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를 나무라려다 말이 쏙 들어갔던,
나도 못 하는데 누구한테 뭐랴 하랴
아이가 무엇을 배울 때 처음에는 재미 위주 Recreational로 시작을 하다가 조금 더 제대로 맛을 보려면 본격적인 트랙으로 노선 변경을 해야 한다. 우리 첫째 아이가 배우는 축구에서는 후자를 Competitive라고 표현을 한다. 축구 클럽에 들어가서 일주일에 2번씩 훈련을 받고 한 달에 2번, 많게는 매주말, 하루에 2-3경기까지 다른 팀들과 경기를 펼치게 된다. 지난 주말에는 본격적인 시즌을 시작하기 전 친선 경기 Scrimmage를 치르게 되었다.
우리 아이는 운동 신경이 꽝은 아니지만 축구 클럽에서 맹렬하게 활약하는 아이들과 비교해 보면 Competitive 축구를 계속해야 하는지는 의문이 든다. 운동 삼아할 거라면 트레이닝도 덜 빡쎄고 돈도 더 저렴한 취미반으로 옮겨도 되니까. (현재 나는 아이의 축구팀 매니저로 자원봉사까지 하는 중) 만으로 9세, 내가 했던 발레에서도 그렇고 첫째 아이가 하는 축구에서도 그렇고, 나중에 이 분야에서 한 자리 차지할 아이들은 이미 나 같은 일반인의 눈에도 떡잎이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인데, 우리 아이의 씨앗은 아직 싹을 틔우지 않은 것 같다. 일단은 어떨지 몰라서 물은 계속 주는 중이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조금 늦게 발레를 시작하였지만 예중 입학을 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4부류의 아이들이 있는데, 입학시험을 통해 재능도 없고 노력도 못하는 아이들은 떨궈지게 된다. 나는 재능은 없지만 노력은 하는 타입으로 중학교에 간신히 입학했지만 노력은 안 하지만 재능 있는 아이들이 금새 빛을 받는 모습에 질투하고 노력도 하고 재능도 있는 아이들은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는 아득한 좌절감을 느끼고는 중학교를 마치던 즈음에는 전공을 그만두게 되었다. 나는 내가 서 있는 분야에서 낙오자가 되는 첫 경험을 했다.
그 후, 인문계로 고등학교를 진학했고 좋은 대학에 운 좋게 입학을 했다. 하지만 전공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여 멀리 미국으로 유학을 왔으면서도 그것을 취업으로 연결시키지 못하였다. 짧은 2-3 문장으로 써놨지만 20년에 가까운 지지부진한 시간을 압축해 놓은 것이다. 인생의 굵직굵직한 선택에서마다 실패를 했던 걸 보면 나는 천성이 어떤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루어내기에는 힘든 사람인가, 그저 하찮은 사람이 되기에 딱 좋은 인간인가 싶기도 하다. 이분법적 사고가 바람직하진 않다면 간단하게 세상을 이해하기엔 좋지 않은가. 성공과 실패라는 세상의 스펙트럼에서 보면 나는 실패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나는 나의 아이들이 나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의 재능과 노력이 시너지를 만들고 이를 통해 아이들이 서 있는 분야에서 달콤한 성공까지 맛보기를 원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할 테고 그 노력이 힘들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거라면 어떻게든 버텨낼 테지. 부모로서 내가 도와줄 첫 단추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잘 찾아주어야 할 테다.
지난 주말에 아이의 축구 경기를 보는데 맹렬하게 공으로 달려들지 못하는 아이를 보았다. 경기에 온전하게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았다. 내가 기대한 만큼 움직이지 못하고 서투른 아이를 보았다. 그런 우리 아이의 사방으로 축구와 사랑에 빠져 온몸을 던져내는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즐거운 마음으로 응원하며 경기를 지켜보고 싶은데 이렇게 하라고 저렇게 하라고 다그치고 싶은 마음, 달리 말하면 불처럼 뜨거운 화가 점점 차올랐다.
그러다 문뜩 잘해보려고 노력해도 끝내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던 과거의 나, 현재의 내가 (차마 미래는 아니겠지....) 떠올라서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들이 뱃속으로 쑥 내려가버리고 말았다. 나도 못 하는데 누구를, 그것도 이제 9년밖에 살지 못한 아이한테 뭐라 하랴. 쟤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잘 안 되는 거겠지. (경기장에서 뒷짐 지고 있던 거 보면 최선 아닌가 싶기도 하고ㅋ......아..... 혼란스러워 ㅋ) 일단은 돈을 이미 지불한 이번 봄학기 까지는 아이가 거짓 없이 최선을 다해 노력은 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야지 시즌이 끝났을 때 축구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후회 없는 판단을 내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엄마인 내가 본보기를 잘 보여줘야 할 테다. 이를 위해서 개인적으로 수험생 모드로 지내고 싶은데 아내이자 엄마로 살면서 내 앞가림까지 하기에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런 나에게 신랑이 또 일침을 가한다. 막내로 자라온 나는 어리광이 심하다며. 다른 사람들은 이런저런 변명 늘어놓지 않고 나랑 똑같은 와중에 다 해내고 있지 않은가. 다들 어떻게들 그렇게 사는지. 나도 힘을 쥐어짜 내 어떻게든 일어서야겠다. 미래의 나까지 낙오자가 예정되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