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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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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Oct 22. 2023

매일 아침 기적의 등굣길을 간다

나의 두 아이들은 미국의 초등학생들이다. 이번 가을 학기부터 큰 애는 4학년, 작은 애는 2년짜리 킨더 프로그램의 첫해인 TK(Transitional Kindergarten)를 다니는 중이다. 지금은 별문제 없이, 아니 너무나 평안하게 통학하고 있지만 작년 이맘때만 해도 나는 두 아이들을 어떻게 등교시켜야 하는지를 두고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첫째가 다니는 학교에 TK 프로그램이 없다. 그 말은 즉슨, 2023년 가을 학기부터는 첫째와 둘째를 떨궈줘야 하는 도착지가 서로 다른 것이다. 음.......간식 싸고, 아침을 먹이고 다그치 듯 뛰쳐나가 하나의 학교로 레이싱 경기를 하는 것만으로 이미 정신이 안드로메다인데 여기에 서로 다른 두 학교로? 이거 가능한가?


게다가 우리 집은 미국 외곽지역답지 않게 신랑의 출퇴근이 대중교통(대학교에서 운영하는 버스노선이 지나 ㅋ)으로 가능하다. 그마저도 팬데믹을 지나면서 재택근무가 일상화되어 승용차 1대로 미국 생활을 버텨오고 있었다. 아이가 TK로 배정받을지 모를 예상 학교가 2군데인데 둘 다 우리 집에서 거리가 상당하다. 각 학교로부터 첫째가 다니는 학교랑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어찌어찌 우리 집에서 (내가 마라토너처럼 달려서 ㅋㅋㅋㅋㅋ) 유모차를 끌고 통학할 만한 거리인지, 아니면 자전거를 타야 하는지, 자전거를 사야 한다면 2인용을 사야 할지, 앞에 어린이가 탈 수 있는 초대형 바구니가 달린 걸 사야할지 뒤에 어린이 좌석이 붙어있는 걸로 살지 등등 여러 가지 나만의 시나리오 머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3월 둘째의 학교가 배정되었다. 정말 너어어어어어무 감사하게도, 둘째 학교가 배정된 학교는 첫째 학교보다 Bell Schedule이 늦게 시작한다. 지역구에 위치한 12개의 학교 중 10군데가 8시 5분-15분에 시작인데 그중 2군데만 8시 25분 시작이고, TK가 운영되는 곳은 둘째의 학교뿐이다. 하하하, 할렐루야! 첫째네 학교는 8시 15분, 둘째의 학교는 8시 25분 시작. 이제 첫째는 고학년이 되었으니 조금 일찍 8시 10분에 Drive Through로 내려주고 자동차로 7분 거리에 위치한 둘째의 학교로 곧바로 출발하면 8시 25분까지 교실에 안전하게 도착 가능한 그림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렇게 지난 2개월간 두 아이의 통학을 전담마크하며 무사히 지나왔다.


결정적으로 이 글을 써서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은 지난 금요일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서로 다른 벨 스케줄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첫째를 학교에 내려주고 둘째의 학교로 가는 길목에는 실리콘 밸리의 굵직굵직한 회사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와 대학교 및 대학병원으로 통학하려는 차량으로 꽉~~~~ 막혀있을 때가 많다. 근데 교통체증이 시작되는 바로 일보 직전에 아트센터와 도서관의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샛길(?)이 있다. 여기로 지나가게 되면 정말 자동차로 꽉 막혀있는 병목 구간 - 이 길이가 상당히 길다 ㅋ - 만 쏙!! 피해 갈 수 있는 동선이 만들어진다. 위에 대문 사진을 보시라, 이 시간의 아트센터와 도서관 주차장은 텅 비어있다. 아무도 없어서 잠시 차를 멈춰두고 사진 찍어도 될만큼 (운전하면서 사진 찍은 거 아닙니다~) 뻥 뚫려있는 길을 지나갈 때 고개를 살짝 돌리면 나무 너머로 대로변에 줄지어 서있는 자동차들이 보인다. 정말 너무 신기하다 ㅋㅋㅋ 


비단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것, 문둥병자가 벌떡 일어나고 바닷물이 갈라지는 것만 기적이랴. 소소한 일상이긴 하지만 지난 이맘 때를 돌이켜보면 내 머리로는 생각할 수 없었던, 기적에 가까운 등굣길이라는 고백이 나온다.


일이 잘 풀릴 때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일이 안 풀리면 하나님이 은혜를 허락하지 않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서는 안 되지만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풀릴 때는 기분이 좋긴 하다. 맨날 일이 잘 풀렸으면 하는 욕심이 들 기도 하지만........이 마음은 구석에 밀어넣고 이 은혜를 꽉!! 붙잡아서 다른 곳에서도 그분을 항상 믿고 의지해야겠다 마음을 다잡는다. 내가 은혜를 까먹고 자주 불평불만을 터뜨려서인지 일주일에 5번, 하루가 시작되는 매일 아침 은혜 리마인더를 보내주셨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맞춤형 서비스를 참 잘해주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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