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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빠 안녕

아빠에게

아빠 안녕

나 작은딸 수덕이

아빠 이젠 걸을 수 있지? 아프지 않은거지?

정말 다행이야..

그곳에선 아빠가 드디어 자유롭겠다

더이상 안 아프겠다 싶어서

슬프지만 동시에 다행이고 그렇네


아빠를 보낸지 어느새 60일째 되었는데

그동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할 말이 생각이 안나서(실은 자꾸 화가나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오늘은 편지를 쓰고 싶었어




난 요즘도 맨날 눈물이 나

매일 집에서 울어

언니랑 얘기하다가도 울고,

투자공부 하다가도 울고,

일하다가도 갑자기 아빠 생각이 나면 한참 울다가

다시 일하고 그래


그래도 괜찮은 건 그렇게 울면서 슬픔을 만나주고 잘 보내주고 있어

슬픈데 슬픔을 부정하면

계속 우울해져서 일상 자체가 살기 힘들겠지만

그 감정을 받아들이니까,

슬픔이 올라올때 충분히 흘려보내주면

다른 시간들엔 해야할 일 하면서 지낼 수 있더라고.


아빠가 한동안은 너무 밉고 화가 났는데

'왜 인생을 그렇게밖에 못 살았을까..

참 볼품없는 삶이었다. 난 절대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 정말 많이 했는데

요즘은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어.


늘 그렇게만 생각해서 미안해

사랑하지만 내가 아빠의 아픈 모습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아빠 많이 보고싶어

그런데 보고싶은 아빠가 건강했을때의 아빠라서 미안해


이 삶에 어떤 인연으로 아빠를 만나게 됐는지 몰라도

난 아빠 딸로 태어나고 자라면서

행복했다고도 꼭 말하고 싶었어


아빠는 늘 "못난 아빠라서 미안하다

아빠가 너무 모자라서 미안하다"고 했는데

그땐 참 뭐라 답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아냐.. 그렇게 생각할거 없어.."라고 말했는데

앞으론 내가 얼마나 감사했는지

그 기억들을 에세이로 써볼게.


어느새 벌써 서른인데

내 유소년시절에 귀한 추억들이

더 나이먹고 잊혀지기 전에

하나하나 소중히 기록해놓고 싶어.


그럼 아빠도 알게 되겠지.

'아.. 내가 딸들에게 아픔만 준건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그리고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아빠가 갑자기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서,

언니랑 나 다 키우고

이렇게 마음의 준비 다 시켜주고 떠나서 고마워

충분히 이별할 수 있는 시간을 줘서 정말 고마워


오늘 지나가는데 붕어빵 보이더라

붕어빵만 보면 아빠 생각이 나..

아빠가 붕어빵 참 좋아했는데

겨울에 붕어빵만 보면 아빠 생각난다고 언니도 그래.


아빤 겨울에 태어나서 겨울에 갔네..

그래서인지 늘 아빠를 떠올리면 겨울이 떠올라

늘 입던 까만패딩만 입고

밖에 나가서 장작을 패고 화목보일러를 떼던 아빠

늘 신던 수면양말 다 늘어지도록 신고,

온돌을 구워 수건에 감싸 배 위에 얹고,

전기장판에 눕던 아빠 모습이 생각나


아빠가 곁에 있을땐 나 힘든것만 보였는데,

아빠가 떠나니까 아빠 힘들었던 게 느껴져.

솔직히 아빠 살아있을 때도,

11년간 파킨슨 앓으면서 아빠 힘들어 하던 게

왜 안 느껴졌겠어.


다 느꼈지만 애써 안 느끼려 했거든.

그걸 생각하면 내가 너무 슬퍼서 현실을

살 수가 없을 같았어.


그래서 적당히 모른척하고 적당히 무심하게 살았어.


23살에 자취 시작하고부터

전화 안 하고 싶어서 많이 안 한게 아니라,

아빠 목소리 들으면 눈물부터 나니까 아빠가 힘들어할까봐

나도 너무 힘들어서 그래서 자주 안 했어.

그래도 전화 자주 안 해서 미안해


늘 아빠가 아팠으니까

난 혹여나 이번이 마지막 통화가 될까, 이번이 마지막일까..

싶어서 아빠랑 전화한 거 5년도 넘게 거의 다

녹음해놨어.

전화 자주 안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음성녹음이 차곡차곡 쌓여서 구글드라이브에 엄청 많더라.

난 데이터 정리도 잘 못하는 사람인데

어째저째 그건 다 저장해놨어.


앞으로 아빠 그리워지면 들어보려구.

아직은 하나도 못 열어보겠지만..

나중에 좀 더 마음이 편안해지면

웃으면서 듣고 싶어.





그때.. 나 열다섯살때 여드름에 좋다고

물에 타서 세수하라고

아빠가 담궈줬던 복숭아꽃술(도화주)

그 도화주향이 어찌나 진했는지..

술이 익어갈수록 거실에 그 향이 진동하고,

내가 작은 국자로 하나 퍼서 세수를 하면

하루종일 욕실에도 가득했던

그 도화주 향이 잊혀지질 않아.


내가 언젠가 이 몸을 떠나고 이 세상을 떠날때

그 향이 느껴졌으면 좋겠어.


그렇게

나 이번 생 잘 살고, 다시 아빠 만나면

그때 아빠가 내 잔에 도화주 한잔 따라주세요.


또 편지할게요.

그 때까지 아빠

부디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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