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는 행동하는 명상

리추얼 695일차

연말이니까 괜히 더 특별하게 놀고 싶다가

막상 정말 특별하게 놀 일들이 많아지니

그만큼 챙겨야 할 일들이 늘어났다.


연말이랍시고 부산스럽게 구는 일상을 보내고 싶지 않다.

라고 금세 마음이 말을 바꾼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친구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할 집을 깨끗이 치운다.


직장생활로 바쁘고 피곤한 언니를 대신해

일단

순두부찌개를 끓여놓았다.


그런 뒤

면생리대를 빨았고,

새로 산 목도리를 손빨래했고,

화장실 타일청소를 깨끗이 하고,

주방 가스레인지를 광이 나게 닦았고,

구청 홈페이지에 회원가입해 폐기물 배출신청을 했고,

세탁해놓은 빈백에 스티로폼 알갱이 충전재를 다시 넣어놓고,

바닥에 얼룩들을 걸레질했다.




청소만으로 바쁜 하루에

중간중간

파마를 하러 미용실을 다녀오고,

인스타 콘텐츠를 발행했으며,

운전면허 갱신 신체검사를 알아보고,

작명원에서 받은 예명을 다시 지어주시길

부탁드렸으며,

1월에 있을 무용출강 스케줄을 맞추고

기차표를 예매하고,

아침 일찍 여성기업인증 면담을 받았으며,

내일 부산에서 올라오는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한 친구를 떠올리며

이런저런 스케줄을 조정했다.


하루를 돌아봤을 때

왜 이렇게 해놓은 게 없지? 란 생각에

사로잡혔었는데

글을 쓰니 정말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또 나아가려 했다는 게

느껴진다.


에세이는 바둑의 복기 같다.

놓치고 있던 많은 걸 다시 보게 해 준다.




오늘은 청소의 발견"을 한 날이다.


절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마당 쓰는 걸

왜 수행이라 하는지 알았다.

왜 늘 그토록 청소하는 법,

빗자루질하는 법,

이불 개는 법

스님이 되기 위해서 그 모든 것

하나하나를 철저히 배우고 행하시는지

아침리추얼을 695일째 하니까 알 것 같다.


청소 한번 한다고 영원히 깨끗한가?

돌아서면 또 더러워지고, 또 어질러진다.

우리 마음 또한 그렇다.

한번 비우고 정리한다고 계속 깨끗하지 않다.

돌아서면 더러워지고, 또 어지럽게 흩어진다.

그래서 청소는 곧

마음을 닦는 일.

행동하는 명상이다.




행하고,

행하고,

또 행한다..

언제 끝나지?

끝이 있긴 한가?

아 지겨워 아 하기 싫어

생각되는 그 모든 순간들에도

그저

행하고,

행하고,

또 행할 뿐..


그렇게 끝없이 닦아나가야 하는 게

청소나,

마음이나,

사람 관계나,

다 똑같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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