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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Sep 15. 2024

19 어떻게 우연한 기회들을 많이 "만들어" 나갈까?

테이크루트 서정은님 <해외 이주 여성을 위한 계획된 우연 이론> 워크숍

2024년 9월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갔다. 꿈만 같던 한국을 다녀오고, 나의 두 아이들은 새 학기를 맞이하였다. 운전자 엄마, 요리사 아내로서 일상에 서서히 내 몸과 정신을 맞춰 나갈 즈음, 테이크루트 인스타그램에서 아주 흥미로운 제목의 워크숍을 발견했다. 해외 이주 여성을 '계획된 우연 이론 (Planned Happenstance Theory)' 우연은 어느 날 선물처럼 불쑥 찾아오는 운 Luck 아닌가? 근데 그걸 계획한다니, 그게  말이야?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 채 나는 신청 링크를 눌렀다.


강의는 베이 지역에서 대형 병원 체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카이저 퍼머넌트 (Kaiser Permanente)의 성인 정신과에서 근무하시는 서정은님께서 해주셨다. 정은님은 현재 임상/치료 쪽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계시지만 학교에서 전공했던 분야는 Loyola university Chica의 상담심리학, 스탠퍼드 대학교 CAPS에서 심리학자 수련과정(Doctoral Internship in Health Psychology)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행복에 대하여 고민하는 심리학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나눠주셨다.  그리고 정은님의 첫 번째 워크숍에서는 바로 그 행복을 이루는 중요한 축의 하나인 '진로'에  대해 살펴보며 시작하였다.


'진로발달'의 고정관념

'진로발달'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곧바로 떠오르는 고정관념들이 있다. 돈을 버는 커리어와 동일한 의미로 여겨진다던지, 흥미와 적성에 맞춰 계획을 미리미리(유치원 때부터 계단을 착착착!!) 세우고 한 분야의 정상에 올라서기 위해 한 우물을 풀타임으로 파야한다는 것 등등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혀오는, 하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경험들이 있다. 내가 특히 공감했던 부분은 대학입학 - 취직 - 결혼 - 출산육아- 자가 마련 - 정년퇴직과 노후처럼 나이에 따라 정해진 통과의례처럼 순서를 거쳐나가야 하고 여기를 지나갈 때 결정을 미루는 상태는 안 좋은 것이라는 고정관념이다. 나는 이 고정관념에 끌려가다가  - 즉, 주변의 속도에 제대로 준비가 안된 나를 맞추려다가 -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들을 섣부르게 한 경험이 꽤 있었다.


인생은 롤러코스터라고 하지 않던가?!

알다시피 우리의 현실은 이상적인 기대와 다르다. 우리들의 커리어는 비단 경제적 보상을 받는 경제 활동에만 국한되지 않고 돌봄과 감정 노동으로 확장되기도 하고, 공동체 안에 아이, 혹은 파트너와 부대끼며 살다 나만의 시간으로 풀타임 올인이 불가능할 때도 많다. 출산하거나, 혹은 못할 수도 있고, 결혼을 아주 이르거나 늦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한국에 많은 것을 남겨두고 갑자기 이민 생활을 맞닥뜨려야 할지도 모른다.


장난스러운 미소가 일품이십니다 ㅎ

이와 같은 관찰을 바탕으로 심리학자이자 스탠퍼드대학 교수였던 존 크럼볼츠는 <계획된 PLANNED 우연 Happenstance 이론 Theory>을 통해 진로 발달로 대표되는 삶과 인생에서 우연이 끼치는 영향력을 중요하게 보았다. 삶은 일련의 사건들이 예측 가능한 일직선, 하나의 방향으로 배열된 계단이 아니라 우연한 기회들을 통해 때로는 직선으로, 때로는 구불구불 이어지는 것임을 보았다. 아이오와의 작은 대학에서 테니스를 치다 보니 마침 그때 친했던 테니스 코치가 심리학 교수님이어서 자신의 전공도 심리학으로 선택한 크럼볼츠 본인의 경험을 포함하여 진로 발달은 예상치 못한 기회들로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나에게 만족스럽고 균형 잡힌 방향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물론 아무 데나 중구난방 흩어지는 것에서 만족과 균형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은님이 강조하신 것처럼 우연의 사건들이 진로 발달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이 기회들을 많이 그리고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탐색 행동과 학습 (Planning)이 필요하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해외에서 뜻하지 않게 이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이것을 내 경력을 단절시키고 나를 편안한 고향과 가족으로부터 고립시키는 부정적인 시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존의 틀 Comfort Zone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새로운 문화를 직접 보고 듣고 배우는 경험이 축적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연한 기회를 부르기 위해 어떻게 하느냐? 워크숍에서 제시한 5가지 마음가짐은 다음과 같다:


1) 호기심: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는 것
2) 끈기: 잘 안되더라도, 장벽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것
3) 융통성: 상황에 따라 태도와 환경을 바꾸는 것
4) 낙관성: (이래서 안돼) vs (어떻게 하면?)
5) 위험감수: 불확실해도 한 번 해보는 것


정은님께서는 위와 같은 마음을 준비한 뒤 실천해 볼 2가지 할 일을 제안하셨다.

이 부분이 나에게는 이번 워크숍의 핵심으로 다가왔다.


이론에 의하면 우리들의 현 상황은 상당히 낙관적이다. 수많은 기회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모르면 모든 기회를 다 잡으려다가 에너지와 시간을 소진하게 될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알아야 선택적으로 흘려보낼 수 있고 그것이 균형(방향) 잡힌 인생을 살 수 있는 열쇠가 되어줄 것이다.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보니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정은님은 당장 잘 모르겠으면 어렸을 때를 떠올려도 좋다고 했다. 그리고 매일 (혹은 48시간 이내) 새로운 것을 하나씩 해보고 그것이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평소에도 각각의 행동 후 내 기분이 어떻게 바뀌는지 세심하게 살펴보고 기록해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고유한 힌트가 될 것이라고....... 앞으로 이러한 힌트들을 소소하게 모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브런치 연재 고고! 이론에서도 문 밖의 선물을 보기 위해서는 일단 엉덩이를 떼서 일어나 문을 여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마침 연재물로 쓸 좋은 주제도 찾고 있었는데 잘 됐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고유한 행복 힌트 수집!

그리고 우리들을 우연한 기회들로 이끌어 줄 귀인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다소 대면대면한 사람들도 만나 그들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두면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튕겨나갈지 모를 우연한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한다. 이 부분 또한 공감되었다. 어디 한 군데 가려고 해도 자동차로 씽씽 달려 나가야 하는 미국에 살고, 결혼을 하면서 나 개인이 아니라 부부/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대표하여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지난 10년간 나의 인간관계는 많이 협소해졌다. 비좁지만 안락해진 인간관계를 정당화하기 위해 '에이~ 나이 들어서 사람 만나는 거 이제 귀찮아~ 영어로 말 섞는 거 너무 피곤해~' 이런 말도 너무 쉽게 내뱉었던 거 같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었으니 찌뿌둥하겠지만 고개를 들고 손을 내밀고 발을 한걸음 떼야하는 시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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