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환상의 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서련 Jul 22. 2020

2. 아저씨와 푸다닥 새

이것은 우리 가족의 공동작업물이예요. 잠들기 전, 아빠가 아들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줘요. 엄마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리해서 이곳에 기록을 하고, 아이는 이야기에 어울리는 멋진 커버를 그려서 매거진을 완성합니다.

온 가족이 만드는 "우당탕탕 경찰서" 그곳에서 오늘은 어떤 일이 펼쳐지는지 들어보세요-    


오늘도 모든 주민들이 착한 마음을 가진 마을은 평화롭게 하루가 지나가요. 아무런 사건이 없어 조용한 경찰서. 그 곳에는 심심함과 씨름하는 세 사람이 있어요. 바로 경찰 서장님과 폴, 제임스예요. 세 사람은 책상에 턱을 줄줄이 기대고 앉아 경찰서 유리문을 TV 보듯 쳐다보고 있었어요.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서 무지개 찾기를 하고 있네요.


빨간색 티셔츠! 저 남자 키가 참 크다. 그나저나 최근에 저 사람보다 키가 훨~~씬 큰 사람이 이사왔다던데.....

주황색 머리핀! 나도 들었어! 덩치도 우락부락해서 유치원 꼬맹이들이 보고 무서워서 엉엉 울었다던데?!  

노랑색 신발! 발도 거인만큼 커다랗고 엄청 쿵쾅쿵쾅 거리면서 걸어다닌다더군.

초록색 스카프! 목소리도 어찌나 큰지 옆에 있던 나무가 휘청휘청 흔들거릴 정도라던데......

파랑색 청바지! 남색 책가방까지! 그 정도면 사람들이 다들 파랗게 겁에 질려 도망다닐만 하네.

할머니의 꽃무늬 몸빼바지에서 마지막 보라색을 찾으려는 순간!


경찰서 유리문을 양 옆으로 활짝 제끼면서 한 아저씨가 달려나왔어요. 우락부락한 덩치가 갑자기 코 앞으로 들이닥치니 세 사람은 깜짝 놀라 뒤로 우당탕탕! 넘어갔어요. 천정에 닿을만큼 우뚝 솟은 큰 키를 가진 아저씨는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씩씩거리며 경찰관들을 찾았어요. 커다란 발을 쿵쿵 구르며 커다란 두 주먹은 불끈 쥐고 위아래로 흔들어서 더 다급해보였어요. 서장님, 폴, 제임스가 우왕좌왕하며 책상 위로 몸을 일으켰어요. 두리번거리던 아저씨는 그제서야 세 사람을 발견하고는 경찰서가 울릴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어요.


"당장 동작 그만!!우리집으로 출동!!"


세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일단 아저씨 뒤를 쫒아 우당탕탕! 달려나갔어요. 언제나처럼 팔을 바람개비처럼 휘두르는 제임스가 1등, 그 뒤로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지그재그로 달리는 폴이 2등이예요. 만능가방을 메고 땀을 뻘뻘 흘리는 서장님은 꽁무니로 따라갔어요. 횡단보도를 건너고  약국, 문방구, 미용실, 식당, 우체국, 병원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간 뒤 오르막길을 다다다다 올라가서 오른편 3번째에 있는 아저씨네 집에 마침내 도착했어요.


경찰관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려고 아저씨가 입을 열었어요. 아저씨 얼굴은 세 사람보다 워낙 높이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화난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하게도 겁 먹은 것 같기도 했어요. 저렇게 덩치도, 키도 큰 어른에게도 겁을 먹을만한 무서운 일이 있을까요?  

"반지를 여기 책상 위에 놓았는데......."

아저씨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장님이 말을 끼어들었어요.

"그렇다면 저희 세사람이 책임지고 반지를 훔쳐간 도둑을 반드시 잡아드리겠습니다!"

간만에 찾아온 사건에 신이 난 폴과 제임스는 서장님 옆에서 춤을 추려다가 스텝이 꼬여서 우당탕탕! 

"거, 그럴 필요는 없소! 반지는 바로 저 녀석이 꿀꺽하고 삼키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 

아저씨는 두툼한 손가락으로 방구석을 가리켰어요. 거기엔 책상이 하나 있었을 뿐, 아무도 보이지 않았어요. 세사람이 의아해서 아저씨를 쳐다보니, 아저씨가 쿵쾅쿵쾅 걸어가 오른쪽 책상다리 쪽에 웅크리고 앉았어요. 자세히 살펴보니 책상과 벽 사이에 끼인 먼지처럼 보이는 작은 새가 한마리 있었어요.

