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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빠 안녕

남겨진 자의 몫


가족 중에 누군가를 먼저 보낸 사람은 알 것이다.


죽음은 떠난 그 사람의 몫이 아니라,
남겨진 자들의 몫이라는 걸.


모든 "몫"은 살아있을 때 느낄 수 있고,

겪어야 하는 부분이란 걸.


살아있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는 그의 몫이었겠지만,

죽음의 순간 이후 그는 모든 짐을 벗고

하나의 영혼이 되어 가벼이 저 멀리 날아갔다.


아직 육체를 가지고 살아있는 우리들은 그의 죽음을

해석하고,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미안해하고,

아쉬워하고,

아파한다.


그 모든 감정은 여전히

우리가 살아있기에 느끼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아빠와 제대로 찍은 사진이 없다.


그냥 셀카처럼은 가볍게 몇 장 찍었지만

아빠와 내 모습이 온전히 사진 속 풍경에

다 담겨있는 그런 사진이 말이다.


친구가 사진가였던 언니는 아빠와의 예쁜 사진이 꽤 있는데

난 아빠와 함께 단둘이 찍은 사진이 없다..


럴 기회가 있었던 당시의 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사회 초년생 때 서울에서 고시원 살 이하며

혼자 월세 내기도 바빴다.

아빠도 먼저 같이 사진을 찍자 말할 분이 아니었고..


함께 찍은 사진을 돌이켜보자면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몇 장 안되는데,


97년도 내가 고작 5살 무렵에 춘천 만화축제에 갔을 때 만든

낡디 낡아 누레진 티셔츠에 프린트한 가족사진과

19살 무렵 강원도 집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을 때

지나가듯이 찍은 사진,


그리고 그 뒤론.. 20대 때 아빠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이 없다.


아빠가 병원에 가기 전에 양구에 살 때 좀 같이 찍을걸.

괜히 지난 일에 대한 아쉬움.. 미안함..


지금의 나에겐

아빠와 함께 한 하나의 추억이 지나갈 때마다

하나의 아쉬움이 늘 같이 떠오를 것만 같다.




장례식이 끝나고

아빠의 법복(성직자로 일하실 때 입던 옷),

아빠가 읽던 책들, 경전은 다 두고

아빠의 염주랑 일기장 딱 그 2가지 유품만 챙겨 왔다.


자가용이 없어서

익산에서 서울까지 그 무거운 짐들을 다 들고 올 수 없어서도 있지만,


굳이 남아있는 물건이 뭐가 필요할까 싶었다.

그런 물건에 애착 갖고 남겨놓는 게 꼴사납다 싶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도 한동안

난 그토록 냉소적이었다..




3달이 지난 이제야

분노가 지나간 자리에 미안함과 아쉬움이 찾아온다.

그래도 그렇게 쉽게 아빠의 물건을 두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너무 무정하고 매정했어.


아빠가 남긴 일기장,

통화 녹음에 저장해둔 아빠의 목소리,

아빠와 함께한 사진..

아직은 그 무엇도 열어 볼 수가 없다.


돌아가시기 전,

11년 동안 병환을 겪었던 아빠 곁에서

언니와 나는 이런 대화를 정말 많이 했었다.

"결국 우리가 아빠를 뒤로하지 않고,

아빠한테 잘하는 건

우리가 후회하지 않으려고 그런 거야.

자주 찾아가지 않으면, 전화 안 하면,

아빠 돌아가시고 분명 후회할 거다.

후회할 짓 하지 말자."


그래서 나는 나 나름대로,

언니는 언니 나름대로,

아빠를 챙겼고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도

돌이켜보면 더 하지 못한 게

그렇게 미안하기만 하다.

아무리 했어도 안 한 것만 기억날 거야
남아있는 우리가 겪어야 할
어쩔 수 없는 마음이 아닐까?

라는 언니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전에는 이 구절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 지난 일에 미련 갖고 궁상떠는 말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 구절은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쩜 그건 미련이 아니라
지난 일에 대해 그리움이라고.



지금의 아쉬움 미안함도

영원한 감정은 없기에

이 또한 지나갈 것을 알기에


이 그리움도 소중히 다뤄주고 싶다.

힘들지만 잘 흘려보내야겠지.

나중엔 이 그리움도 그리워질 것 같다.


지금은 매일

"아빠 보고 싶어 미안해.."

부르며 혼자 우는 이 시간이 아프지만


시간이 지나고

기억과 감정이 옅어질수록

맘껏 슬퍼하고 맘껏 소리쳐 울 수 있던

지금이 분명 그리워질 것 같다.


그래서 미련이 없도록

충분히 아주 잘

나를 달래주고 안아주고 싶다.


정작 아빠는 아무 아픔 없이

우리에 대한 아무런 원망과 후회 없이

정말 자유로워졌을 것이다.

바람이고,

햇살이고,

꽃이 됐겠지.


사실은

이건 돌아가신 그 영혼과의 관계가 아니라

내 마음속 아빠의 추억과
지금의 나와의 관계일 것이다.


아직은 모르고 싶고,

아직은 보낼 수 없는

이 관계를

잘 도닥이고, 잘 보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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