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최근에 일어나서 따끈따끈한, 동시에 등골이 너무나 서늘해서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듯한 사건 하나를 기록하려고 한다. 때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평범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려는 어느 날 저녁이었다. 방에서 놀던 첫째와 둘째가 소란스러웠지만 남매끼리 다투는 일이야 워낙 흔하니까 둘째가 낑낑 울어도 무시하고 싱크대 앞에서 계속하던 일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꼼짝 않고 있으니까 마침내 첫째가 내 옆으로 쪼르르 달려와서 심상치 않은 얼굴로 상황 보고를 한다.
"엄마, 코에 비즈 스티커가 들어갔어!"
"누가?!"
역시 범인은 4살 꼬맹이 둘째 아이다. 이 녀석은 이미 전적이 몇 번있었는데, 2년 전에 마스크 목걸이 줄이 끊어졌는데 줄에 걸려있던 조그마한 비즈를 코 안에서 발견해 (그때는 코에 뭐가 들어갔다는 말도 못 함 ㅜㅜ 하아......) 내가 귀이개로 빼낸 적이 있었다. 또 한 번은 코 끝에 살짝 나온 휴지를 잡아당겨 빼줬는데 그게 상당히 길어서 경악했던 일도 있고. 이제는 말도 제법 통하고 사리분별도 적당히 하는 줄 알아서 마음을 놓았는데, 이 같은 사고가 또 벌어지고 말았다.
첫째가 둘째 아이가 가지고 놀던 비즈 스티커를 들고 와 보여주는데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온다. 코딱지를 파려고 해도 시원하게 파내지도 못할 정도로 작디작은 아이의 콧구멍이건만, 내 손바닥에서 직경 약 1cm로 번쩍번쩍 빛을 내뿜는 동그란 비즈는 너무 거대해 보였다. 아니, 무슨 이홍렬 아저씨(우리 세대는 무슨 말인지 아시죠.)도 아니고 이게 저 안으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나?
애들이 종종 의도치 않게 거짓된 상황 보고를 하기도 하니까 일단 코 안에 정말로 비즈가 들어갔는지 확인해야 됐다. 겁을 먹고 훌쩍이는 둘째 아이를 땅에 눕히고 한 손에는 핸드폰 후레시를 켜고 한 손에는 귀이개를 잡고 구멍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근데 양손에 뭔가 쥐어진 채 하려니 너무 불편하다. 시트콤의 여왕인 나는 결국 캠프 갈 때 종종 사용하는 헤드 밴드가 달려있는 후레시, 헤드 라이트를 머리에 쓰고 한 손에는 귀이개를 들고 엉덩이를 치켜세우며 자세를 잡았다. 이야, 이거 이거 콧구멍이 너무 작아서 빛을 비춰보아도 잘 보이지가 않는다. 근데 좁고 깜깜한 동굴 끝자락에 뭔가 보석처럼 살짝! 반짝이는 게 감지되는 것 같았다. 심장이 벌렁대서 터질 것 같고 손이 후달달 떨려왔다. 첫째 아이가 철봉에서 떨어지면서 뼈가 부러졌을 때 지렁이같이 변한 팔을 봤을 때의 느낌이랄까.
그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마음을 다잡고 조심스레 막대기를 넣어본다. 뭔가가 걸리질 않았고, 너무 깊어서 정말로 비즈가 거기 있는 건지 아닌지 확신도 서지 않았다. 다만 귀이개에 닿는 감촉이 코의 말랑말랑한 점막이 아니라 플라스틱처럼 딱딱한 느낌이 들던 찰나가 (한번 정도?) 있었다. 실랑이를 벌이다 이미 밤 9시가 돼버려서 일반 병원들은 문을 닫았고 당장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응급실을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험은 평소에 납부하는 금액은 적은 대신, 병원에 한번 가게 될 경우 지불해야 하는 부담금이 큰 플랜이었기에 응급실을 가는 결정이 주저되기도 했다.
Mother's Kiss Method
최후의 방편 이전에 인터넷에서 콧 속에 이물질 빼내는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Mother's Kiss'라는 민간요법을 알게 되었는데 이물질이 들어간 반대편 콧구멍을 손가락으로 꽉 막아주고, 엄마가 아이의 입으로 공기를 세게 불어넣으면 이물질이 코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되는 방법이었다. 유튜브 영상을 보니 다들 너무 쉽게 아이의 콧 속에 있던 레고나 장난감을 빼내길래, 응급실에 가기 전에 나도 한번 시도해보았다.
훅!!!!!!!!
내 키스 기술이 부족했는지(?) 코 바깥으로 아무것도 나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역효과만 되었던 게 밤이 깊어 졸리기도 하고 엄마가 얼굴을 들이밀고 이것저것 시도하는 게 긴장되기도 한 아이는 참지 못하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래, 병원비가 대수냐. 건강이 최우선이지...라는 마음으로 우는 아이를 데리고 나는 집 근처에 있는 대학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1시간가량 기다려 마침내 의사를 만났다. 하얀 가운을 입은 거구의 백인 의사는 의료 기구를 가지고 오더니 작디작은 아이의 콧구멍을 확인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말을 내뱉는다.
