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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원 들고 워킹 홀리데이를 오는 미친짓

스페인 워홀 22일차

꼭 그러려고 그런건 아니지만,

작년에 나는 많은 시간을 무기력하게 보냈다.

덕분에 하기싫은 일을 끝까지 피해보는

경험도 했고,

돈을 안 벌고도 마음 편히 얼마나 지낼 수 있는지

실험도 해본 것 같다.


그 결과,

스페인에 그래도 대략 900만원 정도는 들고 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연말이 되니 여행경비며 뭐며

가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

해야할 것들,

교육비,

사야할 물건들, 비행기 티켓

준비하다보니 어느새 통장잔고에 카드값을 제외하고 300만원도

채 안 되는 돈이 남아있었다.

와 진짜 무슨 자신감일까

생판 처음 가보는 국가에

워킹이 가능한 비자라고 해도

스페인어가 그렇게 유창한 것도 아닌데

무슨 자신감으로 200만원 남짓을 들고 1년을

살 생각을 할까?


그래서 한동안 투자공부하며

돈에 대해 늘 가난의식에 잠식되어있던

생각에서 벗어나 부의 사고방식, 부가 이뤄지는 방식

같은 것들을 공부하며 시선이 열리고

관점이 바뀌면서 돈을 대하는 감정도

생존을 위한 돈벌이에서

경제적 자유를 위한 부, 여유로움으로

감정이 많이 이동했었는데


다시금 생존이란 오랜 습관같은 감정에

잠식되어 아 어떡하지?

어떻게 돈 벌지?

당장 벌어야 먹고 사는데

라는 생각에 다시 쪼그라든 시선, 관점에

스페인까지 와서 정말 새로운 환경에서

여행에서 즐길 수 있고

넓힐 수 있는 견문따윈

안중에도 없이


1, 그저 빨리 취직을 해야한다는 생각과


반면,

2, 독감과 추위에 맞서싸우며

이 날씨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따뜻한

카나이 제도에 가서

2달 정도 버티고 봄이 오면 스페인 전역이

관광객이 붐비고 일자리가 많아지니

3월 중순이 지나서

따뜻한 계절이 오면 6개월 정도 바싹 돈을 벌어보자는

두가지 생각이 계속 충돌중이다.



3, 그 와중에 춤으로 영상은 안 찍냐..

춤수업은 안 열어볼거냐..

라는 나를 다그치는

직업적 책임감이 올라올때

확 부담감에 사로잡혀

오히려 모든 일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루종일 비가 오고,

찬바람이 매섭게 부는 오늘은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가장 좋은 핑계이기에

부담스러워 미뤄두고 미뤄뒀던

영어, 스페인어 이력서를 작성하기 좋은 날이었다.


2가지 버전을 영어,스페인어 버전으로

쓰려고 하는 중인데

종류가 어떻게 되냐면,


1번째, 레스토랑 웨이트리스 또는 호텔 리셉션 알바

관광의 천국인 스페인에서 가장 일자리가 많고

취직하기 수월하다 하여

그 쪽으로 일할 생각으로 이력서를 스페인어로 작성했다.

뭐라도 보탬이 되보고자

한국에서 했던 단순알바들 카페,뷔페,호텔 연회장, 화장품 판촉 등

22살부터 서울에 혼자 상경해 고시원 생활하며

생존을 위해 했던 알바의 기억을 긁어 모아모아

스페인어 이력서를 작성해봤다.


현재 현지인 친구 집에 머물고 있어

숙소를 편안히 제공받으며

내 이력서에 잘못된 문장표현, 문법들을

첨삭해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감사한 마음에 이 집 3살 조카 꼬맹이에

하루종일 울고불고 떼쓰는 것도 좀 받아주고, 놀아주고,

집 청소 빨래 요리 설겆이에 화목난로 불피우기도 하고,

부탁하지 않아도 이 집에서 키우는 개똥도 치워주고,

식비도 많이 나눠 내고 있다.

먹어보고 싶단 한국요리는

김밥, 해물라면, 김치 등등 다 해주고

만드는 방법도 알려주고 있다.

은혜를 받는 것에

내가 할 수 있는 감사표현을 최대한 몸으로 행하고 있다.



2번째, 혹시 언제든 춤이란 특기를 사용할 수만 있다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댄서, 댄스강사로서 이력을 다 정리해서

스페인어, 영어 2가지 버전으로

정리중이다.

교육을 이수한 경력, 교육을 한 경력, 공연경력까지

나눠서 정리하려니 오랜시간 다양한 경험을

한 것들을 버리지 않고 하나하나 잘 쓰려다보니

여간 불편하고 힘든 일이 아니다.


이래서 태블릿이 불편하고 노트북이 편한건데..

오기 전에 원했던 아이폰에 맥북까지 샀다간

겨우 남은 200만원까지 다 탕진하고

미리 끊어 둔 비행기 티켓만 가진 채

빈털털이로 스페인에 왔을 것이다..


지금 오래쓴 핸드폰이 배터리가 빨리 닳고,

태블릿도 너무 불편하지만..

춤영상과 이 아름다운 스페인의 풍경을 담기에

내 핸드폰 카메라 사양이 너무 안타깝지만..


그래서 너무 짜증이 나지만

뭐 어쩌겠나

모든 걸 다 선택할 순 없다.

늘 그렇듯 어느 하나를 얻기 위해선

다른 불편함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그 불편함이 당연함을 인식하고,

그 불편함의 순간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에

진짜 몸과 마음이 편해지고 그때부터 즐거워지는데

아직은 이 새로운 환경이 적응이 되질 않아

편안함도, 즐거움도 딱히 느껴지지 않는다.


돈 싸짊어지고 왔음 뭔 걱정이었겠어

뭐든 다 재밌고 다 즐거웠겠지

숙소도 따뜻했겠지

이렇게 추울줄 모르고 얇은 옷만 챙겨왔어도

여기 와서 예쁜 옷 새로 다 샀겠지

독감에 걸려 골골댈 일도 없었겠지

뭐 아직은 이렇게 현실부정 중인 상태다.


분명 지금 뭔가 부족하고 어설프고 어색한 모습 그대로

지금 이 순간에

지금 이 상태에

나만이 누릴 수 있고,

나만이 알 수 있는 즐거움들이 있을텐데

발견하진 못 한것같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여전히 1년은 긴 시간이고

이제 겨우 3주가 됐다.

이렇게 매일을 기록하다보면

별볼일 없다고 느껴진 하루,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할만큼 멋진 하루가

아니었기에 쓸말도 없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고


어쨌든 매일매일 조금씩 발전하고

달라지는 상황과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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