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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 읽는 곰

식물에게 배우는 낙관의 날들의 기록

김금희,『식물적 낙관』

by 춤추는 곰
Yes24 도서 페이지 / 『식물적 낙관』((주) 문학동네)

오늘은 김금희 작가의 『식물적 낙관』을 소개해보려 한다. 우연히 지난번에는 김애란 작가의 산문집을, 이번에는 김금희 작가의 산문집을, 이렇게 두 산문집을 연이어 소개하게 되었다. 나의 '책 고르기 활동'에는 전혀 규칙성이 없는데 지금 동시에 읽고 있는 다른 책도 에세이집이 두 권, 읽으려고 빌려 놓은 것도 한 외국 작가의 에세이인 것을 보면 요즘 유난히 에세이집들에 눈이 가나보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게 된 것이 무의식 중에 다른 사람들의 에세이집을 읽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졌는지 모르겠다. 신기한 건, 무작정 에세이집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던 소설가들의 에세이집만 골라서 읽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이쯤 되면 다분히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여도 할 말이 없겠다.


서문에서 작가는 '안 되면 할 수 없다'는 은근한 체념과 같은 것을 식물들과 함께 계절을 지내면서 배운다고 말한다. 시들어가고 죽어가는 식물의 몸체는 물론이고 뿌리까지 꺼내어 상한 부분을 담담히 잘라내고, 작아진 식물을 다시 심어주고는 '괜찮을 거다, 아니, 아닐지도 모른다. 안 되면 할 수 없다.' 하는 식의 체념.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식물을 키운다는 것을 진정 '식물을 키운다'라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잠시 멈칫했다. 이 정도면 거의 인생의 참 가르침을 식물과의 생활에서 얻는 셈 아닌가. 최소한 식물을 키우는 동안 나도 '식물과 같이 큰다.' 정도로는 말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이 체념이라는 것이 참 어렵다고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내려놓지 못해 괴로워한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면 (정확한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 그대로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적으로), 이런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뜨거운 컵을 손에 쥐고 "너무 뜨거워요. 어떻게 놓아요?"하고 방법을 물으면 스님은 그냥, 놓으라고 하신다. 놓는 것이 해답인데도 사람들은 자꾸 ‘어떻게’를 묻는다. 놓지 않고 견디며 그 뜨거움을 견디는 과보*를 택하거나, 아니면 결단하고 놓아야 한다고 하신다. (나는 불교신자는 아니다. 다만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는 공감이 가는 지혜로운 말씀이 많아 배우고자 종종 듣는다.) 앞서 서문을 읽으며 바로 이 이치를 김금희 작가 역시 식물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자연스레 그 ‘놓음’을 배워간다는 뜻이라고 나는 받아들였다. 손에 컵을 쥐어보고 그 뜨거움을 느낀 후 고통 속에 얻는 깨달음이 아니라, 계절을 지나며 시들어가는 식물을 바라보며 깨닫는 체념이라니. 진정 체화될 수밖에 없는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했다.


*과보: '업(業)'의 결과로 나타나는 보답이나 결과를 의미하며, 우리가 행한 선악의 행위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따른다는 불교의 인과법칙


작가는 처음 체념을 이야기하며 예를 들었던 식물을 서문의 끝부분에서 다시 심어볼 생각이라 말하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계속되는 낙관을 움켜쥐고 싶어서 하는 일이 가드닝인 것 같다. 막막하고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을 때면 가장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생각하는 일이 도움이 된다. 뿌리가 있고 뿌리를 심는다. 지키고 싶은 여름이 있고 그 여름날들을 지킨다. 여기 묶인 글들은 그런 낙관의 날들에 대한 기록이다. (p11)


그러고 나서 글들은 1부 <여름 정원에서 만나면>, 2부 <이별은 신선한 바람처럼>, 3부 <겨울은 녹록하게>, 4부 <그런 나무가 되었다>로 이어진다. 그리고 식물 군상에 대한 부록이 실려있고, 나오는 말로 "우리가 선택한 낙관"이라는 제목의 작가의 글이 실려있다. 아, 서문의 제목은 "식물 하는 마음"이었다.


책을 읽을 때, 늘 서문을 읽지만 이번처럼 서문만 소개하고 나머지 부분은 독자들에게 남겨두고 싶은 책은 처음인 것 같다. 좀 너무한가 싶어 책을 다 읽은 후의 나의 감상을 몇 자만 덧붙여 본다. 저자가 말했듯이 이 책은 식물에 대해서 그들을 지키고 싶고 지켜낸 낙관의 날들에 대한 기록을 모아놓은 것이다. 물론 그것은 단지 식물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 속에 우리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있다. 식물을 키우는 일을 이미 좋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다정한 친구 같은 책이 될 것이고 (그래서 이 책을 우리 식구 중 가장 가드닝을 즐기시는 엄마께 바로 추천해 드렸다.), 가드닝에 관심이 없거나 관심은 있지만 망설이고 있는 이들에게는 식물을 키운다는 것이 무엇인지까지 포함하며 어떤 기쁨까지 줄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며 그중에서도 낙관의 힘에 초점이 맞춰진, 왜 제목이 '식물적 낙관'인지 찾아가는 재미가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나도 다시 한번 더 읽고 싶다.




참조: 김금희,『식물적 낙관』, (주)문학동네, 2023.

대문사진 출처: Yes24 도서 페이지 / 『식물적 낙관』((주)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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