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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Jan 10. 2021

나비의 삶

유퀴즈온더블럭 88화 주미자 작가님 인터뷰를 보며

신랑이 점심을 먹다가 자기가 봤던 유튜브 영상 <유퀴즈온더블럭> 이야기를 해주었다. 식사 후 그릇들을 정리하는데 아이들이 왠일로 서로 어울려 잘 논다. 슬슬 눈치를 보다가, 신랑이 추천해 준 주미자 작가님과의 인터뷰 (88화) 영상을 찾아보았다. 그녀는 할머니가 되어 뒤늦게 글을 배우고 작가가 되었다는 분이었다.


일찍이 부모형제를 잃은 고아가 되서 배고픔에 쑥을 씻어먹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고민했다는 꼬꼬마. 몇 살인지 기억도 안 난다는 그 때부터, 글에 대한 배움없이 절에서 섬김만 하며 살아오셨다고 한다. 나는 절 생활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인터뷰를 들어보니 그것은 혹독한 자기 수양,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사람답지 못한 삶에 가까운 것 같았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새벽 3시에 일어나 예불 드리고 스님들 아침 공양해 드리고 절에 찾아온 손님들을 대접하며 밥 먹을 때 빼고는 하루종일 뛰어다니다가 밤 12시가 되어서야 잠이 든다고 한다. 그 시절 제일 하고싶었던 일은 바로 잠자는 일이라고 환하게 웃으며 회상하는 주미자 작가님. 얼핏 보기엔 고통에 가까운 그녀의 삶이지만, 이제는 아문 흉터를 문지르듯이 담담하게 되짚는 해맑은 웃음이 더욱 슬펐다.  


같이 살던 스님이 2013년에 절을 바꾸면서 자신을 또 데려가려고 하니까, 이제 자기도 훨훨 날고 싶다며 함께 가기를 거절했다고 한다.


스님들은 왜 어린 꼬마가 사춘기 소녀가 되고, 어엿한 여인에서 쭈글쭈글 할머니가 될 때까지 그녀에게 걸어놓은 고삐를 꽉 쥐고 놓아주지 않았을까? 그저 먹고 자 입는 걱정없이 거두어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하는 걸까? 나는 그것마저 해주지도 못한 처지이니 스님들에게 원망의 소리를 던질 자격도 없다. 하지만, 관절이 다 꼬부라진 한 여자의 손이 클로즈업 될 때, 얼마 전에 들려왔던 정인이의 소식과 겹쳐오면서, 왜? 라는 질문이 머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았다.    


2013년 이후 많이 좋아졌다는 작가님의 손


유퀴즈 영상을 다 보고나니, 그녀의 삶에 대한 여운을 마음에 새겨놓을 틈도 주지 않고 유진이 나오더니 종아리 붓기 빼는 광고가 이어진다. 작가님과 함께 하늘을 훨훨 날아오르다가 땅으로 곤두박질 치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스쿠버다이빙 배우려고 할 때, 수압이 크게 바뀌면서 귀가 찢으질 듯 아프던 경험이 생각났다. 할머니 작가님의 감동적인 인생 조언에서 누군가 눈에 띄일 일도 없는 종아리일지언정,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운 게 미덕이라는 미용용품 광고로의 점프에 적응하지 못해 머리가 지끈거렸다. 점진적인 적응 과정이 없어서 당장 그 괴리감이 눈에 거슬렸을 뿐, 나는 끝내 현실에 발을 디뎓을 것이다. 생명을 구하는 위대한 영웅들의 전쟁터를 빠져나와 당장 내 눈 앞의 고민들과 지지부진한 씨름을 하며 툴툴댔을 것이다.


이제 막 글을 배우신 주미자 작가님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싶다고 하셨다. 성공의 불빛에 무모하게 뛰어들어 죽어버리는, 이도저도 아닌 나방의 삶이 아니다. 햇빛 아래에서 팔랑팔랑 날개짓하며 열심히 꽃가루를 옮기고 열매 맺기를 도와주는 나비같은 삶을 산다. 연약하지만 아름다웠고 진짜 영웅처럼 보였다. 두 발을 부엌 바닥에 딛고 이 글을 쓰며 마루에서 뛰놀고 있는 나의 두 꽃을 바라보는 나는 그녀를 닮고 싶다는 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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