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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Dec 18. 2020

낭만의 상대성

2019년 3월 7일 일기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 만난 친구에게 오랜만에 카톡이 왔다. 그 이가 내 생각이 나서 카톡을 둘러 봤더니 (많은 엄마들처럼 정작 본인은 없고 ㅎ) 두 아이가 함께 있는 내 프로필 사진을 보고는 언제 둘째를 낳았냐며, 나를 축하해주는 문자였다. 태평양을 건너서 그리고 시간을 뛰어넘어 - 한국은 낮, 미국은 밤 - 들려온 안부는 참으로 반가웠고, 각자 바쁜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나를 한번 생각해 준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나는 남녀 공학인 예술 중학교를 다녔지만 그냥 여중이라고 봐도 무방한 무용과 출신이다. 남녀공학 갈 확률이 높았던 동네에서 고등학교 배정 로터리를 한두달 즈음 앞두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버리는 바람에 여자들만 바글바글한 여고로 입학했고, 예고진학을 포기하고 인문계로 와서 마구잡이로 밀린 공부를 따라잡으며 시간에 쫓겨 입시를 지나고 보니 내게 남은 옵션은 여자대학 달랑 하나 밖에 없었다. 머피의 법칙처럼 죄다 빗겨나간 그 놈의 “남녀 공학”에 목마른 학창시절을 보내서인지, 의도적이진 않았지만 아마도 본능적으로 대학시절에는 여대 캠퍼스 밖의 사람들이랑 어울렸던 것 같다. 춤추고 연애하고 공부(?)하며 만난 사람들이 주로 대학교 울타리 밖에 있으니 캠퍼스에서의 추억이 그닥 많지 않다.


나에게 안부를 물어온 대학교 동창은 지금 아들 하나를 둔 워킹맘이 되어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고 나는 바다 건너 미국땅에서 아이 둘을 키우는 전업주부가 되었다. 서로 얼굴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이제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워졌는데 애틋한 마음도 몰라주고 시간은 쉬지않고 흘러가버린다. 이렇게라도 연락하고 있을 수 있는게 감사하다는 친구는 15여년전 나와의 추억을 짧은 몇 문장으로 소환했다. “우리 남산타워 보면서.........이제는 둘다 애엄마네.” 그 순간은 나도 기억하고 있다. 밤이었던 걸 보면 아마도 시험기간인 듯 하고, 도서관 제일 꼭대기 층 입구에서 나오면 기숙사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었는데 기숙사에 살던 그 친구랑 난간에 팔을 기대고서 야경을 바라보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었다. 특별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소소한 일상이라 내 머릿속에 그 순간의 이미지가 저장된 게 조금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친구도 똑같이 그 순간을 추억하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내가 그곳에 다시 가서 그 친구와 똑같이 이야기를 해본들, 지금은 결코 재연되지 않는 낭만적인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은 그 때 그 시간, 그 장소에 있던 나와 그 친구가 그저 젊은 청춘이라 그런 것 같다.


30대가 되어 20대를 반추하니 모든 순간이 즐겁고 행복하고 예뻤던 건 아니었지만 추억에서 베어나오는 아련함 때문에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답게 느껴진다. 40대가 되어 나의 지금을 바라보면 이 순간도 아름답다고 느끼려나? 눈꺼풀이 피곤으로 무거워지고, 머리카락이 무서우리만치 빠져나가고, 배가 바람빠진 풍선처럼 된 오늘의 나도 아름다웠노라고, 생각해주려나? 나는 잘 모르겠는데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을 보면 매순간이 참 귀하다. 나의 외형은 조금 무너지고 쭈그러진다 한들 그들과 함께 하는 순간에는 분명 시간이 흘러 그리워할 낭만이 풍성하다. 내 품에 안겨 젖을 물고 오물오물거리는 입으 평온함에 빠진 그 모습, 나 한사람을 앞에 두고 관중석이 꽉 찬 공연장에서 하듯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그 모습, 새삼스레 생각해보니 30대가 되어 셀 수 없을만큼 많은 순간들을 선물로 받았다. 아직 육아 내공이 부족해서 덜렁대기 일쑤이지만 이 선물들을 오래도록 간직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커버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a_lopez&logNo=221386185470&proxyReferer=http:%2F%2Fwww.google.com%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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