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은 여전히 생을 위한 이기였음을
행복함을 느낌과 동시에 왜 마음은 불행함을 느끼는가.
어제의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용기 내어 연휴 중에 시간을 보내자고 연락을 했고, 우리는 만났다. 점심을 먹고 차 한잔을 하며 책을 읽다가 바닷가 공원에 의자를 가지고 나가 따뜻한 햇볕 아래 앉아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지나가는 사람들, 바닷가에서 노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실없는 이야기. 나의 무지가 탄로 나는 시간. 그러다 케이크 먹자는 말에 다시 카페를 찾았다. 도착한 카페가 그의 맘에 들었나 보다. 그렇게 그의 다음 약속이 다가오기 전까지 나는 그와의 시간을 모두 기억하기 위해 바라보고 들었다. 그는 나와 점심 이후 같은 동네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약속되어 있었다. 그 시간 다가오는데도 지금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쁨이 컸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하게 그의 저녁 약속까지도 함께 하게 되어 여럿이서 즐거운 연휴의 끝을 보냈다. 술 한 잔, 두 잔. 두 개의 가게를 거쳐 바닷가 공원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쌀쌀해진 바람 탓이었나. 한참을 떠들고는 점점 추위를 느낀 우리는 다음 날이 되기 전에 헤어지자며 일어났다.
돌아오는 길에 믿을 수 없던 행복감이 불안함으로. 두려움으로 나타났다. 그와 끝없이 함께하고 싶은 욕망이 컸던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전화해서 붙잡고 싶은 마음이 가득 이르렀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런 행동은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아니던가. 아. 걱정이기도. 가장 행복한 순간에 가장 불행을 상상하는 습관이 놓아지지 않는다. 뭐 어쩌겠다.
혼자만의 사랑이었다.
그와의 인연은 4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를 통해 나를 알아갈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을 만났다.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었던 황홀했던 순간. 동시에 나라는 존재가 무너지는. 죽는 순간. 그 순간마다 그가 있었다. 좋아하는 마음보다 사랑하는 마음에 가깝고 싶고. 그렇기에 더욱 다가가는 것이 조심스러워지는 그런 관계. 관계란 것이 그런 듯하다. 내가 너무나 강력하게 함께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적당한 거리. 원하면 사라지는 관계. 시몬 베유도 그것을 많이 느낀 듯하다. 관계에 있어 다가가면 멀어지고, 소유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내 마음속 빈 공간에 그를 두지 않는 것. 마음속 빈 공간은 그저 빈 공간으로 두는 것.
그러다 보니 더욱 우연에 기대게 된다. 관계란 것은 진정으로 무엇일까. 나는 지금 어떤 환상으로. 미신으로 관계를 바라보는가. 그저 일어나는 대로. 일어나지 않는 대로.
시몬 베유는 강력하게 사유했다. 우정에 대한 꿈은 전부 깨져야 한다고. 그대가 아직까지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건 우연이 아니며, 고독을 피하려는 바람은 비겁하다고 말이다.(중력의 은총 p.93)
세상을 아름답게만 바라보려는 시도까지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것을 기쁨에 기울게 사고하는 것은 나를 불행하게 할 뿐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에서든, 우정에서든. 또 일상에서의 어떠한 관계에서든 말이다.
나는 이 생각을 남기며 상상으로 사랑을 키운 죄에 대한 벌을 받고자 한다.(중력의 은총 p.91)
그간 피해왔던. 숨겨두기만 했던. 그것으로 나의 마음속 빈 방을 꽉 채웠던 고독을 달게 느끼려 한다. 나의 존재의 부재로 인해 더욱 커진 이 고독은 한동안 슬픔으로. 또 불안으로. 그리고 두려움으로 이를 것이다. 생존을 위해 긍정적인 마음에만 기울었던 나의 이기심은. 누군가와의 거리감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인공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자연에 가까운 에너지.
사랑. 나라는 존재로 표현하게 함과 동시에 나를 죽이는 에너지.
퍼즐 맞추듯 살아갈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정이라는 친밀감으로 상대에게 기우는 시선을 경계해야 한다. 지나친 시선은 오만이 되고 위선이 된다. 내가 시선을 향할 수 없는 곳까지 펼치고자 함은 욕심이며 가능하지도 않다. 그럴수록 지나간 과거에 묶여 괴로워할 뿐이라.
어디를 가도 나는 혼자가 아니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 가까운 친구들과 그 장소에서 함께했던 순간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어떤 거부도 하지 않고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다음은 없다. 상상의 영역은 상상으로. 그리고 지금이라는 시간에서 그저 기다림으로. 인내로. 흐르다 보면 또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때가 있었다. 그 길을 걸었을 때 우선적으로 화살표를 따라가다가 화살표가 없는 갈림길에서 친구는 제안을 했다. 우리 서로 다른 길로 가보자고. 어디서 만나게 되는지 궁금하다면서 말이다. 나는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외로이 홀로 걷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을 꺼내지도 못한 채 친구의 말을 받아들였다. 생존의 이기가 발동한 것이다. 그렇게 홀로 걷기 시작했다. 질퍽한 흙길을 걸으며 먹는 것도 잊어가며 걸었다. 처음에는 친구를 앞으로 만날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불행을 꺼내어 생각했다. 이어 이 제안을 한 친구에 미운 마음까지 들었다. 하루. 이틀. 지나도 나는 친구를 만날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익숙해진 홀로 걷기에 친구도 잘 걸어내길 내심 기도했다. 그리고 그 기도는 믿음에서 확신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걸으며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은. 길 위에서 만난 친구에게 의지한 나는 매일같이 그를 생각했고, 그를 상상했다. 그리고 이내 함께 없음을 인정하고 걸으면서도 갈림길이 모아질 때면 그와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연을 기대하기도 했다. 기대가 익숙해지면 기대의 강도가 높아지고. 그럼 친구와 헤어져 걸었던 첫날의 마음상태로 돌아갔을 것이다. 밉고 외롭고. 나는 그 친구의 안녕을 바랐고 그저 나의 지나친 상상을. 기대를 바람에 흘려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안녕. 그렇게 나는 계속 걸었다. 나에게 주어진 길을. 내가 선택한 길을.
흩어져있는 생각들이 오히려 불안에 집착하게 한다. 집착의 실상을 파악하라.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되 그 상상에 먹히지 않기로 하자. 강력한 집착을 이끌어내면서도 유연히 흐르는 나의 빈 방에 몸을 맡기리라. 중력을 뒤집기. 그 사이 지성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무지함이 발견되면 하나의 도구를 발견한 것이라 기쁘게 여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