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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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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Dec 16. 2022

나는야 인어공주

결혼 생활에서 경제력은 목소리와도 같기에

미국에서 초등학생 키우는 가정은 학사 일정에 따라 하루하루가 굴러가게 된다. 학교가 열리면 아이들은 등교를 하고 부모들은 일을 한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 학교가 문을 닫으면 잠시 쉬어가고 여기에 추수감사절과 같은 긴 연휴가 추가된다. 여기까지는 미국과 한국과 별다른 점이 없지만, 두 나라의 사이에 큰 문화적 차이가 하나 존재하는데 그건 바로 미국의 학사 일정에는 개학과 방학 사이에 (금)-토-일-월로 이루어진 3-4일짜리 짧은 연휴들이 잔~뜩!! 끼어있다는 점이다. 한 학기에 많게는 4-5번 있으니 한 달에 한번 꼴로 돌아오는 셈이다. 


왜 그런고 하니, 미국에서의 공휴일은 한국의 5월 5일 어린이날처럼 날짜로 뚝 떨어지는 게 아니. 예를 들자면 미국의 공휴일 중 하나인 대통령의 날(President Day)은 매해 2월의 세 번째 <월요일>에 지정되어서 매년 날짜가 조금씩 다르게 나오고,  방법으로 날짜가 유동적으로 움직이게 되면 '롱위캔드'라는 주말이 만들어지게 된다. 말 그대로 '긴 주말'. 이 황금 시간을 잘 활용하면 다소 거리가 먼 곳으로도 가족들과 학기 중에 여행을 갈 수 있게 된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아이와 움직이는 수많은 가족들이 한 시기에 쏠리는 바람에 비교적 짧은 연휴라 할지라도 롱위캔드가 들어있는 시기는 성수기로 취급된다. 서비스가 좋은 숙박시설이나 유명 관광지의 입장권 등 불꽃 튀는 경쟁(시간 맞춰 땡 하면 광클릭!!)을 치러야 하기도 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여행을 하려면 6개월이나 1년 전에 과감하게 예약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다가 아이 키우는 집이랑 동반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미리미리 스케줄을 조율하는 과정까지 필요하다.   


3개월짜리 여름방학, 연말연시를 위한 3주짜리 겨울방학, 그리고 수많은 롱위캔드들이 줄줄, 아니 콸콸콸 쏟아진다. 빠릿빠릿보다는 느릿느릿에 가까운 나는 이렇게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연휴가 부담스럽다. 여행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목멜 정도로 일탈에 대한 욕구가 강하지도 않다. 여행을 가면 가는 대로 좋고, 못 가면 못 가는 대로 좋다고 여기는 맹물 같은 성격 탓이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있는데, 위에서도 말했지만 여행을 위해서는 준비를 해야 한다. 마음 가는 대로 즉흥적인 여행의 낭만은 나 혼자일 때나 가능하지 어른 2명에 꼬맹이 2명까지 줄줄 달고 다니려면 시간을 들여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근데 나는 손이 느린 편이라 먹이고 치우고 재우고 이리저리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일상의 육아( + 브런치에 글을 쓰는 오롯한 개인 시간)만으로 이미 내 코가 석자다. 어떻게든 시간과 에너지를 쥐어짜 내 해내야만 하는 여행 계획이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즐겁다던데) 나에겐 가족들을 위해서는 해내야만 하는 과업처럼 느껴진다. 애들 키우는 집이라면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거긴 한데.......삶의 빡빡함에 워낙 내성이 낮은 내 자신이 나도 원망스럽다. 흐엉 ㅠㅠ 


