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애 May 15. 2017

배움의 길에서

  2009년 봄부터 초여름까지 한 중학교에서 방과 후 영어 강사로 일했다. 그것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교사 생활이었다.

  내가 맡은 반은 중2 한 반과 중3 한 반이었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의 이름을 넣어 수업 자료를 만드는 등 아이들이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수업을 하고 싶었다.

  나는 한 아이가 가을을 좋아한다고 한 것을 기억해두었다가, 다음 시간에 그 아이의 이름과 함께 “I like autumn better than summer.(나는 여름보다 가을을 좋아해)”라는 예문을 수업자료에 넣어 나눠주었다. 수업이 끝나고 복도를 걸어가는데, 그 아이가 내게 외쳤다.

  “선생님, 사랑해요!”

  나는 예상치 못한 사랑고백에 당황해, 나도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고 미소만 지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방과 후 수업에 곧 지쳐갔다. 얼마나 빨리 집에 가고 싶었으면 가방을 멘 채 수업을 듣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권위 있는 선생을 연기하려 했지만, 형편없는 연기로 관객에게 철저히 외면받았다.

  나도 한때 학생이었으니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방과 후에 또 수업을 듣고 싶은 아이가 누가 있겠는가? 학생들은 수업과 무관한 이야기꽃을 활짝 피웠고, 수업 도중 불쑥 일어나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하거나 놀이판을 벌였다. 아이들은 지루한 학교생활에서 어떻게든 즐거움을 찾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수업 중에는 그 모든 것이 아수라장으로 보였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아이들이 저마다의 잠재력을 활짝 펼치도록 돕고 싶었다.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신 안에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 알도록 돕고 싶었다.

  아이들은 자신을, 세상을 알아가야 할 때에 아침부터 밤까지 교실에 갇혀 있었다. 그러니 서로 치고받고 소리치고, 뭘 반성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반성문을 쓰며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이들이 그 상태가 되기까지 겪은 것, 겪고 있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은 연약해 보이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날마다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변해가고 언젠가는 사라질 존재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한 번뿐인 순간, 빠르게 지나가는 한 순간 곁에 있게 되어 감사했다. 아이들을 만나서 기쁘고 슬프고 고마웠다. 나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다른 누군가가 잘되기를 그토록 바란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한 아이 한 아이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많은 선생님도 영혼의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다는 걸 아는 아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도 여전히 숱한 실수를 저지르며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 그 진한 사랑과 쓰라린 시행착오의 계절을 지나며 나는 수없이 넘어지고 수없이 바랐다. 너희가 행복하기를.

  하지만 나는 좋은 선생이 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몰랐다. 결국 나는 풋내기 선생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하며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아이들과 선생님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었고, 내 안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사랑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강사를 한 뒤로, 거리에서 지나치는 학생들을 보면 모두 남 같지가 않고 짧은 시간 나와 함께했던 우리 아이들 같았다. 십 대였던 우리 반 아이들은 이제 이십 대가 되었다. 아이들은 이 신비롭고 만만치 않고 근사한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을 것이다. 그 배움의 길에서, 아이들이 좋은 스승과 친구들을 만나기를 기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 소개와 차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