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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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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Feb 23. 2023

'나이'의 지각 변동

청춘의 거리 대학가를 거닐다가

지난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미국에 있는 한 대학가에 들려 그 지역 캠퍼스를 둘러보았다. 우리 집 코 앞에도 큰 대학교가 하나 있는데 거긴 너무 고풍스러워서 나 같은 범인은 입학은 꿈도 꾸지 못할, 거대한 벽이 세워진 분위기인데 이번에 다녀온 곳은 그와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였다. 주립 대학교라서 인지, 혹은 역사적으로 샌프란시스코의 반전 운동의 중심에 있어서인지 캠퍼스에 들어서자마자 자유로운 분위기에 숨통이 탁 틔여왔다. 마음통까지 틔이는 바람에 '혹시 우리 아이가 몇 년 뒤에 이곳 캠퍼스를 거닐게 되려나?' '저기 지나가는 캠퍼스 커플이 우리 아이의 미래 모습이 되려나?' 주책맞은 아줌마가 되어 이제 겨우 9살, 4살이 된 꼬맹이들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가슴이 설레었던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학교를 방문했던 날은 취업 설명회가 있었는지 사회 초년생이 되기 위해, 어색하게 정장을 갖춰 입은 20대 청춘들로 정말 바글바글했다. 그들 중에는 얼굴과 몸매가 인형처럼 예쁜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더 많았다. 통통한 아이, 빼빼 마른 아이, 키가 아담한 아이, 멀쑥하게 커다란 아이, 얼굴에 여드름이 난 아이,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아이, 아프로 헤어가 빵빵한 아이 등등 참 다양했다. 그치만 빼어난 외모가 아니더라도 그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청년들에게서 싱그러운 빛이 터져 나왔다. 참으로 감탄이 나올만한 아름다움이었다.   


나도 그 시기를 지나왔고, 그게 불과 몇 년 전 같은데 손을 꼽아 세어보니 그로부터 무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20년의 시간을 떠나보냈다. 몸과 마음의 변화 속도에 부조화가 생긴다. 내 마음은 여전히 청춘인 거 같은데 얼마 전에는 아이들과 셀카를 찍다가 주름이 자글자글한 나 자신을 보고 내가 깜짝!! 놀래버렸다.


20대까지만 해도 중년의 세계가 저 멀리 어딘가처럼 느껴졌다. 결국 내가 가게 될 곳이지만 가파른 경사를 넘어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계단식 지형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내 주변을 거닐고 있는 청춘들, 그리고 이제는 내 몸을 떠나버린 나의 20대를 뒤돌아보니 나이의 비탈길이 와르르 쏟아져내리며 평지가 되어버린다. 동시에 저 멀리 있던 노년의 세계 내 앞으로 불쑥 튀어나온다.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종종 있던 일이라 낯설지가 않았는데 이 부분은 참 묘한 느낌을 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이들이 사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20살 청년들을 바라보면서 나의 20대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지듯이, 60살, 70살인 누군가가 40살인 나를 보았을 때 나보다 조금 더 나이 많은 언니 정도로 느끼려나 싶다. 가깝게는 나보다 연상인 신랑이 요즘에 그렇게 눈이 침침하다고 툴툴대고 있다. 말 그대로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데 누구라도 나이 들어가는 게 서글프지 않도록 내 주변으로 벽을 둘러 세우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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