로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한국에서 지냈던 나의 20년과 그때 내가 경험했던 물에 대한 기억을 하나둘 끄집어 보았다.
고등학생 때는 없는 것 같은데,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다니던 학창 시절 친구들과 수영장으로 놀러 갈 때가 종종 있었다. 깡마른 내가 느끼는 물의 온도는 놀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입술과 손톱이 시퍼렇게 변할 정도로 차가웠다. 그때만 해도 노는 무리에서 홀로 벗어나는 게 엄청난 일처럼 느껴져서, '난 추워서 몸 좀 녹이러 갈게.' 이 말 한마디 못 꺼내고 얼음장같이 차갑게 느껴지는 물에서 악으로 깡으로 버텨내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이랑 웃으며 놀은 들, 이게 깔깔 웃고 있는 건지 이빨 딱딱 부딪히는 중인지 알 수 없던 시간들.
물의 온도가 문제라면 수영장 대신 해변으로 가는 건 어떠려나?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미지근하게 데워진 바닷물이라면 문제가 좀 덜 하려나? 바다는 바다대로 문제였다. 어린아이 머리로는 좀체 가늠되지 않는 깊이와 넓이의 짓푸른.......내 눈에는 회색처럼 보였던 바다, 저 멀리 수평선에서부터 끝없이 넘실대며 다가오는 파도는 넋 놓고 보고 있으면 멀미가 날 정도였다. 고약하게도 녀석들 중 몇몇은 내 키를 훌쩍 넘어 머리 위로 덮쳐오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은 수영을 잘 못하는 나에게 높은 파도가 출렁 넘어오자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고 헛발질을 하며 정신없이 허우적댔다. 그 와중에 내가 발버둥 치는 곳은 어떤 바다 생명체가 나를 공격할지도 모르는 미지의 공간이라는 사실이 공포를 극한으로 치닫게 했다. 다행히 발목을 잡아 끄는 듯한 물에서 빠져나왔지만, 자칫 저 안에서 물을 꼴깍꼴깍, 2번이라도 들이키게 되었다면 빠져(溺) 죽을지도(死) 모른다는 공포가 내 머리에 각인되고 말았다. 근데 또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바다에만 가면 장난꾸러기들이 되는지, 웃으면서 사람을 바다로 내던지는 모습을 보면 내 심장은 쿵쾅쿵쾅 방망이질하게 된다.
이처럼 물은 익사라는 특정 형태의 죽음과 연결되었다. 머리에 새겨진 공포는 당시 IMF의 타격에도 불구하고 대히트를 쳤던 할리우드 영화 '타이타닉'을 보며 구체화되어갔고, 바캉스나 장마철의 사고들, 세월호의 비극을 보며 살갗에 파고드는 현실로 다가왔다.
몸에 물이 닿게 되는 또 다른 날은 비 오는 날이다. 그런 날 운전을 하지 않는 엄마와 외출을 하게 되면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 이동을 해야 했다. 엄마는 앞자리에 타고 나와 언니가 뒷자리로 들어간다.
어린 시절에는 싫어하는 감각이 극대화되곤 하지 않는가? 싫어하는 양파의 맛이 입 안에서 폭발하는 것 같고, 변기에 싼 응아가 너무 커서 내 엉덩이에 닿을 것만 같고, 내 손톱보다 작은 벌레가 오로지 나만을 향해 공격해 올 것 같지 않는가? 그래서일까, 나는 비록 1초일지라도 빗물에 젖은 손잡이를 잡아당겨 문을 여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문을 열고 택시 특유의 지독한 향수 냄새와 비 오는 날의 눅눅함이 섞인 차 안으로 몸을 구겨 넣는 것은 더더욱 고역이었다.
버스나 전철은 손잡이를 열어야 하는 일은 없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괴로운 건 마찬가지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만원 버스나 전철을 타면 종아리나 허벅지에 우산이 닿기 마련이니까. 바지나 양말이, 신발이 흠뻑 젖어버리게 된다 (그때는 왜 비 오는 걸 알면서도 장화를 신지 않았던 건지......)
이렇듯 원래도 물과 상성이 잘 안 맞던 개인이었건만 한국 문화에 의해 물을 더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 이유도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산성비를 맞으면 대머리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머리숱이 적어 머리카락 한올한올이 소중한 나로서는 상상할 수록 무서운! 누구에게 들은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 루머를 철석같이 믿으며 비 오는 날에는 반드시 우산을 써서 머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비가 오면 지붕 아래로 꼭 몸을 피하고 편의점에서 급하게 산 못생긴 비닐우산이 서너 개가 되어 툴툴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늑대의 유혹'에 나오는 강동원의 우산씬, 영화 '연애소설'에서 주인공 세 명이 옷 아래에서 함께 비를 피하는 장면, 영화 '클래식'의 명장면들, 비 오는 날이기에 가능한 낭만만큼은 인정한다.) 매년 장마가 예정되어 있는 한국에 살면서 20대에 이르러서는 비 오는 날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산뜻하게 만들어 줄 고급 우산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덜컥 유학을 오게 되었다. 처음 살던 곳은 뉴욕주의 시골 마을이었는데 여기는 한국과 날씨가 많이 비슷했다. 학교가 시작하기 조금 전인 여름에 도착했는데 마침 한국의 장마처럼 비가 한참 내리는 중이었다. 삶에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들이 있지 않은가? 그때가 그랬다. 되돌아보니 이건 바로 문화 충격을 받던 순간이어서 그랬던 거 같다.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캠퍼스를 걸어가던 한 여학생을 목격했던 날. 그때만 해도 레깅스가 보편화되기 전이었는데 그녀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아주 풍만한 체형이었는데 엉덩이 위로 컵을 올려놓을 수 있을듯한 오리 궁둥이, 그 실루엣이 훤히 보이는 쫄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문화 충격이었건만, 더한 충격은 다른 데에 있었다. 내 기억 속 그녀는 민망한 레깅스 위로 바람막이 방수 재킷 하나를 뒤집어쓰고는 쏟아져내리는 빗 속을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우산이 없었다.
