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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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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Mar 26. 2020

세상에서 가장 (**)한 대회

이 글에 대한 생각을 하면 빵!터지게 웃기면서도 남들은 알지 못하는 내 삶의 치부와 맞닿아 있어서 남몰래 내 맘이 뜨끔해지는 시트콤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곤한다. 어떤 형용사로 수식해야할지 잘 생각나지 않아, 제목에 “세상에서 가장 (**)한 대회”로 일단은 비워두었다. 


이 글을 쓰기 얼마 전 신랑과 나는 동시에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지난 몇년 나의 마음은 강처럼 바다처럼 더 넓어지기 보다 계곡처럼 좁아지고 가파르고 옹졸해진 것 같다. 집에 있을 때 신랑이 아파서 침대에 잠시 누워있으려고 하면,  ‘저 이가 왜 아플까나?  몸보신 좀 시켜주게 뭐라도 만들어줘야겠다.’ 이런 내조의 여왕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한 대회에 시작하기 위해 몸과 마음이 엉뚱한 방향으로 점점 분주해졌다. 


이름하야 그 대회는 “누가 더 피곤하고 아픈가?” 대회의 승자는 육아의 책임으로부터 일정 시간 벗어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그 혜택을 누리고 싶어서 나는 나 자신을 상대방보다 더 추잡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이 아프다고 하소연 하면 들어주는 눈과 귀를 열어두기 보다, 나도 어디가 아픈데...나도 뭐가 안 좋은데...나도 지금 피곤한데... 그닥 해당된다 한들 좋지도 않은 “나도” 따발총 연발. 두다다다. 


누가 더 멋있게 춤을 추는지,  누가 더 아름다운지, 누가 더 힘이 쎈지, 누가 더 빠른지...이 세상에 참으로 많은 생산적인 경쟁이 있는데 30년을 넘게 인생을 살아온 나는 관중도 하나 없는 집 구석에서 비생산의 끝으로 내달리는 대회를 열심히 준비한다. 지난주는 결승전 급 규모로 독감으로 앓아누은 신랑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뒤돌아보건데 나는 이 의미없는 대회에 너무나 많이 참여한다. 신랑이 쉬려고 하면 나도 쉬고 싶은 마음이 들끓는다. 가족들 도움 없이 타지에 살아가면서 쉴새없이 육아와 살림을 마주해야하는 우리 사정에 쉬어야하는 상황을 정당화할 수 있는 건 진짜로 피곤해야만 한다. 몸이 피곤하지도 않은데 쉬려고 하는 건 사치스러운 거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나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한 사람이 누리는 휴식이라는 건 상대방의 섬김, 좀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희생 위에 올려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실상은 신랑과 나 사이의 관계가 아니면 더욱 극명하게 보인다. 아이없이 단 몇시간이라도 어른들끼리 어딘가 나가야 한다면, 다른 집 가정에 아이를 부탁하며 움직일 수 밖에 없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신랑이 나를 못 쉬게 해서 이러는 것도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민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정신 붙잡고 온전히 생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서로 도우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아마도 한국에 있는 남편들보다는 10배, 100배로 더 많이 도와줄 것이다. 한국을 다녀온지 2년 반이 넘어서고 있는 지금, 재충전이 필요한 시간이라 나의 목마름이 더욱 갈급해진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의 궁극적인 돌파구가 몇가지 있는데, 하나는 육아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육아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 혜택이 아니라 사춘기가 되기 전에 부모를 온전히 의지하며 건강하고 밝은 아이로 자라나는 이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긍정적인 혜택이 되면 좋을텐데...ㅋㅋㅋ솔직히 고지식의 끝판왕이자 부실한 체력의 소유자인 나는 장시간 아이를 지켜보고 있으면 피곤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ㅋㅋㅋ 모든 것은 역시 체력 싸움으로 종결되는건가...ㅋㅋㅋ체력 키우려고 운동하려면 그것도 휴식 못지 않게 나름 상대방의 희생과 배려가 필요하다. 그렇게 좋아하는 춤 수업도 신랑한테 아이 맡기고 일주일에 1번 겨우 갈까말까인데...여튼,  아이를 돌볼 때 피곤을 최대한 줄이는 노하우가 있다면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 


또 다른 지향점은 신랑이 피곤해한들, 혹은 몸이 아파한다 한들, 그것에 내가 무덤덤해져야 하는 것. 너만 아프니? 나도 아프다! 이런 식의 생각 고리를 끊어내야만 한다.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과거에 있었던 경험이 생각났다. 나는 평소에 밥 먹는 속도가 상당히 느린 편인데, 여자 친구들 서너명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때 경험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것이, 나 빼고 나머지 친구들이 엄청난 속도로 음식을 비워내다보니까 내 입으로 들어오는 양이 얼마 없었고 식사를 마치고 (친구들은 배부르고 맛있었다고 웃고 있는데 ㅋㅋㅋ) 나는 여전히 배고픈 와중에 더치페이해야하는 게 마음 속으로 괜히 억울했다. 그 순간 방어기제처럼 두 가지 생각이 들었었다. 다음에는 나도 최대한 빨리 먹어야지...아니면 다음에는 각자 따로 음식 시켜먹자고 해야지...이런 것은 나의 인격을 아름답게 성장시켜주는 모습은 결코 아니리라. 욕심이라던지, 억울함이라던지...인간의 근원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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