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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Nov 15. 2023

완전히 끊어진 줄 알았는데......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었지 뭐야

30년 전 나는 참 열심히도 발레를 했다. 조명 아래 발 끝으로 춤추는 무대만이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길이라고 믿으면서. 운 좋게 예술학교에 (굴러?) 들어왔건만 이곳에서 나의 설렘은 와장창 깨지게 된다. 학교는 예술의 낭만보다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는 곳이었다. 매 학기 실기 시험을 치르고 줄 세움에 따라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게다가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전문 무용수 -  프리마돈나도 아니고 그냥 발레단에 들어가는 것만 - 을 하기 위해서는 20명의 동급생뿐만이 아니라, 바글바글 모여있는 선배, 후배 사이에서 아찔하도록 작은 바늘구멍을 통과해야만 했다. 패배감에 버무려진 3년의 중학교가 끝나갈 무렵 나는 발레와는 인연을 퐉!!!! 끊었, 아니 끊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 후 여고와 여대를 지나 어쩌다 미국까지 와서 사회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배우자를 만나 아이를 낳았고, 여전히 만화책을 좋아하는 두 아이 엄마가 되다. 멀리서 보면 햇살이 넘치는 여유로운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희극을 찍는 듯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미치광이 레이싱카 선수처럼 픽업/드롭을 하루에 4번 많게는 8번씩 해가면서 평균 여성들보다 3배 정도 느린 손으로 개판 5분 전 위태위태한 살림살이를 유지하며 비극..... 까지는 아니고 셀프 블랙 코미디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래도 손이 느리지만 운전은 느리지 않아서 월매나 다행인지!)


그렇게 일상을 살아내는 중 우리 집에서 5분 정도 걸어 나가는 거리에 발레/미술학원이 하나 생겼다. 그곳 미술 학원 원장님이 나와 알고 있는 지인이라서 이번 여름부터 학원의 매니저 업무를 도와드리게 있었다. 일을 하다 한 달이 지났을 즈음인가, 내가 예중에서 발레 전공을 하는 걸 알고 계셨던 대표님께서 이런 제안을 주셨다.


"이제 곧 개강하는데, 가을 학기부터 유아 발레 한번 맡아보실래요?"


30년 전에 헤어졌던 애증의 발레..... 한국도 아니고, 미국에서 아줌마가 되어서 다시 만나다니! 우리네 인생 참 새옹지마다. 예고 진학을 못 했지만 그래도 예술학교에서 전공하며 발레를 잘 배울 수 있었던 것, 대학원 공부 후 취업에 연결시키진 못했지만 영어 공부는 혹독하게 했던 것, 아이들을 키우느라 만성 피로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부모들의 필요를 잘 파악할 수 있었던 것 모두 오늘을 위함 밑거름이었구나.


하늘을 나는 듯한 거미

얼마 전, 둘째 아이를 학교에서 픽업하는데 아이가 공중에 손가락을 가리키며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간다고 했다. 노래를 부르는 건가 했는데, 하늘을 올려다보니 정말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도록 얇은 거미줄 덕분에 거미는 마치 하늘을 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을 따라서 거미는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더니 저 멀리 나뭇가지 위에 무사히 도달했다. 나에게 발레도 그러했다. 완전히 끊어진 줄 알았건만 얇은 인연이 이어져있었다. 이제 열심히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되려나? 내가 닿을 나뭇가지는 어디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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