그러다 보니 나는 여행 계획을 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보다는 얼른 마무리짓고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나의 사수라고 해야 하나, 여행 계획의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우리 신랑은 나의 완전 반대편ㅋ에 우뚝 서 있다. 평소 우리들의 성격도 정반대인데, 나는 덜렁이를 맡고 신랑은 꼼꼼이를 맡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둘의 의견이 종종 부딪히게 된다. 나는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든 여행이라는 일탈 자체가 주는 기쁨이 있으니까 어느 정도 조사가 되면 결정을 내리고 후딱 끝내버리자는 주의고, 신랑은 우리가 할 수만 있다면 필요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여 그것을 비교 분석하고 최고의 선택을 도출하자는 주의다. 게다가 믿음이 아주 확고하신 분이다. 신중한 기다림에 진이 빠질 때도 있지만, 신랑이 밤을 새어가며 비교하고 조사하여 찾아낸 맛집이라던지 저렴한 가격으로 머물게 된 고급 호텔 등 우리 가족에게 멋진 추억을 선사해줬음에 이견이 없다. 무척 감사하게 여기고 정말 대단하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의견을 조율하다가 벽에 쾅! 부딪히는 기분이 들 때면 나는 그냥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고 싶은 마음도 든다. (매번 그런 건 아니고 PMS 때문에 감정이 널뛰기를 할 때 특히 그러는데 아무래도 이번 주가 그 시기인 듯 하다.) 액수 차이나는 거는 내 돈으로 메꿀 수 있으니까 이거 저거 비교하는 데 너무 머리 싸매지 말고 그냥 끝내버리자! 라며 나름대로 호탕한 제안을 던져주고 싶지만 내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처럼 경제력이 없는 나는 신랑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것의 아웃풋이 나쁘거나 해로운 것도 아니니까. 다만 내가 조금(....때로는 많이) 피곤함을 느낄 뿐. 신랑이 나에게 밖에서 돈 벌어오라고 대놓고 바가지 긁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 나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내 알량한 자존심에는 쩌저적 금이 나가버린다. (여행에서 옵션 A와 옵션 B의 금액 차이는 그리 크지도 않는데 나는 그 마저도 못한다는 기분이 드니까 더 씨게씨게 현타가 오는 것 같다.) 




우리 시대 디즈니의 전성기를 열어주었던 인어공주

한없이 우울해지려다가 목소리를 잃은 이야기 속 주인공이 머리에 떠오른다. 인어공주. 다행히도 내 가슴에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캐릭터는 안데르센의 동화책 속 비운의 인어공주가 아니다. 커다란 영화 스크린에서 생글거리며 바다와 육지를 누비는 빨간 머리 막내 인어 공주,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의 에리얼이다.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인생 애니에서 그녀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끝내 만들고야 마는 해피엔딩의 주인공이다. 


플라운더와 세바스찬 등 에리얼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들이 많았는데 나는 특히 갈매기 스커틀이 생각났다. 조금 엉뚱하긴 하지만 스커틀은 바네사가 마녀 우루슬라라는 걸 제일 먼저 알아채서 동물 친구들의 도움을 불러와 바네사(마녀 우루슬라)와 왕자의 결혼식을 지연시키는 맹활약을 펼친다. 게다가 마녀의 목에 걸린 마법의 조개 목걸이를 잡아당겨 바닥으로 깨뜨리면서 에리얼이 다시금 목소리를 되찾게 하는 아주 결정적인 역할도 하였다. 


(좌)바네사가 마녀 우르술라라는 것을 발견한 스커틀 (가운데) 에리얼의 목소리를 되찾아주려는 스커틀 (우) 마녀를 방해하는 스커틀의 동물 친구들


나에게 있어 브런치의 존재는 스커틀이 아닐까? 


스커틀이 워낙 개그 캐릭터라서 웃음이 조금 터질 수 있지만 이건 진짜다. 스커틀이 불러 모은 동물 친구들이 에리얼을 돕듯이 브런치를 통해 독자님들이 부족한 나의 글을 읽어주고 하트와 댓글로 힘을 실어주신다. 그리고 스커틀의 활약으로 마법의 조개 목걸이가 깨지고 어느 순간 목소리를 찾게 된 에리얼처럼 나도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나가면 언젠가는 내게도 출판 제의가 들어오고 그게 조그마한 소득의 기회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도 글쓰기를 통해서 개미같이 작은 목소리래도(경제력) 찾아갈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했더니 내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바네사랑 결혼할 때 눈이 풀린 에릭 왕자님은 생계 부양의 부담에 찌든 우리 신랑인가 싶다. 흐끅! 너무 슬프도다!) 

와!!! 목소리를 되찾은 에리얼!!!

결혼식에서 에리얼이 잠시간 목소리를 되찾았어도 우루슬라와 맺은 계약대로 다시금 인어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여기서부터 에리얼이 다시 인간으로 변하여 왕자와 결혼하는 해피엔딩까지 닿기 위해서는 2가지 과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첫 번째, 몸과 마음을 억누르는 마녀에게 제대로 한방 먹여야 한다. 여기서 나는 시중에 유통될 진짜 책이 만들어지기를 감히 꿈꿔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돈을 주고서라도 읽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야겠지. 그리고 두 번째 해피엔딩으로 가기 위해서는 마법의 삼지창으로 다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삼지창은 글쎄......3쇄를 찍는다는 건지(?!!) 아니면 그 뒤에 3번의 책을 더 낸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2023년에는 줄기차게 써 내려가야 하겠다.  나에게 힘을 보태주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해피엔딩에 가닿을 수 있음을 확신한다.   

스커틀, 아니 브런치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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