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마지막으로 춤을 춘 게 언제인가요? 두 아이의 엄마인 저는 오.늘.도. 팔을 휘두르고 다리로 점프하면서 집안 곳곳으로 움직입니다. 1970년대 레전드 그룹 The Lockers처럼 마루에서 부엌으로, 화장실로, 방으로 신나게 춤을 추면서 말이죠. 춤 없이 살아도 되는 줄 알았는데 계속 춤으로 돌아오게 된, 세번씩이나 (춤)바람난 여자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첫사랑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서 가볍게 배우기 시작한 발레 Ballet 였는데, 이 춤의 매력에 흠뻑 빠져 주객전도가 되어버렸어요. 연극을 그만두고 발레에 온 에너지를 쏟아붓기 시작한거죠. 예술학교에 덜컥 합격하면서 첫 단추를 잘 꿰었다는 자신감과 함께 열정이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하지만, 나의 첫사랑은 그다지 보답받지 못한 슬픈 사랑으로 끝나버렸어요. 그 어떤 예술보다 미의 기준이 절대적인 발레는 손에 꼽는 소수의 무용수들만 주목하는 잔인한 녀석이었거든요. 짝사랑에 지쳐 결국 예고 진학은 포기하고 말았죠.
인문계 고등학교를 간 뒤 친구들의 성향이 많이 달라져서 적응하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무용과 친구들은 대부분 외향적이고 감정 표현이 솔직했는데 고등학교에 와서 하던대로 그대로 행동하니까 주변 친구들이 황당해하며 저를 쳐다보더라고요. 제 웃음 소리가 너무 크고 팔 다리를 휘적거렸던 걸까요?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탱탱볼처럼 튕겨다니고 싶은 감정은 조용히 상자 안에 감추고 여고 시절을 흘려보냈어요. 그리고 10대의 끝자락에서 두번째 춤바람이 버스를 타고 실려왔지요.
다시 만난 춤
고3 겨울, 버스에서 우연히 학원 광고를 보았는데 왜인지 모르게 발걸음을 그곳으로 옮겨갔어요. 평범한 건물이었는데 계단을 내려가니 한쪽 벽이 그래피티로 가득 메꿔진 연습실이 뙇! 나타났지요. 언더그라운드로 내려가 굉장한 일탈이라도 한 것마냥 심장이 쿵쾅거렸던 첫날. 어쩌면 일탈이라서가 아니라 다시 그리운 일상으로 돌아와서 심장이 뛰었던 거일지도 모르겠어요. 음악, 사람, 땀과 호흡, 다시 만난 춤은 내가 살아 숨쉬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지요. 게다가 배운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기만 했던 발레에서 자기가 느끼는대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프리스타일은 그 전율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냈어요.
그 전율에 중독된 것인지 힙합 Hip-Hop이란 춤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대학시절. 스승이라 여기는 멘토를 만났고 풋풋한 첫사랑도 만나게 되었어요. 크루 멤버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어 안무를 짜보기도 하고 밤새도록 클럽에서 댄서들의 춤을 구경하기도 했었죠. Japan Dance Delight이라는 스트릿댄스 대회를 구경하기 위해 오사카까지 날아갔었으니 첫번째 못지않은 태풍같은 춤바람이었지요.
그러나 한번 발레에 배신당한 저는 제 인생 모든 것을 춤에 걸 정도로 뜨겁게 사랑하진 못했어요. 대학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며 마음이 먼저 춤에서 멀어졌고 유학을 떠나면서 몸도 멀어져 버렸네요. 처음 자취하는 것도 큰 일인데 미국 깡시골에서 대학원을 병행하며 버티려니 하루하루가 참 처절했죠. 이렇게 20대 후반이 칙칙하게 삶에 치여 지나가고 저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었습니다.
산들바람처럼
결혼 후에는 깡시골에서 좀 벗어난 곳으로 이사를 왔어요. 물리적으로 춤을 출 수 있는 환경이 애초에 주어졌지만, '시간이 없다, 피곤하다......' 이것저것 변명거리들로 벽을 쌓아놓고 고약한 틀 안에 나를 가두어버렸죠.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건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로부터 짧지 않은 시간이 한번 더 흐른 후에야,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길 시작했네요. 10년이 넘는 단단한 공백을 깨고 나온 답은 지금 내 삶에 결여된 것,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들어 줄 열쇠는 바로 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한 남자의 아내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 살아가는 가운데 춤을 춰야 했기에 산들바람 같이 주어진 환경에 어우러지는 바람을 타야할 때였어요.
그제야 비로소 제 인생 세번째 춤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연습에 죽자살자 매달려야 직성이 풀렸던 10대, 20대에 비해, 춤을 바라보는 마음에 힘을 많이 빼려고 했어요. 그만큼 춤을 추고 싶은 바람, 다시 말하면 나를 찾고자 하는 바람이 아주 간절했거든요. 애엄마가 되어 다시 추는 춤은 감히 "도전"이라고 할만한 경험이었지요. 일주일에 단 하루이지만, 아이를 재우고 집을 나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깜깜한 고속도로를 총알택시처럼 달려야만 수업시간에 딱! 맞춰 도착할 수 있어요. 수업에서 돌아와 몸을 씻고 침대에 누우면 밤11시, 새벽에 2-3번 깨는 아기와 함께 쪽잠을 자고난 뒤, 남편의 출근과 첫째 아이 등교 준비를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상을 감내해야하는 엄~청~ 피곤한 취미이지요.
하지만 춤을 추는 순간에는 일상의 피곤함도, 애엄마의 서러움도 마법처럼 사라져버립니다. 지금 배우는 춤은 스트릿 댄스의 올드스쿨 장르 중 하나인 락킹 Locking 인데요. 이 춤에서 쓰는 음악인 Funk 음악(클릭!)을 들어보신다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조금 이해가 가실 꺼예요. 그루브가 터질듯한 음악, 거기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면 (몸과 얼굴은 누가봐도 30대이지만) 시간을 거슬러 다시 젊은 청춘으로 돌아갑니다. 물론 연습이 부족하여 멋지게 추지도 못하고, 나이가 들어서 영 주책맞아 보일지 모르지만, 나를 나답게 - 그래서 나를 특별하게 - 만들어주는 시간이니 남들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으렵니다.
나에게 있어서 취미 이상의 그 무엇이 되어버린 춤. 이 안에는 제 인생의 희로애락 -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이 모두 담겨있어요. 감사하게도, 즐거움은 락킹과 함께 현재 진행형(樂ing)입니다! 이제는 중년을 지나 노인이 될 때까지 산들 바람을 잃지 않은 들판처럼 춤을 추며 살고파요. 새로우면서도 새롭지 않은 시작. 10대, 20대, 30대 세번째로 춤으로 회귀하며 맞이하는 나의 시작을 이렇게 축복하고 싶네요.
춤바람아~ 불어라~ 쉬지 않고 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