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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Sep 29. 2024

춤추는 할머니가 될까나

2024년 9월 - 탭댄스

<단서련은 단서 수집 중> 브런치 북의 목적은 바로 나를 알아가는 것! 구석구석 파헤치지 않아도 내 인생 전반에 걸쳐 눈에 띄이는 단서가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춤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띄엄띄엄이지만 계속 손(....아니 발)이 가는 걸 보면 아마도 늙어서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지는 그 날까지 가늘고 길게 춤을 추며 살지 않을까 싶다.


체력이 좋진 않은데 흥이 많다. 중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하다가 예고 진학은 포기하고 잠잠하게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뒤에 춤바람이 다시 불어 닥쳐서 20대에는 힙합에 빠져 살았다. 클래식 발레는 무용 중에서도 형식을 철저히 중요시하는 반면, 힙합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정반대의 춤이다. 하지만 발레 했던 나는 힙합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재미에 자석처럼 끌려 버렸다. 앞서 말했듯이 체력이 좋지 않아 춤을 선택하고 성적을 포기하며 지냈다. 같은 댄스팀을 했던 언니들이랑 클럽에도 자주 놀러갔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춤의 무아지경에 빠져 매우 건전한 밤을 보더라지. (참고로 얼굴이 벌게지는 타입이라 술을 싫어해서 맨정신으로 밤새 춤추는 타입ㅋㅋㅋ)

둘째는 옆에서 책 보고 나는 온라인 수업듣는 모습 ㅋ

미국 깡시골로 건너오면서 다시금 춤의 정체기를 맞이하나 싶더니 결혼을 해서 인구 밀도가 제법 높은 샌프란 근교로 이사오고 첫째가 서너살 즈음 되었을 때 댄스 스튜디오 문을 두드렸다. 예전에 추면서 기웃거렸던 스트릿 댄스의 다른 장르들 - 하우스와 락킹 - 을 배울 수 있었고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은 꽤나 실력이 좋은 분들이었다. 하지만, 한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우리네 인생, 전세계에 불어닥친 전염병 때문에 모든 수업들은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안타깝게도 내가 배우던 수업들은 몇 개월 후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다 작년 여름부터는 집 앞에 생긴 댄스 스튜디오에서 파트타임 매니저 겸, 아이들 발레를 일주일에 2번씩 가르치게 되었다. 30년 전에 배운 발레를 이렇게 써먹게 되었다 ㅋ 말이 발레지 아이들 수업이라 일종의 체육 수업비슷했는데 나에게 제법 운동이 되었다. 1년 정도 일을 했는데 학령기 아이들 2명을 키우면서 매니저까지 병행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판단하여 스튜디오를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몸을 웅크린 여름을 보내다가 연어의 회귀본능 마냥, 펄떡펄떡, 댄스 스튜디오 스케줄들을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스트릿 댄스를 계속 하고 싶지만 이건 스튜디오가 너무 멀어서 아웃 ㅜㅠ (예전에는 일주일에 한번이긴 하지만 왕복 1시간 반을 고속도로 질주해서 다녔는데 진짜 어떻게 했나 모르겠다;;) 집 앞 스튜디오에서 발레 수업이 가능하긴 하지만 일을 그만뒀던 곳이니 여기 발레도 아웃!!폴댄싱은 팔힘이 너무 없고 뭔가......민망해서 아웃!!! 


좋아하는 춤 장르로 뽑아내고 싶었는데 일단 엄마의 여건 장소와 스케줄이 잘 맞는 - 아이들 학교에 드랍해주고 집에 들려서 집안일 조금 하다가 면 딱 맞는 - 재즈 수업을 하나 수강하게 되었다. 나쁜 건 아니지만 너무 무난해서 맘에 쏙 들지는 않았다. 재즈 수업 바로 뒤에는 탭댄스(Level 2)가 있는데, 스튜디오 나온 김에 이거까지 도전하기로 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둘째 임신했을 때 한국에 있는 아는 동생의 스튜디오에서 서너번 수강했던 적이 있으니 심각한 문제는 없겠지.


어리버리한 초보 아줌마 옆으로 최소 3년-10년 이상 수강 포스를 내뿜는 할머니 학생들이 자리를 잡다. 그녀들은 노련하게 고무 소재의 말리 플로어 위로 탭댄스 전용 나무판을 펼쳐놓는다. 수업이 시작면서 멋진 재즈 음악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알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재즈 음악에는 마음을 살살 간질이면서 동시에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영국 신사가 내미는 손과 같은 그 리듬을 따라 흥이 돋기 시작하는데 이런 이런,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선생님의 발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본 들 ㅋㅋㅋㅋㅋ신발이 앞 뒤로 움직이는 건 똑같건만 어느 때는 구두에서 따닥 소리가 나고 어느 때는 다다다닥 소리가 난다. 그 와중에 학생들은 어찌나 야무지게 따라하던지......레벨 2 수업을 전혀 따라가지 못해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중간에 나오게 되었다. 다음주에 있을 레벨 1 수업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계획된 우연 이론을 알게 된지 10여일이 지난 9월 16일, 열린 마음을 장착하고 탭댄스 레벨 1을 들으러 갔다. 케이팝 수업을 들었다면 내가 최연장자였을텐데 탭댄스 수업에서는 마흔살인 내가 꼬꼬마 막내가 되었다. 60대이신 선생님을 포함하여 모든 수강생들이 최소 10-20살 연상인 언니들이다. 얼굴과 피부에 새겨진 주름은 어찌할 수 없지만, 등이 구부정하지 않고 몸을 직접 움직여 비트를 만들어 내는 모습에 반해버렸다. 애니메이션 Sing을 보면 흥부자 돼지 건터가 로지타에게 Let the music take control of your body parts 음악이  너의 몸을 춤추게/움직이게 하라는 조언을 하는데 탭댄스는 움직임 자체가 음악이 되어버리는 춤이었다.


하지만, 내가 배웠던 춤들에 비해 배우는 것이 직관적이지 않아서 수업내내 힘들었다. 조금만 한눈 팔아도 순서 까먹고 동작 까먹고 실수 연발.  이러다 도망칠지 모르니까 11월에 있을 발표회까지 참여하겠다고 말뚝을 박으며 스튜디오를 나왔다. 당분간 얼빠진 바보가 된들, 그만큼 춤이 나에게 불어넣는 에너지가 좋았다.


탭댄스라면 춤추는 할머니가 가능할 거 같은데, 이거 꽤나 근사하지 않은가? 11월 발표회를 마치고, 올해 12월 내 생일에는 예쁜 탭슈즈를 장만할까보다.

Miller & Ben 탭슈즈, 너무 이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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