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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Nov 26. 2020

믿음

2018년 11월 20일 일기

히브리서 11장: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몇일 전에 첫째 아이를 크게 혼냈는데 지혜롭게 훈육의 말을 전달한 게 아니라 필요 이상으로 내 감정을 쏟아내버리는 바람에 아이의 마음에 크게 상처를 주었다. 첫째 아이는 올해 8월부터 엄마,아빠가 쓰는 말이 아닌 이상한 외계어처럼 들리는 “영어” 유치원을 온종일 다니기 시작했고 얼마 되지 않아 9월말부터는 엄마 뱃속에서 꼬물꼬물한 동생이 뿅!하고 나타나 자기 방도 빼앗아가고(밤중수유 때문에 나랑 둘째가 같이 자고 신랑이랑 첫째가 안방에서 자고 있음) 자기가 독점해 온 부모님의 관심도 몽땅 나누어쓰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 아이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런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그 날은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 줄 여력이 너무나 부족한 빵점 엄마였다. 유치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 전 고작 두서너 시간 동안 엄마 마음에 안 드는 행동만 골라하는 듯이 보이는 아들녀석. 내 눈에 너무 얄밉고 밉살스러워 보여 마지막 사건에서 폭발하며 이런 뾰족한 말을 내던져버렸다.


“넌 노력한 게 아니야! 네가 진짜로 노력한다면 이렇게 계속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있겠어?!?!”


여기에다가 엄마의 훈계 말씀 듣는 태도가 불량하여 맴매까지 합세했으니 아이의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줄줄 흘렀고 아빠한테 서러움을 폭발하며 달려갔다. 자존심 때문에 내 얼굴에 이그러진 화를 얼른 풀어주진 않았지만 아이가 아빠한테 했던 말은 들은 이후에 그것이 내 맘에 계속 슬픈 울림으로 남는다: 나는 노력했는데 엄마가 노력하지 않았다고 해요. 난 노력했는데...




웃픈 이야기인데 저 대사는 나랑 신랑이 싸울 때 주로 내가 하는 대사 중에 하나다ㅋㅋㅋㅋㅋ부부싸움 주제는 꽤나 다양하게 있겠지만 한 가지 꼽아보자면 2012년 살림에 대한 기대치가 꽤나 높은 A군과 살림에는 1도 관심없던 B양이 한 공간에 함께 살기 시작하는데 높디 높은 환상과 부족한 현실을 조율해나가는 과정이 아주 치열했다. 잦은 투닥거림 속에서 느꼈던 건데 나는 노력한답시고 하고 있는데 눈 앞의 결과물이 당장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보채는 것이 그렇게 속이 상하고 서운하였다. 우리 아이도 분명 같은 마음이었겠지? 세상에 태어난지 5년이 채 되지 않은 아이, 이제 조금 익숙해졌나 생각했던 세상이 한없이 낯설어지고 눈 앞에 닥친 경험들 하나하나가 감당하기에 분명 벅찼을텐데 응원해주고 보듬어 주고 도와주어야할 엄마라는 사람의 입에서 저런 매몰찬 말을 듣게 되었으니 아마 꽤나 큰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ㅠㅠ .


돌아보건데 나의 엄마, 아빠는 인내심이 참 좋으셨던 분들 같다. 자라면서 매를 맞았던 기억은 찾아볼 수 없고 훈육에 있어서도 동시대의 한국 부모님들보다 좀 더 개방적이셨던 것 같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고 하니 나를 키우면서 채찍보다는 당근을 후하게 주셨던 것 같다. (그로 인해서 채찍에 대한 내성이 너무 낮아지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ㅋ) 여튼, 당근이라는 것은 칭찬의 의미도 크겠지만 아이를 키우며 돌이켜보니 성장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부분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경험한다. 즉, 바라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이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마음의 끈을 놓치지 않고 오래도록 쥐고 있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부모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아내로서도?!! ㅎ) 내가 마땅히 해내야 하는 일임을 배워가고 있다.


나는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엄마랑 단둘이 명동교자에서 칼국수를 먹곤 한다. 물론 그 전에도 명동교자는 갔었지만 이렇게 단둘이 하는 데이트처럼 된 결정적인 시작은 내가 고3 수험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요한 시기인 만큼 학교-학원-집 이렇게 뺑뺑이 치는 것이 당연한 것이거늘 구체적으로 기억은 안 나는데 학원 앞에 나랑 엄마가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고 햇살이 좋았던 걸 보면 학원에 있었어야 할 꽤나 이른 낮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내가 공부하기 힘들다고 했더니 엄마가 기꺼이 나랑 버스타고 명동으로 가서 칼국수도 먹고 (아마도 빠쓰까지 디저트로 먹고ㅎ) 소소한 쇼핑도 했었던 듯......그 시간이 학생인 나에겐 참 달콤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부모가 되어 그 달콤함을 곱씹으니 그 자유를 허락해 준 엄마의 믿음이 더 감사하다.


이제 곧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올 시간이다. 오늘 저녁은 나의 이기심, 말 한마디 아껴도 되는데 뭐가 그리 답답하다고 나 몰라라 튀어나오는 감정의 배설 때문에 아이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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