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지만 느낌으로
2년 전, 오밤중에 주인도 없는 집에 들어와 스윽 보고는 이 집이다. 싶어 바로 다음 날 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2년 넘게. 약 3년 차 살고 있는 이 집은 행복한 은신처였다가, 나도 모르는 누군가 있을 것만 같은 무서운 곳. 그다음에는 친구들이 자주 찾는 곳이 되기도 하고, 짐을 다 빼어 빈 공간이 되기도 했다가 다시 평안한 마음 둘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그런 집 안 한 책상(집에 책상이 두 개 있다)에 앉아 조명을 켜고는 글을 쓴다.
공간이란 무엇일까? 내가 들어서 있는 곳 만이 공간은 아닐 것이다. 내가 주거하는 공간 이외에 수많은 공간들을 나는 어떻게 관계 맺고 있나. 그 많은 공간들 중 내가 안전하다 느끼는 공간이 있을까?
안전한 공간은 또 무엇인가. 내가 자유롭게 옷 벗고 지낼 수 있는 곳? 내 마음대로 가구를 배치할 수 있는 곳?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은 곳? 그럴 수도 있겠다. 각자의 감각이란 다를 수 있으니.
공간의 의미는 공간 스스로가 부여하는가? 이를테면 나 좀 괜찮은 공간이지? 하고 표현할 수 있는.
공간에 관하여 아는 것은 없지만 공간의 의미를 재창조하는 것에는 나와 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3년 전 어느 여름이었다. 한 작은 도서관 행사에 참여하고 나서 뒤풀이를 하던 중이었는데, 그때의 나는 에너지의 한계를 느낄 때쯤이었던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상황이었으나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이르는지라 뒤풀이를 떠나지 않았는데. 그 공간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찌나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지. 나는 소주 넉 잔을 마시고 따뜻함에 취해 울다가 잠들었다. 다음 날 눈을 뜬 내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물론 부끄러움도 한몫했고 말이다.
안전한 감각에 관하여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무지했던 내가,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고 감각하고 있었다. 사실 이 감각은 늘 존재해 왔을지도 모른다. 익숙해서 들춰보지도 않은 감각. 내가 일하고 있는 공간이. 내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이 점점 두려워지고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아 지는 그런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딱 한 공간만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작은 도서관이었다. 한없이 따뜻한 안전이란 감각은 내게 안전하지 않은 감각을 일깨워줬다.
아무도 없고 나 조차도 없는 공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감각. 공간만 두고 생각했을 때에는 떠올릴 수 없는 감각이다. 내가 존재하고 네가 존재하였을 때 비로소 그 공간에서의 감각이 이른다.
안전하기만 한 공간은 없다. 또 안전하지 않기만 한 공간도 없다. 주거 공간이든 놀이터, 작은 도서관, 영화관, 또는 해안가에 팔각정이든. 살아가면서 만나는 공간에서 나는 어떤 존재로 있고, 또한 어떤 존재를 만나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이 일어나는지에 따라 그 공간이 주는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어떤 물질적 공간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곧 이 집에서 나가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를 간다. 새로운 길로 출퇴근을 하고, 새로운 산책길을 걸으며 지금과는 다른 공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마저도 나에게는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원한 공간이란 무엇인가. 과연 존재할까? 아직은 뚜렷한 답으로 생각되지는 않지만 나의 마음속 저편에 생겨난 공간은 영원할 수 있지 않을까? 물질적 공간과 닮아있지만 닮지 않은 공간. 마음 한켠에 내가 만들어내는 공간. 불편한 느낌보다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 텅 비어있기도 꽉 차 있기도 한 작은 도서관을 닮은 이 공간은 내게 늘 영원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