아무것도 없다.
엥?! 벙 찐 얼굴로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콧 속에 아무것도 없냐고 물어보는데 정말로 없단다. 만일의 경우 이물질이 기도로 넘어가면 콜록콜록 기침을 할 텐데 아이는 숨도 잘 쉬고 있으니 기도로 넘어갈 확률도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어느 순간 식도로 넘어갔을 것 같을 테고 당분간 아이의 ㄸ을 지켜보라는 한마디를 하고는 의사는 나의 시야에서 신기루처럼 휘리릭 사라졌다. 막중한 ㄸ미션을 전달받은 나는 졸려하는 아이를 안아 들고 리셉션 데스크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선 예상 청구 비용이 적혀있는 종이를 건네받았고, 이건 더더욱 꿈만 같았다. 길몽이 아니라 믿기 힘든 악몽이라는 게 문제이지만.
You pay (환자부담금) $1798.22 (원으로 환산 시 230만원)
의사를 만나고 30분이 채 되기 전에 모든 것이 끝났다. 한 손에는 종이, 한 손에는 아이를 안고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조명이 가득한 응급실에서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마치 서로 다른 시공간을 통과한 듯이 혼란스러웠다. 병원에 오기 전에 내가 얼핏 본 것 같은 빨간 반짝임, 톡톡 건드린 듯한 플라스틱 촉감은 무턱대고 겁먹은 나의 착각이었나? 아이가 콧 속에 비즈를 넣었다고 한 것부터가 사실이 아닌 걸까? 콧 속에 아무것도 없다고 확인받고 지불하는 값이 지금 230만원인거지?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집으로 돌아와 나도 아이도 이내 밤잠을 청했고, 우리들은 다시 일어났고, 밥을 먹으며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며칠간, 무려 4일간이나 ㄸ 소식이 없었다. 워낙 밥을 잘 안 먹는 편이라 3일 정도 변을 보지 않을 때도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언젠가는 나오겠거니 그냥 넘어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데 뱃속에 있는 것이 한사코 밖으로 나오지를 않으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리하여 변비에 특효약이라는 말린 자두를 아이에게 잔뜩 먹였고 감사하게도 바로 신호가 왔다. ㄸ 소식이 기뻐서 꺅꺅 소리를 질렀다.
며칠간 뱃속에 숨어있던 제법 큰 녀석이 유아용 변기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내가 싼 ㄸ을 잘 쳐다보지를 못하는데 엄마가 되니 별 일을 다하게 된다. 마스크를 쓰고 일회용 젓가락을 들고 분리 작업에 착수했다. 여기에 사진을 올릴 수 없지만, 끝내 진흙 속 진주 마냥, ㄸ에서 반짝이는 비즈를 발견하고야 만다. (엄마는 위대하다.) 아마도 Mother's Kiss를 해줬을 때 비즈가 (다행스럽게)식도로 넘어갔던 것 같다. 정말로 코 안에 넣었던 거구나! 이제 몸 밖으로 나온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니 안도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치과 빼고 병원문을 두드렸던 일이 거의 없었다. 나를 포함하여 가족들 모두 건강한 편이었고, 약사였던 엄마 덕분에 자잘한 병치레는 엄마가 주는 약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가끔 가게 되면 동네 조그만 병원에나 갔고 아주 큰 병원은 장례식 말고는 갈 일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병원에 대해 가지는 인상은 교과서에서 그려주는 그대로,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돕는 선한 이웃 같은 존재로 유지될 수 있었다.
근데 미국에 오면서 이러한 이미지가 깡그리 무너져 내렸다. 국민의료보험 하에 국가 차원에서 관리되는 한국의 의료 시스템과 다르게, 민간으로 운영되는 미국의 병원과 보험 회사들은 철저하게 자본 중심으로 돌아가는 비즈니스다. 또한 미국의 거대한 의료 시스템은 각자의 매뉴얼대로 따라 움직이는 기계와 같다. 부품의 틈새에는 사람다움과 같은 윤활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의사는 우리 아이 콧구멍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 한마디를 던지고 유유히 떠날 수 있고 병원은 이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댓가라며 (보험회사를 거쳐서) 환자에게 230만원 청구서를 날릴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살려야 하는 곳에서 철저하게 인간을 더 소외시키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죽음으로 내몰아가는 기분을 받게 만든다. 왜냐하면 당신이 돈이 없다면 어떤 것이 마땅히 필요한 치료일지라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얼마 전 울며 겨자먹기로 그들에게 응급실 비용을 지불했다. 큰 돈을 허무하게 쓰고나니 이런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사람이 건강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점점 더 늙어가고 병원 신세를 져야할 일이 더 많아질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