"그럼, 반지가 바로 이 녀석의 뱃 속에 있다는건가요?"

아저씨는 대답 대신 커다란 머리를 끄덕끄덕 움직였어요. 새는 반지를 먹고 배가 무거워져서인지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도 가만히 있었어요. 거인처럼 커다란 아저씨는 먼지처럼 작은 새 옆에서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얼굴로 서 있었어요.






"반지를 몸 밖으로 밀어내려면, 일단 이 녀석에게 뭐라도 먹여야겠어. 폴, 제임스! 가서 먹을 것 좀 구해오게!"

한 시간 뒤, 폴과 제임스가 돌아왔어요. 새들이 좋아한다는 곡물을 잘 섞어서 모이를 만들고 작은 새 앞에 놓아두었어요. 하지만 새는 고개를 휙 돌리더니 그릇을 쳐다보지도 않네요.

"이런,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는데요. 우리도 버텨야하니까, 뭐 좀 먹으면서 기다릴까요? 시장에서 부침개도 사왔거든요."

폴이 비닐봉지를 열자 고소한 기름 냄새가 방 안에 순식간에 퍼졌어요. 그러자 고개를 돌렸던 새의 시선이 어느새 사람들 쪽을 향하고 있었어요.

"엥? 너도 이게 더 맛있을 거 같냐? 그럼 이거라도 먹어볼래?"

서장님은 부침개 한 조각을 책상 쪽으로 던져주었어요. 새는 한두입 찔끔찔끔 쪼아먹다가 너무 맛있는지 우적우적 먹기 시작했어요. 한조각 한조각 먹다가, 작은 새는 끝내 자기 몸보다 더 큰 부침개 1판을 몽땅 먹어치웠어요. 기운이 샘솟는지 날개를 푸다닥 움직이며 날기 시작했지요.

"어어어, 새가 도망가 버리면 안돼!"

서장님이 만물가방에서 잠자리채를 잽싸게 꺼내왔어요. 기운이 좋은 새는 무거운 배를 이끌고 요리조리 날아다니며 잠자리채를 잘도 빠져나갔습니다. 우당탕탕! 우당탕탕! 우당탕탕! 잠자리채를 폴과 제임스의 머리에 씌우기를 27번즈음 했을 때, 마침내 새를 다시 잡을 수 있었어요.

"여전히 똥을 싸지 않는구만. 흠, 이거 어쩌면 좋지?"

"흠흠, 거 그러면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면서 느긋하게 기다리면 되지 않겠소."

"와- 그럴까요?"

아저씨가 부엌 쪽으로 쿵쾅쿵쾅 걸어가고 세 사람도 우루루 아저씨를 따라갔어요. 아저씨의 냉동실은 마치 슈퍼마켓 같아요. 맛있는 아이스크림들이 종류별로 잔뜩 있었거든요. 모두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골라서 먹기 시작했지요. 여전히 배가 고팠던건지, 아니면 달콤한 걸 좋아하는건지 새는 아이스크림을 보고서 침을 뚝뚝 흘렸어요. 보다못한 경찰관들과 아저씨는 자기들의 몫을 나누어 주었고 새는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쪼아 먹었어요. 밥에다 후식까지 든든히 챙겨먹으니 다시 푸다닥거리는 새. 차가운 아이스크림 때문에 뱃 속에서 점점 신호도 오나봐요. 새가 방정맞게 푸다닥 날개짓을 하더니 방귀까지 뀌기 시작했어요.


푸다닥!


"으앗! 이 녀석이 내 팔에다가!"

제임스의 팔에다가 똥을 휘갈귀는 바람에 새를 놓쳐버렸어요. 그때부터 새는 시동이 걸린듯이 집안을 날아다니며 똥을 싸기 시작했어요.

"사방이 똥 천지가 되기 전에 폴과 제임스는 얼른 새를 잡아! 그동안 선생님과 저는 혹시라도 반지가 나왔는지 확인해보지요!"

푸다닥! 새똥을 밟고 미끄러져 우당탕탕!

푸다닥! 새만 보고 쫓아다니다가 서로 쾅 박치기하며 우당탕탕!

푸다닥! 떨어지는 새똥을 피하려다가 책상 다리에 발가락을 찧여서 우당탕탕!

푸다닥! 새똥이 안경에 떨어지는 바람에 눈앞이 캄캄해져 데구르르 구르면서 우당탕탕!

아직 반지가 나오지 않은 것을 확인한 서장님이 다시 잠자리채를 들고 나섰어요. 새는 서장님의 잠자리채를 피해다니다가 아저씨 쪽으로 날아가게 되었어요. 그 때 믿기 힘들겠지만, 커다란 아저씨는 새를 손으로 도저히 못 만지겠다며 울먹거리는 중이었어요.

