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의 노화는 20대부터 진행되었지만 가속이 붙기 시작하는 30대야말로 내리막길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느낌이 온 몸에서 전해진다. 아직은 길이 가파르지 않아서인지 내리막을 걸어간다고 해서 딱히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 건 아니다. 게다가 몸이 내리막길에 들어섰다고 정신까지 내리막으로 가는 건 아니지 않는가?!(.....라고 쓰지만 요새 덜렁대는 수준을 보면 실처럼 가느다란 정신줄을 붙잡은 채 내리막길을 뛰어 내려가는 것 같기도 -,.-;;)
삶을 마감하는 결승점을 향해 걸어가는 것은 나의 의지에 상관없이 언제나 진행되어왔고, 오랫동안 사용한 겉모습이 조금 낡아지거나 종종 고장나는 건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냥 그러려니...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싶다. 그렇다고 종종 거울 속에 비치는, 나 자신도 흠칫 놀랄 정도로 피곤에 쩔어 한껏 늙어버린 모냥새의 구석구석을 즐거워하는 것도 아니다.
신체 나이 30대 중반, 내리막길의 초입에 멈춰서서 생각하니 저 멀리 내가 걸어갈 길의 끝과 그곳에 닿기까지의 여정이 어떨지 궁금하다. 앞으로 가야할 내리막길은 얼마나 길까? 끝이 보이지 않을만큼 아득할까? 아니면 손가락에 꼽을만큼 짧을까? 구불구불할까? 야트막할까? 많은 이들이 걸어간 평범한 길일까? 아니면 발길이 닫지 않은 길일까? 저 앞에 먼저 내리막을 걸어간 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들의 길은 어떠할까? 사랑하는 이의 걸음이 사라질 때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의 내리막을 걸어가며 그런 이별을 얼마나 마주하게 될까?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서 시작된 내리막 생각에 작년말부터 올해 초까지 들려오는 여러 유명인들의 안타까운 소식들까지 더해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머리 속을 온갖 잡념으로 가득 채웠다. 그러던 와중, 첫째아이 반에 한국친구의 엄마랑 한국어 책을 서로 교환해 읽자고 부탁하고 오늘 책을 받아왔다. 에밀 아자르라는 처음 보는 작가의 작품인데 제목이 마침 “La Vie Devant Soi (자기 앞의 생)”이다. 사무엘 선지자의 어린시절처럼 하련아~하련아~ 목소리로 나를 부르시는 건 아니었지만 때마침 센스 넘치는 주님의 개입에 감사가 나온다.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애들 재웠으니 얼른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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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하밀 할아버지가 주인공 모모에게 해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