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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애 May 15. 2017

보리밭에서

  지금 내 일터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6월 초에 보리베기 체험에 참여했을 때였다. 우리 연구원 건물 앞뜰에는 보리밭이 있다. 지난겨울 내가 처음 연구원에 왔을 때 밭에는 작고 푸른 보리 싹이 자라고 있었는데, 나는 잔디밭인 줄 알았다.

  겨울이 가고 봄 그리고 여름이 왔다. 보리는 키가 커졌고 노랗게 익었다. 수확 철이 온 것이다.

  스무 명이 넘는 연구원 사람들이 보리를 수확하러 아침 일찍 밭에 모였다. 보리를 거두는 것은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나는 낫을 들고 보리를 베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나는 보리를 베는 게 아니라 뿌리까지 뽑고 있었다. 곁에 있던 한 분이 서투른 나를 보고는 내게 다가와, 보리를 잡아 뜯지 말고 베라며 친절하게 시범을 보여주셨다. 그 능숙하고 가벼운 동작이 놀랍고도 오묘했다. 즐거이 배운 뒤 보리를 베자 실력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한참 일하다 다리를 내려다보자, 조그만 주황색 무당벌레가 내 다리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미소 지었다.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날이 더워 우리는 얼굴에서 땀을 훔치며 일했다. 비록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귀중한 체험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텃밭에서 정성스럽게 채소를 길러 우리를 먹이셨다. 아버지는 농부가 되고 싶었지만 삶은 다른 길로 아버지를 이끌었다. 

  3년 전, 나는 한 텃밭학교에서 농사의 기본에 대한 수업을 듣고 공동텃밭에서 실습을 했다. 나는 농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언젠가 자그마한 텃밭을 가꾸려는 꿈이 있었다. 

  5월의 어느 날, 나를 포함한 텃밭학교 수강생들은 시골 생활을 경험하러 충북 괴산 눈비산마을에 갔다. 우리는 비가 보슬보슬 오는 날 고구마 순을 심었다. 고구마 순 심기는 생각보다 쉬웠고 나는 농사 신동마냥 착착 심어갔다. 

  하지만 얼마 뒤 허리를 폈을 때, 고구마 밭은 끝이 없어 보였다. 나는 농부가 위대하고 존경스러운 분들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 우리나라의 농부들은 대부분 노인이고, 농부는 우리나라 인구의 6%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즉 여섯 명의 나이 든 농부가 백 명을 먹여 살리고 있다.

  다음 날, 우리는 버섯 농장을 방문해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을 도왔다. 버섯이 자라는 더운 온실에서 우리가 일하고 있을 때, 한 농부님이 커다란 수박을 들고 오셔서 모두 나눠 먹었다. 얼마나 달콤하던지. 그렇게 맛있는 수박은 처음이었다.

  텃밭학교의 마지막 날, 우리는 우리가 공동텃밭에 심은 채소를 거뒀다. 우리가 수확한 감자는 엄지손톱만큼 작았고 당근은 새끼손가락만큼 조그마했다. 하지만 나는 만족스러웠다. 이 모든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은 나도 무언가를 기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내게는 호미와 낫이 있지만 아직 밭이 없다. 언젠가, 머지않아, 텃밭을 마련하면 감자와 당근, 양파와 갖가지 잎채소를 키우고 싶다.

  우리가 보리를 거둔 연구원 앞뜰에는 몇몇 분이 지난주에 열무와 반결구배추를 심으셨다. 이번 주에 나는 밭에서 초록색 싹을 발견했다. 싹이 난 것이 기적 같았다.

  우리가 삶에서 뿌리는 모든 씨앗도 언젠가는 싹이 틀 것이다. 당신은 어떤 결실을 거두고 싶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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