"선생님! 새가 그 쪽으로 가고 있어요! 꼭 잡으셔야해요!"

서장님의 말을 듣고 아저씨는 용기를 내서 쌀보리 게임을 하듯이 커다란 손을 동그랗게 말고 새가 날아오기를 기다렸어요. 긴장이 되서 눈은 질끈 감았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어요. 바로 그때, 새가 푸다닥 날아서 아저씨의 커다란 손에 쏙! 들어갔습니다. 동시에 새의 엉덩이에서 동그란 반지도 쏙! 나오면서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와!!!!!!!!!찾았다!!!!!!!"


폴은 기뻐서 펄쩍펄쩍 뛰고 제임스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어요. 서장님도 신이 나서 들고 있던 잠자리채를 깃발삼아 펄럭펄럭 흔들었답니다. 세 사람은 마치 굉장한 범죄사건을 해결한 듯이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어요. 근데, 아저씨의 외침이 들리지 않아요. 기뻐서 뛰지도 않고, 춤을 추지도 않아요. 세 사람은 기뻐하는 걸 잠시 멈추고 조심스레 아저씨의 눈치를 보았어요. 정작, 반지 주인인 아저씨는 전혀 신나보이지 않았어요. 폴이 지저분해진 반지를 슬며시 들어올려 아저씨 쪽으로 건네며 말을 했어요.

"깨.......깨끗하게 닦으시면.......괜찮을 꺼예요."

"............"

"그럼, 제가 대신 닦아드릴까요?"

제임스가 폴의 손에서 반지를 낚아채서 옷깃으로 슥슥슥 닦으려는데 아저씨가 풀썩 주저앉더니 눈에서 갑자기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흘렸어요.

"어?어?어? 반지를 찾아서 기쁘지 않으세요?" 폴이 당황하며 말했어요.

아저씨는 말이 없었어요.

"이거 깨끗하게 잘 닦여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괜찮아요. 괜찮아." 제임스가 아저씨를 위로하려는 듯, 깨끗하게 닦은 반지를 눈 앞에서 이리저리 돌려보며 말했어요.

아저씨는 여전히 아무말이 없었어요.


무슨 말을 해도 아저씨의 반응이 없자 폴은 '대체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지?'라는 표정을 지었고 제임스는 '나도 모르지.'라며 어깨를 으쓱했어요. 그 때, 서장님이 눈물을 흘리는 아저씨의 옆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그리고 어깨를 다독이면서 위로해주었어요. 서장님은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기다려주었어요. 침묵이 길어져서 폴과 제임스의 몸이 오징어처럼 베베 꼬이다가, '이제는 정말 못 참겠다'며 서로에게 장난을 치려던 순간, 아저씨가 입을 열였어요.

"이건 이 마을에 오기 전 엄마가 돌아시면서 준 반지였어요. 흑......엄마 살아계실 때 말을 엄청 안 들었는데, 이것마저 잃어버리면.......어쩌나했어요. 흑.......엄마가 너무 보고싶어요."

꽁꽁 감춰둔 긴장이 풀렸는지 아저씨는 세 사람 앞에서 어린 아이처럼 어깨를 들썩거리며 펑펑 울었어요. 폴과 제임스는 저렇게 어떤 경찰보다 힘이 세고 이 세상에 무서울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남자가 엄마가 보고싶다며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이 신기해서 동그란 토끼눈을 뜨고 바라보았어요. 서장님은 여전히 아저씨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고요. 아저씨의 울음이 조금 수그러들자 서장님이 말을 했어요.

"그런 소중한 반지였다니......어머니의 반지를 다시 찾으셔서 참 다행입니다. 그리고 선생님, 우리 동네에 최근에 이사오셨죠? 저는 이 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인데요. 이 곳에는 마음이 착하고 따뜻한 이웃들이 많이 살고 있어요. 앞으로 여기에 살면서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꺼예요. 그러면 선생님의 마음에 있는 그리움과 슬픔도 좀 더 가벼워질꺼예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엄마의 반지를 만지작거렸어요.






세 사람이 아저씨의 집을 나와 경찰서로 돌아가고 있어요. 폴과 제임스는 엄청난 모험담을 자랑하듯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쉴새없이 떠들었어요. 서장님은 아저씨의, 그리고 엄마의 반지를 생각하면서 일이 잘 마무리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웃으며 말했어요.

"나도 엄마가 보고싶네. "    




 


매거진의 이전글 1. 할머니와 거순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