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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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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Jun 23. 2020

슬기로운 가족생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키우다보면 인간의 특성을 적나라하게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만 20개월을 채워가는 둘째는 평소에는 온순한 성격이지만 종종 자기가 원하는대로 안될 때마다 감정을 강하게 표출한다. 물을 컵에 따라서 마시고 싶은데 물이 쏟아질까봐 걱정된 엄마가 빨대컵에 물을 준 경우, 울음이 빵! 터뜨리며 엄마를 혼내듯이 서러움을 쏟아붓는다. 자기가 싫어하는 음식을 고개를 돌리며 완강히 거부하기도 하고, 엄마의 상황이 여의치 않은데 찌찌를 물고 싶어해서 나와 기싸움을 할 때도 있다. 이 녀석의 겉모습은 완전 아빠 빼박인데 소프트웨어는 나를 닮아 보통 고집이 아니다. 본인이 "이건 아니올시다"라고 마음을 먹으면 자기 의지를 굳건하게 지키는 철의 여인이다. 


언어 능력이 발달한 만 6세의 첫째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꽤 세부적으로 요구하곤 한다. 예를 들면 지금 당장! 시원하게 얼린! 요거트를 먹고싶어한다. 냉동실에 미리 넣어둔 요거트가 없다거나 식사할 시간이 다가오니까 요거트를 먹지말라고 했을 때 요 녀석은 울음을 빵! 터뜨리며 떼를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이도, 그리고 어떨 때는 엄마인 나조차도 상관관계를 까먹을만한 엉뚱한 곳에서 녀석의 삐죽삐죽한 마음이 튀어나와 애를 먹곤 한다. 원하는 욕구가 강하고 많기도 한 녀석이라 언제나 원하대로 해주는 건 불가능하다. 매번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면야 좋겠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할 때가 종종....아니 아주 많다. 나한테 감히 심통을 부린 꼬맹이 녀석을 혼쭐을 내줘야 후련하겠다는 듯, 아이에게 필요 이상의 화를 낸 시간들을 생각하면 언제나 얼굴이 화끈거린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좌절되었을 때 반응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신혼 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30년 넘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남녀가 한 공간에 살게 될 때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많은 조율이 필요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을 때, 내가 30여년간 살아온 삶의 방식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우리는....아니 나는 맹렬하게 부부싸움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가 맞는 이야기를 하면서 끝이 없는 평행선을 그려나갔다. 


결혼 전까지 내가 '좋은 게 좋은거다'라고 대충 맞추며 사는 편이라 착각하고 살아왔다. 그건 일정 거리가 유지되는 가족 외 사람들에 해당되는 것이었고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가족들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평생을 막내로 살아온데다 가방끈이 길어서 회사에서 사수들 비위 맞춘 경험도 없는, 그야말로 융통성을 1도 찾아볼 수 없는 30대 여자가 바로 나였다. 몇몇 부분에서는 통제받는 듯한 느낌을 극도로 싫어하면서 변화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것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었을 것을 생각하면 참 미안하다.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가면서 상대방을 맞춰가는 것, 사회를 위해서 그와 충돌하는 개인의 일부를 조금 도려내거나 모양새를 바꾸어가는 것은 목적이나 의도가 아무리 선한 것이라 할지라도 어른이 된 나에게도 굉장히 힘겨운 작업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내 고집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서 죽어버릴 듯한 답답함. 그런 시한폭탄을 꿀꺽꿀꺽 삼켜서 이제는 결혼 8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날의 부부싸움을 기억하면서 오늘은 투정부리는 아이들을 좀 더 이해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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