대머리가 될 위험에 노출되었음에도 그녀는 급하지 않다. 나와 동양인 친구 한 명은 비 한 방울이라도 맞을세라 우산 아래에 몸을 숨기며 종종걸음을 재촉하다 그녀를 제치고 앞서 걷게 되었다.
미국에 이제 10년 넘게 살게 되니, 그때는 의아했던 그 모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녀는 어딘가에 차를 주차해놓고 수업을 들으러 교실로 잠깐 이동을 하는 중이었으리라. 미국은 땅이 넓다 보니 자동차로 이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차에서 건물로 이동하는 잠깐동안 비를 맞을 텐데 그거 피하려고 트렁크에서 우산 꺼내고 안으로 들어가서는 젖은 우산을 접고 챙겨야 하는 것보다 그냥 후디 뒤집어쓰고 휙~ 이동하는 게 간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외국은 눈이나 비를 맞는 것에 대한 거부감 자체가 훨씬 낮은 편으로 보인다. 차에서 건물로 이동하는 짧은 순간뿐만 아니라 비가 오더라도 방수 재킷 정도 챙겨 입고 개를 산책시키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우리 첫째 아이가 다니는 운동(축구/농구) 학원에서는 비가 꽤 쏟아지는 날에도 경기나 연습을 취소시키지 않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비 오는 날은 이렇고, 그럼 물놀이는 어떠한가. 현재 내가 사는 아파트의 공용 수영장도 그렇고 이 전에 친구네 오며 가며 만났던 수영장의 바닥들은 대부분 평평하기보다 3피트 정도에서 시작해 7피트(2.13m) 정도로 곡선을 띄는 구조가 많았다. 내가 한국에 사는 동안 (아마도 안전상의 이유이겠지만) 발이 닿지 않는 깊이의 수영장은 쉽게........ 아니 단 한 번도 접하지 못했다. 근데 여기에서 보니 7피트 수영장은 아주 흔하거니와, 발이 닿지 않을지라도 외국, 적어도 여기 미국 아이들은 겁먹지 않고 수영을 곧잘 한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안 쓰면 큰 일나는 줄 알았던 물안경과 수영모도 쓰지 않은 채로 말이다.
물개처럼 용감하게 잠수를 하기도 하고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폭탄 점프를 하기도 하고 팔과 다리를 휘저으며 (깊은 물) 수면 위에서 고개를 올리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수영할 엄두도 못 내는 나에게는 너무 신기한 모습이었다.
이 모습은 비단 인공 수영장에만 해당되지 않고 자연환경에서도 마찬가지다. 여행을 가서 카타마란(Catamaran)이라 불리는 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스노클링을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나는 폼 안 나게 구명조끼를 입고 배에 설치된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어기적 어기적 내려갔다. 외국 사람들은 갑판 위에서 깊은 바다로 풍덩~ 점프를 해서 스노클링을 시작했다. 심지어 나이가 꽤 있는 듯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점프 점프!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오리발을 인어공주의 지느러미처럼 흔들며 유유히 바다의 안과 밖을 오가는 언니들 앞에서 나는 쭈그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 나도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는 물속에서도 잘 지냈다고 ㅋ;
한국에서는 수영 수업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여기 미국에서 본 어린이 수영 수업은 발차기나 영법은 뒷전이고 일단 물과 친해지는 - 달리 말하면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 것부터 천천히 배워나간다. 수영장 안에 서 있는 선생님에게로 점프해서 들어가는 활동이 있는데 처음에는 물에 빠지지 않게 잡아주지만 나중에는 물에 풍덩 빠질 수 있게 유도해 준다 (물론 이 작업만 몇 개월, 1년 가까이 걸리기도 하는데 선생님들이 느긋하게 기다려 준다. 종종 수업료가 아까운 부모 눈에서 눈물 한 방울만 조르르 나올 뿐, 강사님은 절대 급하게 진도를 뽑지 않는다. 하하하!) 물속으로 얼굴이 잠시 들어가더라도 별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듯하다. 그리고 물 안에서 물 주변으로 호흡하는 법을 배워가고, 잠수를 해서 물아래로 내려가 장난감 건져내는 활동도 덧붙인다. 물과 친해진 아이들은 두려움을 다스려서 얕은 물이든 깊은 물이든 물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이 점은 너무나 부럽고 언젠가 나도 꼭 이루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올여름에 성인 수영 개인 레슨이라도 받아야 할까 싶어서 지역에 있는 수영 강사를 알아보는데 어느새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는 겨울이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이다. 지난 4년간은 가뭄이 심하게 들어서 겨울에도 비가 찔끔찔끔 왔는데 올 겨울은 지붕에서 물이 샐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리고 있다. 지금도 비가 내리고 있고. 잠바 하나 대충 걸치고 우산을 찾는 일 없이 차를 타러 주차장으로 내려가려 한다. 문화 충격은 받았지만 넓게 벌어진 문화 차이는 그간 내 안에서 많이 좁혀졌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