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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Dec 13. 2020

코로나 시대의 집, 큐레이터 부모들에게

SEE SAW의 브런치북 [어린이를 위한 제3의 공간]

이십팔만오백십사.


제가 사는 나라에서 12월 11일 엊그제 하루동안 "당신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습니다."라고 결과를 통보받은 사람들이래요. 숫자에 워낙 약한 저는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도서관과 놀이터를 비롯한 공공 시설이 문을 여는 시간이 한 발자국, 아니 몇 발자국 더 뒤로 물러났다는 건 알 수 있었어요. 지난 9개월 희망과 절망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현실을 잘 버텨나갔는데, 아마도 저는 이 시간이 금방 끝나리라는 희망 가까이에 서 있었나봅니다. 치솟는 그래프의 뾰족한 끝이 최근 백신 소식으로 풍선같이 부푼 제 마음을 쿡 찌르는 것 같았네요.


온라인 학교 수업. 통행 시간 제한. 자가 격리 권고. 마스크 착용. 2m 사회적 거리 유지.


일상은 격하게 요동치고 있는데 바이러스 확산과 제가 엄마라는 사실은 꿋꿋하게 변치 않고 있네요. 이 편지를 읽는 당신도 그러할까요? 저와 같은 처지의 부모들, 앞으로 오래도록 이어질 뉴노멀(New Normal)을 준비하는 각 가정의 큐레이터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우리들의 집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은 당신께서도 이미 잘 아시겠지요. 지난 몇달간, 집이 학교가 되었고, 도서관이 되었고, 심지어 놀이터(!!)가 되기도 했어요. 인터넷을 이용하면, 박물관 혹은 미술관이 되기도 하는 요즘이예요.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는 그의 책 <The Great Good Place(1980)>에서 "제3의 공간"은 제1의 공간 집, 제2의 공간 회사(혹은 학교)가 아니며,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자주 모일 수 있는 공간이라고 정의했대요. 좋아하는 커피 한잔 마시며 브런치 글 한편 쓸 수 있는 카페를 상상해보세요. 그 곳에서는 편안한 휴식과 함께 새로운 영감, 즐거운 생산이 공존하고 있어요. 근데 우리 아이가 혼자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을 할 순 없잖아요. 그렇다면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창조하고 재충전 할 수 있는 제3의 공간 어디일까요?


바로 위에 나온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 같은 곳이랍니다.


SEE SAW의 브런치북 <어린이를 위한 제3의 공간>에서는 이러한 공간을 깊이 탐구해요. 이 책을 읽는다고, 우리집이 뿅!하고 제3의 공간이 되지는 않을꺼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이 책에서 물리적 공간 뿐 아니라 제3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콘텐츠와 그 곳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어떤 마인드로 어떤 경험을 제공하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예요. 부모들이 제1의 공간을 굳건히 지키겠지만, 제2, 제3의 공간이 집으로 밀려오는 이 순간, 눈을 들어 타공간을 바라봐야 할 때라고 느껴요. 우리들은 아이들을 낳은 부모이기도 하지만, 필요한 것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아이들이 커갈수록 그들을 (살짝!) 도와줄 삶의 멘토로 한걸음 물러나야만 하니까요.


특별히 애정하는 책 속의 글은 <7화 '글쓰기'라는 비밀 도구를 만나는 공간, 스토리 작업실>예요. 여기서 예로 나오는 826 National은 겉보기에는 마술이나, 슈퍼히어로처럼 엉뚱한 테마의 가게로 보이지만, 뒤쪽에는 비밀 공간(Secret Library)이 붙어있는 기발한 작업실이예요. 아이들에게 이야기 만들기(Storytelling)를 통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손에 꽈악 쥐어주는 곳들이지요. 우리가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쓰면서 이미 경험하고 있는 글쓰기의 힘이기도 하고, 제가 살고 있는 동네, 샌프란 시스코에서 처음 시작된 공간이라 더 각별해요.


정답이 없는 배움터에서 그동안 어떤 실험과 시도가 벌어지고 있었는지 읽어보세요. 코로나 시대, 아이들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열쇠는 큐레이터 부모 당신에게 있다고 믿어요. 당신이 지구상 어디에 계실지 모르지만 오늘도 그대의 하루, 응원할께요. 이 시간 함께 견뎌보아요. 상황이 절망(絶望)적이긴 하지만, "우리에겐 다음 세대의 건강한 성장"이라는 절망(切望)이 있잖아요.


단서련 드림


* 절망(絶望): 바라볼 것이 없게 되어 모든 희망을 끊어 버림. 또는 그런 상태

* 절망(切望): 간절히 바람




[커버이미지: https://www.peoplematters.in/article/skilling/designing-personalized-behavioral-learning-roadmaps-27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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