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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Jul 30. 2020

10년만에 그를 만났다.

2019년 2월 꿈

10년만에 그를 만났다. 꽤 오랜만에 얼굴을 보았는데 놀이터에서 늘상 보는 이들에게 하듯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주고 받았다. 꿈 속의 나를 드라마처럼 바라보는 나는 우리가 헤어질 때, 정확히 말하면 내가 차였을 때 아수라장같던 내 마음을 배려한다면 그의 인사를 이렇게 넙죽 받아줘선 안되는데......라고 잠시 안타까워했다. 과거의 일부를 잊어버린 기억상실증이라고 표현하자니 스스로를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로맨틱하게 포장하는 것 같아 민망하다. 그래, 꿈 속에 있는 나는 젊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치매에 걸린게다. 치매라는 표현은 딱 맞다못해 어울리기까지 한다. 내 마음에 생채기 낸 그를 깡그리 잊어버렸다. 우적우적 씹어 먹어버렸다. 나를 보호하려는 방어 기제라고 생각하면 무의식이 지배하는 꿈 속에서 내가 치매에 걸리는 건 아마도 당연한 듯 싶다.  


치매에 걸린 나와 오래 전 인연의 고리가 끊겨버린 그는 서로 마주보며 잠시 서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아이도 눈에 띄었는데 그는 아이를 조심스레 두 손으로 안고 있지 않고 마치 가벼운 핸드백이라도 되는 냥 옆구리에 끼워 한 손에 들고 있었다. 꿈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내가 기억하는 그 이가 원래 희안한 놈이라 그런건지 그 모습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주 어린 아기가 아닌데도 눈으로 보았을 때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가는 중성적인 그의 아이. 나의 둘째만큼 갓 태어난 어린 아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의 첫째만큼 큰 아이도 아닌, 어중간한 1살배기 정도로 보였다.


인사를 나누고 나와 그는 어느새 푹신한 소파같은 곳에 별 거부감없이 나란히 앉았다. 대화를 나눌 정도로 가깝게, 하지만 헤어진 연인답게 서로의 경계는 풀지 않을만큼 거리를 두고 앉았다. 얼굴은 마주보지 않고 앞에 보이는 아이만 응시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는 그와 수평으로 나누고 있는데 서로의 시선은 수직으로 곧게 뻗어있었다. 부자연스러운 그림이지만, 공기 중에 어색함이 흐르지는 않았다. 그는 더 이상 마음을 설레게 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이성이 아니었고 제3의 성, 그냥 한 아이의 아빠로 존재했고 나도 두 아이의 엄마였다. 그의 아이는  파우치로 된 무언가를 쪽쪽 빨아 먹고 있었다. 꿀꺽꿀꺽 잘 마시길래, 다른 아기 엄마들한테 물어보듯 아이가 먹고있는게 무엇이냐고 그에게 물어봤다. 그는 “꿀우유”라고 했고 아이가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파우치를 자세히 보는데 “오징어”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꿀이랑 오징어의 조합은 그닥 어울리지 않는데도 새로 나온 어린이 제품이면 내가 모를 수 있지......라고 수긍하며 고개를 다시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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